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아니다.
다만 지는 것일 뿐...

by 해원

마을은 낡았다. 집들은 퇴색했고 길은 패였다. 마을과 함께 심었을 뚱뚱한 가로수들도 온몸에 상처를 매달고 서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을은 몹시 곤궁해 보였다.
산뜻한 색깔과 반듯한 벽을 가진 젊은 집도 있기는 했다. 비스듬한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마을을 굽어보는 서너 채의 집들이 그랬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다른 집들보다 크게 화려하거나 넓지도 않아,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다소 교만해 보일 망정 이질감까지는 주지 않았다.

비행장: 격납고 맞아요.ㅎ


겨울 아침이면 나는 멍뭉이들과 함께 그 언덕에 자주 올랐다. 젊은 집들을 지나 비탈을 오르면 길은 이내 평지가 되고, 그 평평한 길 끝에 뜻밖의 공간이 나타났다.
‘자락동 비행장’이라는 표지판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길 이름인 줄 알았다. 이런 촌 동네에 비행장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고처럼 생긴 격납고 하나가 달랑 서 있는 황량한 공터는, 무심히 보아서는 비행장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비행장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격납고 안에는 개인용 경비행기들이 있다고 했다. S의 남편 소유의 비행기를 포함해 세 대의 비행기가 들어 있다고 했다.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월등하게 값이 나갈 것이고 유지비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짐작은 했다. 그러나 한번의 비행에 소모되는 기름 값이 최소 3백달러(45만원)가 된다는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날아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S를 만나기 위해, 속된 말로 꼬시기 위해, 몰고 다니다가 결혼에 골인한 후로는 한 번도 날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 되었다. 나를 위해 비행기를 띄우겠다고 그들이 말했을 때, 냉큼 비행기에 올라 앉은 마음과는 달리 입은 정중히 사양을 하고 있었다. 기름값을 받든 안 받든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나도 비행기를 가진 남자와 데이트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냐 라는 실언으로 비행을 대신했다.


“이 동네, 가난한 줄 알았는데 숨은 부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은 이웃사람은 실바람처럼 웃었다.
“부자가 어디 있어요?”

“몇 천, 아니 몇 만 에이커씩 되는 농장주들도 여럿 되고, 석유가 나오는 땅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잖아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소유한 게 많다고 다 부자는 아니지요.”

20230105_133142.jpg 언덕에서 내려다 본 하얀 동네 : 저들 속에 우리집 있다오.

외지에서 들어왔다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락동 토박이들의 삶의 방식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직 땅을 지키고 대물림 하는 것밖에 모른다는 말로 그들을 조소했다. 그들의 재산인 부동산 不動産은 글자 그대로 소비 불가의 움직임 없는 재물로, 소유주인 그들 역시 변화나 도약 따위는 시도할 줄 모르는 고인 물 같은 사람들이라고 답답해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을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었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땅과 하나가 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소유한 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을 지키는 것이며 대물림을 하는 것이 영속하는 길이었다.

그들은 영원을 믿기에 죽음도 믿지 않았다.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사건일 뿐이며 끝이 아니라 하나의 통로라고 믿어 울지도 않았다.

그들의 죽음은 종말의 의미가 담긴 dead나 decease 보다는, ‘시간이 지나가다’ ‘고통이 사라지다’ ‘바람이나 소리가 잦아들다’ 라는 뜻을 같이 담고 있는 pass away로 표현이 되었다. 해가 지고, 꽃이 지고, 잎이 지듯이 그들의 죽음은 다만 숨이 지는 것이었다. 지는 해는 다시 뜨고, 지는 꽃은 열매를 맺고, 지는 잎은 새싹을 틔우듯, 지는 숨은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자락동에는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는 삶은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에게 부富는 축적이 아니라 지속이고, 소유가 아니라 신탁이며, 삶은 소모가 아니라 순환이었다.


집이 낡고, 길이 패이고, 고목들은 상처 투성이지만 마을은 아파하지 않았다. 울거나 신음하지 않았다. 자락동의 지경은 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었고, 대물림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영생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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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없는 대물림으로 지켜져 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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