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구체적이다, 추상적인 것은 언어뿐

by 오서리
1960년대에 보잉 727기의 설계를 준비 중이던 관리자들은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727기는 131명의 승객들을 수용할 것이며, 마이애미에서 뉴욕까지 직항을 운행하고, 라과디아 공항의 4-22 활주로를 이용할 것이다(4-22는 1.6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짧은 활주로로, 당시의 여객기가 이용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이런 구체적은 목표를 설정한 덕분에 보잉 사는 설계에서부터 실질적인 생산에 이르기까지 수 천명에 달하는 전문 인력을 조화롭게 협력시킬 수 있었다.

만일 그들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여객기’ 였다면 보잉 727기의 제작은 훨씬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바로 전 에세이에서 썼듯이, 몇 년 전 회사를 들어갔을 때 오리엔테이션 날 회사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를 알려주었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
비전 : 글로벌 식음 기업
미션 : 건강한 삶의 질을 높여 인류 행복에 공헌한다
핵심가치 : 매일의 일상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Q&A 시간에 회사의 비전을 ‘잘 모르겠’다고 했고, 발표자는 스크린에 쓰여있는대도 모르겠다고 질문했던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이제야 내가 그날, 왜 회사의 비전을 모르겠다고 했는지 알겠다.


멋진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들이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다.

글로벌, 식음, 건강, 삶, 질, 인류, 행복, 공헌 등 쓰인 단어는 멋지고 세계 평화적인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포괄적이며 추상적이다. 만일 기업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가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분명했다면 난 그 기업을 이해하고 과연 더 오래 다녔을까?


며칠 전 읽은 책에서 ‘배달의 민족’ 기업에서 내부 브랜딩을 위해 정한 ‘내부 규칙’을 보았다.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실행은 수직적, 문화는 수평적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줍는다
휴가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보고는 팩트에 기반한다
일의 목적, 기간, 결과, 공유자를 고민하며 일한다
책임은 실행한 사람이 아닌 결정한 사람이 진다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객 창출’과 ‘고객만족’이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라!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1번과 11번이었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라는 말은 바로 ‘지각 엄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을 흔드는 표현이며 매우 구체화된 목표지향적인 언어이다. B급 문화 감성으로 알려진 배달의 민족 기업이지만, 자유와 자율은 분명 다르다는 무언의 압력마저 느껴지는 언어였다. 자율적인 분위기라고 그것이 방종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지각 엄금’이라는 단어보다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라!’는 CNN의 창업자 데드 터너가 한 말이었다.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Lead, Follow, or Get out of the way)’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총대 메고 리더십을 발휘하든지, 아니면 확실하게 팔로우십을 발휘해야 한다. 어느 회사이건 간에 일하다 보면, 끊임없이 불평, 불만 그리고 안 되는 이유만을 설명하는데 에너지를 전부 쏟아내는 직원들은 늘 있다. 방관자가 되어서 불만만 갖는 사람은 조직에 필요 없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만들기, 즉 핵심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고, 그다지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저도 모르게 추상적인 세계로 발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린다. 그것이 소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Stick 스틱!, 칩 히스ᆞ댄 히스 저, 웅진윙스>

<배민다움, 배달의 민족 브랜딩 이야기, 홍성태 저, 북스톤>


https://brunch.co.kr/@kimheejung8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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