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흙바닥 위에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는 손가락. 세계는 고요하고 침묵이 둘러싸고 있다. 아이의 손가락 끝에 닿은 대지는 가늘고 긴 골짜기를 만들며 희미하게 새로운 세계를 그려낸다. 의미 없이, 의미 없는 몸짓일지라도 또 하루를 건너는 중이다. 다시 보자. 아이는 호리호리한 청년이 되어 있고, 여전히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에 몰두한다. 대지에 그리는 몸짓. 마음이 쏟아내는 울음. 말 없는 통곡. 세계가 침묵했던 그때처럼 아직 우리는 사슬을 끊어내지 못했고 청년은 결코 일어설 수 없다.
담장이 너무 높다. 그러니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정신이다. 갇혀있는 자여, 자유가 아니라 자유를 꿈꾸는 시간이여, 너 무거운 욕망아, 이제 그만 자자. 나를 도우시는 이가 아직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음성을 듣는다. 그 음성을 따라 담을 넘는다. 그 아름다운 소리가 나를 깨운다. 이제야 잠은 흔들림을 즐기면서 더 잘게 분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