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와 숏다리

by 오서리

“휴~ 100만 원 한번 실~컷 써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 오십 살쯤 되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저 멀리서 민정이가 검정 비니루 봉다리를 쩔레쩔레 흔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우린 언제나 그렇듯이 봉다리 안에서 카스 캔맥주 2개와 숏다리를 꺼내어 봉지를 뜯었다.


한 시간 전쯤 민정에게서 삐삐가 왔다.

“1212”

암호는 ‘홀짝홀짝’.. 한잔 마시고 싶다는 얘기군.


스물네 살의 우리는 무슨 고민이 그리 많고, 속상한 일도 많고, 술 마시고 싶은 날도 많았는지. 그러나 둘 다 돈이 없었다.


민정이는 금호동에, 나는 왕십리에 살았고, 누군가 술 마시고 싶거나, 할 이야기나 고민이 있으면 서로에게 암호로 삐삐를 쳤다. 집구석에 쭈그러져 있다가 삐삐를 받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모교인 무학여고 등나무 아래에서 뭉쳤다. 둘 중 몇천 원이라도 있는 사람이 카스 2캔과 숏다리를 사 오는 거였다. 하이트만 마시다가 1994년 카스가 탄생했고, 민정이와 나는 카스의 톡 쏘는 맛을 사랑했다. 그리고, 가진 건 없지만, 최신 맥주인 카스를 마시면서 우리는 핫 아이템을 마신다는 우쭐함이 있었다. 숏다리는 짭짤하고, 딱딱하고, 오징어 다리 4-5개 들어 있는 우리 같은 백수에겐 딱 좋은 오백 원짜리 안주였다. 숏다리 하나면 맥주는 1인당 4캔까지 가능했다.


그날 역시 백수였던 암울한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첫눈 오는 날이었다. 다른 스물네 살의 또래 친구들은 남자 친구와 신촌, 종로, 압구정에 모여들고 있을 때, 우리는 겨울방학을 맞이한 스산한 무학여고 음악실 뒤쪽 화단의 등나무 벤치에 앉아서 추운 겨울에 걸맞은 이빨 시린 카스 캔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민정이는 중국 유학을 준비하는 중이었고,

나는 전공과 다른 인테리어 디자인에 느닷없이 꽂혀서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홍대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안갯속을 헤매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번듯한 직장 하나 없었고,

남자 친구는 당연히 없었고,

통장 잔고는 0원이었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게 확실히 뭔지도 잘 몰랐고,

그냥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찬란하게 젊은 날이었다.


백화점 가서 명품을 사는 젊은이들을 부러워했고,

근사한 일본 스시집에서 나오는 선남선녀들을 군침 흘리며 쳐다보았다.

그렇게 못하는 우리의 청춘을 한탄했으며,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살았었다.


우리가 친구가 된 이후 33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난 결국 홍대 대학원에 떨어졌고,

민정이는 중국으로 가버렸다.

나는 인테리어 회사 시공부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공 기사로 일을 했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가 포기하고 기나긴 슬럼프에도 빠졌었다.

나는 민정이가 유학을 마치고는 한국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24살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반은 중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싱글이고,

나는 결혼을 했다.

몇 년 전 민정이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그녀는 오래 방황을 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몇 년을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다가 결국 영원한 난임의 세계로 입성하게 되었다.

우리가 걸어온 세월 동안 슬프고 아픈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행복하고 기쁘고, 함께 축하해 줄 일들이 많았고, 그녀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는 게 감사하다.


민정이와 나는 오십 살이 되었다.

그렇다고 100만 원을 실컷 쓸 수 있을 만큼은 여전히 턱도 없다. 이따금 우리는 서로의 수다를 그리워하며 통화를 한다. 그리곤 여전히,


“100만 원 한번 실~컷 써봤으면 좋겠다!”라며 낄낄댄다.

“다음에 너 한국 들어오면 무학여고 한번 가자. 요즘은 옛날처럼 학교 안에서 맥주 못 마셔. 알지? 카스를 종이 봉다리에 둘둘 싸가지고 가자. 당연히 숏다리랑.”


이렇게 멈추지 않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그날의 첫눈 오던 날처럼 중국의 민정이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곤 옛 기억을 소환하는 상념에 젖어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