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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Aug 26. 2020

코로나 시대 타인은 불신 지옥이다

불신의 시대

“건너편에서 사람이 오네. 어, 남자다. 청년이네! 뭐야. 턱스크 썼잖아!! 저 사람 지나갈 때 숨 참고 있어!!”


나 말고 다른 사람, 타인에 대한 불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신랑과 저녁 운동을 하려고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밖으로의 외출이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둘 다 마스크를 쓰고 호흡 조절을 해가며 걷고 있었다. 공원까지 가는 보행로의 폭은 2M도 되지 않은 좁은 길이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마스크를 턱에 걸친 청년이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손 씻기나 위생에 대해 약간의 결벽 증세가 있는 신랑은 청년이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과 함께 내가 해야 하는 행동 양식의 룰을 알려줬다. 


그 청년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저 청년도 아무 이상이 없고 문제가 없으니 저렇게 운동하려고 나온 것일 텐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코로나 이전의 시대에 비해 조용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누구라도 핸드폰으로 떠들거나, 친구와 소리 내어 깔깔거린다면 대번에 타인들부터 눈치를 받는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프랑스에서 사는 친구가 있다. 

유럽, 특히 프랑스의 문화 중 성인끼리의 비쥬(Bisou) 인사가 있다. 우리말로 볼 키스라고 하는데, 상대방과 짧게 양쪽 볼을 번갈아 대는데 한쪽 볼이 닿을 때마다 입술만으로 ‘쪽’ 소리를 내는 것이 비쥬의 특징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도 하는 인사법이다. 

프랑스 비쥬(Bisou) 인사법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내 친구는 프랑스 친구들에게 ‘비쥬 인사 거절’을 선언했다. 너무 깔끔 떠는 것 아니냐면서 프랑스 사람들끼리는 여전히 비쥬를 한다고 했다. 

며칠 전 통화하면서, 은근히 궁금해졌다. 


“아직도 너만 비쥬 안 하고 있니?”

“아냐, 언니. 이젠 프랑스 사람들도 아무도 비쥬 안 해. 이러다가 몇백 년 이어진 프랑스식 인사법도 바뀌겠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몇백 년간의 느린 변화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호흡이 관련된 변화는 단 몇 초간의 순식간에 문화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섭고 놀라웠다.




오늘은 신랑이 늦게 온다고 연락이 왔다. 혼자 먹은 저녁이 소화가 안 되어서 집 앞을 딱 10분만 걷고 오려고 나섰다. 몇 분을 가다 보니 마스크를 안 가져온 게 생각났다. 


‘다시 돌아갈까? 아니다. 딱 10분만 걷다 들어갈 거니까..’ 


금방 끝날 걷기 운동을 위로 삼아 마스크 없이 나섰다. 

건너편에서 산책 중인 젊은 부부와 아이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세 명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난 무슨 죄인처럼 지레 겁을 먹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입틀막을 하며 걸어가는데, 남자가 아이를 안고는 와이프와 함께 쌩쌩 달리고 있는 차도로 내려가서 걷는 게 아닌가

그의 생각엔,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내 앞을 지나가느니, 위험을 감수하고 차도로 걷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나가는 부부의 눈길이 너무 따가워 난 바로 운동을 포기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나 말고, 우리 가족 말고는 안전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시대이다.
 이것이 진정한 ‘타인은 지옥’이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어 이젠 코로나가 감기 정도라고 여겨질 때가 오면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예전처럼 큰 소리로 떠들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까? 

마스크를 한번 쓰기는 어려워도 이젠 벗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많다. 공기를 통해 상대방이 가진 질병과 감염경로가 나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 우리의 지금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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