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시대
“건너편에서 사람이 오네. 어, 남자다. 청년이네! 뭐야. 턱스크 썼잖아!! 저 사람 지나갈 때 숨 참고 있어!!”
나 말고 다른 사람, 타인에 대한 불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신랑과 저녁 운동을 하려고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밖으로의 외출이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둘 다 마스크를 쓰고 호흡 조절을 해가며 걷고 있었다. 공원까지 가는 보행로의 폭은 2M도 되지 않은 좁은 길이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마스크를 턱에 걸친 청년이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손 씻기나 위생에 대해 약간의 결벽 증세가 있는 신랑은 청년이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과 함께 내가 해야 하는 행동 양식의 룰을 알려줬다.
그 청년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저 청년도 아무 이상이 없고 문제가 없으니 저렇게 운동하려고 나온 것일 텐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코로나 이전의 시대에 비해 조용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누구라도 핸드폰으로 떠들거나, 친구와 소리 내어 깔깔거린다면 대번에 타인들부터 눈치를 받는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프랑스에서 사는 친구가 있다.
유럽, 특히 프랑스의 문화 중 성인끼리의 비쥬(Bisou) 인사가 있다. 우리말로 볼 키스라고 하는데, 상대방과 짧게 양쪽 볼을 번갈아 대는데 한쪽 볼이 닿을 때마다 입술만으로 ‘쪽’ 소리를 내는 것이 비쥬의 특징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도 하는 인사법이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내 친구는 프랑스 친구들에게 ‘비쥬 인사 거절’을 선언했다. 너무 깔끔 떠는 것 아니냐면서 프랑스 사람들끼리는 여전히 비쥬를 한다고 했다.
며칠 전 통화하면서, 은근히 궁금해졌다.
“아직도 너만 비쥬 안 하고 있니?”
“아냐, 언니. 이젠 프랑스 사람들도 아무도 비쥬 안 해. 이러다가 몇백 년 이어진 프랑스식 인사법도 바뀌겠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몇백 년간의 느린 변화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호흡이 관련된 변화는 단 몇 초간의 순식간에 문화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섭고 놀라웠다.
오늘은 신랑이 늦게 온다고 연락이 왔다. 혼자 먹은 저녁이 소화가 안 되어서 집 앞을 딱 10분만 걷고 오려고 나섰다. 몇 분을 가다 보니 마스크를 안 가져온 게 생각났다.
‘다시 돌아갈까? 아니다. 딱 10분만 걷다 들어갈 거니까..’
금방 끝날 걷기 운동을 위로 삼아 마스크 없이 나섰다.
건너편에서 산책 중인 젊은 부부와 아이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세 명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난 무슨 죄인처럼 지레 겁을 먹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입틀막을 하며 걸어가는데, 남자가 아이를 안고는 와이프와 함께 쌩쌩 달리고 있는 차도로 내려가서 걷는 게 아닌가.
그의 생각엔,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내 앞을 지나가느니, 위험을 감수하고 차도로 걷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나가는 부부의 눈길이 너무 따가워 난 바로 운동을 포기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나 말고, 우리 가족 말고는 안전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시대이다.
이것이 진정한 ‘타인은 지옥’이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어 이젠 코로나가 감기 정도라고 여겨질 때가 오면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예전처럼 큰 소리로 떠들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까?
마스크를 한번 쓰기는 어려워도 이젠 벗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많다. 공기를 통해 상대방이 가진 질병과 감염경로가 나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 우리의 지금을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