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소설이다.
책에 몰입도가 너무 높아서 읽다 보면 책 속에 깊이 빠지게 되는데, 역시나 마음이 힘들다.
한강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문체로, 인간의 고통과 기억의 의미를 생각하게 작품이다.
소설가 경하는 눈 내리는 벌판과 묘지를 떠올리게 하는 악몽을 꾸고, 한때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던 친구 인선과 그 꿈을 영상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몇 년간 삶의 어려움을 겪으며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경하는 그 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겨울, 인선이 작업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절단되는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서 급히 경하에게 연락한다. 인선은 다급하게 자신의 제주 집에 있는 새를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경하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채 제주로 향한다. 하지만 도착한 제주는 폭설과 강풍으로 온통 마비된 상태였고, 그는 극심한 두통을 견디며 가까스로 인선의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탄다. 그러나 정류장에서부터 인선의 집까지 이어진 산길에서 눈보라에 휩싸여 길을 잃고 헤매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경하는 인선의 가족이 겪었던 제주에서의 학살 사건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온 가족을 잃고 십오 년간 감옥에 갇혔던 아버지, 부모와 동생을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어머니. 특히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학살 이후에도 오빠의 행방을 찾는 일에 평생을 바치며 포기하지 않았다. 폭설로 고립된 외딴집, 촛불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 경하는 정심의 삶과 그가 품어온 깊은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눈송이가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풍경 속에서, 이곳에 없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과 기억이 끝이 없이 연결된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온전히 편안해진 건 아니었다고 그때 인선은 말했다. 그 후로도 여전히 복잡했고, 어떤 점에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고. 하지만 잠시도 견디기 어렵던 미움은 그날 밤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므로, 이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명치에 걸려 그토록 이글이글 타던 불덩이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p.86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 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 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그게 엄마가 다녀온 곳이란 걸 나는 알았어. p.316
『작별하지 않는다』는 기억과 애도, 전쟁의 상흔, 상실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잊힌 사람들과 사건을 기억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전쟁이 남긴 폭력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그리고 떠난 이들과 작별하지 못한 채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깊이 느껴보게 한다. 한강의 묵직하면서도 몰입력 있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역시 그 아픔과 기억 속에 머물며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