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첫째니까 당연히 뭐든 새것으로 물건을 가졌다. 언니는 여자로서 첫째 딸이기 때문에, 오빠한테 물려받을 수 없는 옷이나 학용품들을 새로 사서 사용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물건이라고는 새것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항상 언니 것을 물려받거나 하물며 오빠 입던 옷까지도 물려 입었다.
한 번은 엄마한테 대들었다.
“왜 난 새 옷 안 사주고 맨날 오빠 것 물려 입어? 이거 언니 입으라고 해.”
“언니는 오빠 옷 안 입겠대.”
“그럼 나도 안 입을래.”
“넌 그냥 입어. 오빠가 깨끗하게 입었어.”
나의 잠재의식 속에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다.
중고 물건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에게 다가오거나 들어오는 물건들은 대부분 빈티지나 누군가가 쓰던 물건들이다.
마흔다섯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고, 언젠가의 결혼을 위해 돈도 모으고 있었다. 게다가 엄마나 아빠는 이미 연세가 많으셔서 수입원이 따로 없으셨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결혼은 내가 모은 돈으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오빠와 언니는 집에서 결혼자금을 대준 것을 생각했을 때 걱정이 많으셨던 부모님은 나의 대대적인 발표에 흐뭇해하셨고,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엄마는 정말 그릇 하나 안 사주셨다. 대신 평생 엄마가 쓰시던 밥공기, 국그릇, 접시, 수저를 주셨고, 친할머니가 쓰셨던 진짜 빈티지한 1월~12월까지 있는 커피잔 세트까지 주셨다. 이불도 엄마가 얼마 안 쓰고 보관만 해놓은 여름 이불, 담요 등을 모아 모아 주셨다.
내 결혼은 일종의 친정집 정리 정돈이었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가끔 내가 집에 들르면 이것저것 주신다.
엄마가 입으려고 샀던 바지인데, 너무 짧고 작아서 가져가라고 하신다. 10년 전에 입던 재킷인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못 입을 거 같다고 주신다. 아빠가 입으시던 티셔츠와 바람막이 여름 점퍼도 신랑 입으라고 주신다. 집에 있던 반찬도 주시고, 냉동고에 있던 돌덩이 같은 소고기도 주신다.
어느 날 갑자기 짜증이 났다.
어렸을 때부터 물려받던 나의 인생은 결혼해서까지도 마찬가지구나.
게다가 난 물건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대부분 딱 2개만 필요하다. 손님용 그릇 빼고는 집안이 단출하고 단순하다. 엄마, 언니, 친구들이 자꾸 주는 그 어떠한 물건들이 버거워졌다.
올해 초 당근 마켓을 처음 시작했다.
집에 있는 안 쓰는 머그컵, 누가 선물로 준 액자, 있다고 하는 대도 친구가 준 마늘 야채 다지기, 신랑이 총각 때 샀는데 쓰지 않는 등산 가방 등을 팔려고 내놓았다.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에 내놓으니 금방 팔렸다. 내 마음과 집도 홀가분해지고,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니 금상첨화였다.
내가 자꾸 물건 가지고 들락날락하니까 신랑이 대체 뭐 하는 거냐고 묻는다.
3주일 전에 신랑 핸드폰에 당근을 깔아주고, 사용법을 설명해줬다.
난 팔려고 깔았는데, 신랑은 자꾸 사들인다.
등산 안 간 지도 오래됐으면서 등산 모자를 샀다. 벨트가 3개나 되는데 벨트가 필요하단다. 지갑만 들고 다니던 사람이 남성용 파우치를 사 왔다. 그러더니, 다 마음에 안 든다고 모자, 벨트, 파우치를 다시 당근에서 팔았다.
이젠 재 당근까지 한다.
“오빠! 대체 당근 언제까지 할 거야? 내가 말했잖아. 막내로 평생 중고 물건만 물려받아서 난 중고가 싫다고!
이러다가 당근으로 집도 사겠어!!!”
“진짜 집도 있어. 경기도 오포에 누가 7억에 내놓았더라. 싼 거 나오면 한번 보러 갈래?
그리고 오빠가 네 생일선물 잘 못 챙겨줬잖아.
올해는 루이뷔통 가방 하나 사줄게. 당근에 5만 원에 나왔더라. 일단 살까?”
한번 중고 인생은 영원한 중고 인생인가
평생을 중고 물건으로 살아온 내 인생이 지긋지긋해서 내다 팔고 있는데, 신랑은 너무 싸고 좋은 물건들 천지라고 신나서 중고 물건을 계속 들여온다.
내가 깔아줬으니, 내가 지워줘야겠어. 오늘 밤 당신이 잠든 사이. 앞으로 내 인생엔 새 물건으로 가득 찰 찬란한 날들만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