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유익해야하나? 궁금하면 안되나?

예술과 과학이 제도 안에서 사라지는 대한민국

by kim hojin

1. 유익성이라는 조건


우리 사회에서 예술과 과학은 늘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한다. 예술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고 과학은 기술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그 전제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우리는 묻지 않는다. 궁금한 것은 언제부터 쓸모를 입증해야만 하는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진흥법」 제1조에서 문화예술의 진흥을 국민의 문화향수권 증진과 창조력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정의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학기술기본법」 제1조 역시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기반으로 규정한다. 모든 출발이 기여라는 단어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예술과 과학은 언제나 그렇게 출발했을까?



2. 법의 언어와 사라지는 질문


법은 정리된 말로 시작되고 그 말은 사람들의 사고를 정돈한다. 예술지원사업은 공공성과 접근성을 강조하고 과학연구계획은 실용성과 산업적 효과를 요구한다. 공모에 응모하는 예술가도 연구비를 신청하는 과학자도 이 말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며 과학은 성과가 수치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심사 기준에서 탈락하거나 예산 편성에서 제외된다. 결국 질문은 점점 줄어든다. 탐색은 조심스러워지고 확신이 없는 말은 점점 허락되지 않는다. 법이 보장한 자유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묻고 싶은 질문을 증명해야 하는 제도적 현실이 존재한다.



3. 쓸모없음에서 시작된 것들


하지만 역사는 늘 그 반대편에서 움직여왔다. 프랑스는 1959년 세계 최초로 문화부를 만들며 문화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그 문화는 국민을 위한 정보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한 공간으로 정의되었다. 예술은 때로 사회를 불편하게 해야 하며 모든 시민이 감정적으로 동의하지 않아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미국에서 과학은 자유로운 탐구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연방정부는 필요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지만 연구 방향에 개입하지 않는다. ‘호기심에 의한 연구(curiosity-driven research)’라는 개념은 아무런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주제에도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GPS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시엔 아무 쓸모가 없던 이론이었다.



4. 질문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의 제도는 질문을 만드는 사람보다 질문의 유용성을 먼저 묻는다. 무엇을 알고 싶은가보다 그것이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예술가는 감각보다 목적을 앞세워야 하고 과학자는 발견보다 증명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 호기심은 사라지고 정당화된 이유만 남는다. 그러나 모든 질문이 처음부터 타당하지는 않다. 질문이기 때문에 허약하고 불확실하다. 중요한 건 그 질문이 '왜 필요한가가 아니라 왜 던질 수 없는가?' 이다. 우리는 질문의 권리를 가진 존재이다.



5. 다시 묻는 일의 가치


예술도 과학도 사실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아직 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묻고 싶어 하는 존재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나 증명되지 않은 원리를 탐색하는 일은 무의미한 낭비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여러가지중 하나이다. 제도는 질문을 줄이고 결과를 강조하고 질문은 언제나 그자리에 있다. 그래서 유익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면, 그 질문은 정말 궁금했던 것일까?. 궁금하면 안 되는 세상은 무엇을 잃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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