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을 망친 사람들1

마르셀 뒤샹

by kim hojin

종종 예술이 '무엇'인지 묻는 대신 '어디까지' 예술인지 묻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 질문을 촉발한 사람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이는 아마도 마르셀 뒤샹일 것이다.

뒤샹의 소변기 작품 <샘>을 떠올려 보자. 그는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 기성품(Ready-made)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다. 이때부터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장인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 순간의 전복은 오늘날의 예술에 역설적인 고민을 던진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반대로 예술은 더 이상 특별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뒤샹은 왜 본인의 이름을 숨겼을까?"


뒤샹은 <샘>을 발표할 때 'R. Mutt'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혹자는 이것이 그의 확신 없는 태도의 반영이라고도 본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작품이 주는 충격과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기 위해 작가의 정체성을 오히려 뒤로 감춘 것은 아닐까 싶다. 뒤샹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건 무엇일까?"

뒤샹 이후 현대미술은 분명히 자유로워졌다. 개념이 작품이 될 수 있고, 사물이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것이 쉬워져 버렸다. 이제는 그저 보기 좋고, 눈에 즐겁고,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가 넘쳐난다.

뒤샹의 작품은 단지 시각적 즐거움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철저히 관념적이며 개념적인 도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예술은 관념보다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마치 뒤샹이 열어놓은 가능성의 문이, 역설적으로 표면적이고 즉각적인 시각적 즐거움의 범람으로 이어진 것 같은 아이러니를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예술에서 작가의 의도와 관객의 해석 사이에 정확한 지점이 있을까?"

정확한 지점은 없다. 작가가 제시한 개념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확장된다. 관객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려 시도하고, 때로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의미까지 부여하기도 한다. 뒤샹의 <샘> 역시 최초의 작가 의도와는 별개로 수많은 예술 비평가와 관객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획득해갔다.

작품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인 예술의 틀과 규칙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뒤샹이 원했던 방식으로 말이다.


"뒤샹의 작품이 오늘날 작가들에게 주는 영감과 강박"

뒤샹은 현대미술의 사고방식을 전환한 혁명가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거대해서, 작가들에게 때로는 강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새롭고 낯설게, 충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생긴다. 결국 뒤샹의 개념은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인 동시에 작가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벽이 된 것이다.

뒤샹은 미술사의 위대한 개척자였지만 그로 인해 현대미술은 스스로의 정의와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얻게 되었다. 과연 모든 것이 예술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예술'이라 불러야 할까?

어쩌면 뒤샹의 가장 큰 유산은 이러한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 아닐까 싶다.
예술은 질문에서 시작되고 질문에서 끝난다. 그리고 뒤샹은 그 질문의 원점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뒤샹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다시 우리만의 질문을 던져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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