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작업노트
더글러스 애덤스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궁극적인 질문을 해결하고자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을 만든다. 이들은 인공지능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주와 삶,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의 답은 무엇인가?"
깊은 생각은 무려 750만 년 동안 연산을 진행한 후 마침내 단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그것은... 42이다."
놀란 외계 문명은 그 의미를 되묻지만, 인공지능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대화는 얼핏 농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사고방식 간의 간극을 아주 날카롭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인공지능은 계산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것은 입력된 정보에 대한 연산일 뿐이다. 질문이 모호하거나 맥락이 복잡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기대하는 방식의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인간이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기대하며 질문했지만 그 질문의 구성이나 의미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주관적이었다. 그 결과 인공지능은 기계적으로 하나의 숫자를 도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42였다.
이것은 우리가 AI에 질문을 던질 때 그 질문 자체가 제대로 정의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AI가 계산한 답은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 숫자 하나에 대해 수십 년 동안 해석하고 상징을 부여하며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인간은 정확한 해답보다는 의미와 서사 감정의 흐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출력을 도출하는 시스템이지만 인간은 그 출력을 해석하고 의미를 창조해 내는 존재이다. 그렇게 보면 42라는 숫자는 인공지능의 한계이자 인간 인식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생성형 AI는 ‘정답을 말해주는 도구’가 아니다. 이들은 막대한 양의 언어 데이터를 학습한 뒤 입력된 문장의 흐름에서 가장 그럴듯한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즉 이들은 정확한 지식보다 ‘맥락 기반의 예측’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예측이라는 과정은 때로 우리가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공지능의 응답은 언제나 논리적이진 않지만 그 안에 인간이 해석할 수 있는 문학적 여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42’는 무의미함을 대표하는 숫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의미를 만들고 싶어 하는 본능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답이면서 인간이 가장 복잡하게 해석하려는 대상이다.
그렇기에 ‘42’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것은 AI의 철학이자 인간 사고의 거울이며 우리 모두가 던지고 있는 질문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750만 년의 연산 끝에 ‘42’라는 숫자를 내놓은 인공지능처럼 오늘날의 AI 역시 질문에 응답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AI는 단순히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방식에 따라 그 세계관 자체가 달라지는 거울과도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에게서 얻는 정답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그 질문에 담긴 태도와 상상력 그리고 의미이다. 단순한 정보의 검색을 넘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우리 사회와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비출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바로 앞으로 도래할 미래의 방향을 정한다.
AI가 제공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질문이라는 행위에 담긴 인간의 경험과 존재의 깊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