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나는 급진적인 사람이었다. 원칙적이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를 좋아했다.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원칙에 위배되는 것에 분노하며, 잘 조직되며 정돈되어 있어야 하는 까다로운 성격이었다. 비판적이고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분노와 화’는 나의 친구처럼 되어버렸었다.
누군가 나를 건드리면 휘발유처럼 내 몸 하나 불사르며 활활 타올랐다.
결혼을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생각하는 내 남편의 기준점은 ‘성격’이었다.
내가 워낙 활활 타오르는 타입이었기에 남편은 탐구자적이며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 돕는 사람의 타입을 원했었다. 감정적인 교류를 잘하고 진지하며 마음이 따뜻한 그런 사람을 원했었다. ‘상냥, 너그러움, 자신을 희생’ 이 세 가지가 나에겐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므로 딱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의 이상형은 확고했었다.
내 나이 45살에 50살짜리 아직 남아있는 남자를 만났다.
딱 내 이상형이었다.
대구 남자라서 말투와 행동은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친절하고, 상냥하고, 나를 챙기는 모습이 부드러웠다. 주위에 좋은 친구들도 많고 상황에 적응하는 모습이 좋았다.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 영주로 드라이브를 갔었다. 예전에 영주에서 먹었던 고기 집이 생각난다며 신랑은 나를 데리고 갔었다. 영주 한우가 워낙 맛이 좋다며 둘이 맛있게 먹고는 계산하고 나오는 신랑 손에 묵직한 검정 봉지가 들려있었다.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아이스팩까지 넣어가지고 왔다. 아직 데이트를 하는 단계인데 우리 부모님까지 챙기는 모습이 내 마음에 훈훈하게 다가왔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해버렸다.
역시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봐야 하는 건가..
내가 몰랐던 신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신랑은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바쁘고 생산적이며 변덕스럽고 즉흥적이었다. 실질적이고 부산스럽고 약간 산만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하기를 추구했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타입이었다.
놀기 좋아하고 위트 있으며 재미를 추구하고 에너지 넘치는 것이 나와 비슷했지만, 그는 ‘욱 쟁이’였다. 별 거 아닌 일에 흥분 지수가 높았으며, 욱 하는 성격이 나와 비슷했다.
기름을 분류할 때 발화점으로 구분을 한다. 발화점이란 불이 붙는 시점이다. 발화점이 높은 것이 불이 붙기가 힘들다. 식용 기름 중 발화점이 가장 높은 아보카도유 같은 사람을 만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신나’였다. 휘발유보다 폭발적인 위력을 지닌 신나였다.
우리 둘은 활활 타올랐다. 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소한 일들로 둘은 퐈이팅이 넘쳤다. 그러나 둘 다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리고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미친 듯이 싸운 후 10분 만에 서로 상추쌈 싸서 먹여주는 타입이었다. 나의 이상형과는 정반대의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신나는 휘발유를 만났다.
결혼 초에는 잘못된 만남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만일 내가 부드럽고 상냥하고 희생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그는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신나와 휘발유는 너무 똑같아서 서로 상처 받을 일은 없다.
그렇게라도 장점을 찾아내는 수밖에 지금은 방법이 없다.
<에니어그램의 지혜, 돈 리처드ᆞ러스 허드슨 저, 한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