20240123 다섯 번째 글쓰기
이 글감은 그동안 썼던 글들 중에 가장 고민이 길었던 녀석이다. 계절에 냄새라니.. ‘도대체 계절에 무슨 냄새가 있단 말인가?’를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어린 시절 뒷산에서 맡던 아카시아 나무 향기가 생각이 났다.
30여 년 전에 우리 집 네 가족이 산기슭 빌라에 모여 살던 시절, 뒷산에 약수터가 있었는데, 주말이 되면 아빠랑 둘이 캐리어에 물통을 담아, 일주일 동안 먹을 물을 뜨러 가는 게 주말 아침의 일상이었다.
가는 길에 작은 미나리 밭이 있어서 여름에는 개구리가 울고, 가을에는 종종 뱀도 나타나서 깜짝깜짝 놀래고는 했다. 약수터 초입에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는데, 5월 전후가 되면 몽우리가 조금씩 생기다가, 어느 순간 새하얀 꽃들이 피면서 달큰한 향이 가는 길을 가득 채우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주말에 물 뜨러 가는 게 당연하니까, 별생각 없이 걷고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하면서 갔는지도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아빠랑 조곤조곤 걸어가던 그 길이, 그 시간들이 문득 아련하게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혼자서 예전에 살던 그 지역에 갔었는데, 그 집도, 길도, 나무도, 약수터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지만, 왜 예전의 그 길 보다 그렇게 작아 보이던지, 내 기억은 그대로인 것 만 같았는데, 나는 나이를 먹었고, 기억은 그 시간에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
글을 쓰다 보니 다음엔 5월에 아카시아 나무가 필 즈음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달콤한 향기를 가득 내뿜고 있을지, 기대되고 궁금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