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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량 Nov 26. 2024

매료되었던 광고, 카피, 시, 문장

20240507 열아홉 번째 글쓰기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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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료되었던 시 라고 하니 오래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이 작품이 생각이 났다. 왜 이 작품이 생각이 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글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 번도 승무를 본 적이 없는데,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새벽 어슴푸레한 시간 고요한 산사에서 승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과 같은 글이라고 하니,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생각이 난다. 안개에 대한 그의 표현을 바라보면서, 별생각 없이 마주하던 안개에 대해 나도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을 가지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안개를 마주하던 순간은 차를 타고 가다가 마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보이지 않는 앞에 대한 짜증과 분노, 걱정의 표현을 듣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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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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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교과서에 있었던 글들만 언급하고 있는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저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학습해서 그런 걸까, 내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 걸까 좀 헷갈리기도 했다. 그냥 내가 저 작품들을 보았어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생각하는 방법까지 배운 탓인지 잘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조금은 슬프고 묘사가 아름다운 작품을 내가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교과서 외 작품 중에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 무엇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 보니, 이청준 선생님의 매잡이,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등이 생각이 난다. 집요하게 뭔가 한 가지를 펼쳐내는 이야기들을 보며, 나도 진득하게 무언가 하고 싶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여러 문학 작품들이 내 생에 자양분이 되어 나를 풍요롭게 해주었구나 싶다. 여러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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