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공모전, 예술의 이름을 빌린 착취

공모전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신진 작가의 등골을 빼먹는 구조

by kim hojin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는 본래의 매체예술(Media Art)과는 다르다. 매체예술은 기술과 예술의 융합등을 통해 철학적 탐구와 미학적 실험을 지향해왔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미디어아트’라고 불리는 것들의 대부분은 영상 기반의 콘텐츠 제작에 가깝다. 문제는 이 영상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공모전과 행사에 소비된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미디어아트 공모전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저렴하게 수집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참가비를 걷고, 상금은 낮으며, 저작권 활용 조항은 광범위하다. 심사 과정 역시 투명하지 않다. 겉으로는 ‘기회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물을 헐값에 확보하는 구조다.


어느 지역 A 공모전은 작품 한 점당 2만 원의 참가비를 받으면서도, 대상 상금은 30만 원에 불과했다. 작가는 지원자가 아니라 상금 재정을 메워주는 고객이 된다. 한 기업 B 공모전의 1등 상금은 300만 원이었다. 그러나 수상작은 기업 홍보와 전시에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도록 약관에 명시되어 있었다. 상금은 보상이 아니라 사실상 저가 매입이었다. 또 다른 지자체 C 공모전의 약관에는 ‘수상작은 주최 측이 홍보/전시/재가공에 활용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으나 보상이나 기간 제한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는 협약이 아니라 무상 사용권 계약이다.

그리고 막상 이런 공모전에서 살아남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잘 포장된 디지털 광고다. 작가의 철학적 태도와 창작 의도는 사라지고 주최 측이 요구하는 보기 좋은 영상만 남는다. 주제를 제한하고 수정까지 요구하는 방식은 마치 전시회를 앞두고 작가에게 작품 수정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술이 아니라 발주형 콘텐츠 제작으로 전락한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신진 작가들이다. 기회를 갈망하는 젊은 창작자들은 몇 달 동안 공을 들여 작품을 준비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저비용 콘텐츠 활용과 수정 요구이다. 말할것도 없지만 상금이라는 이름의 미약한 보상도 있다. 어떤 영상예술은 평면회화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기술적 자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가치는 존중받지 못하고 신진 작가들은 처음부터 예술가가 아니라 저가 제작자로 길들여진다. 이는 단순한 불공정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이름을 빌린 구조적 착취다.


문제는 이 구조가 민간 기업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까지 확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제를 특정하고 수정과 활용을 요구하며 작품을 홍보용 자원으로 소비한다. 이 결과 결국 사회 전체가 피해자가 된다. 관객은 진짜 예술을 접할 기회를 잃고 작가는 창작의 권리를 빼앗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약관 개선이 아니다. 미디어아트의 잣대를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다원예술을 탐구하며 정책적 방향을 세우듯 미디어아트와 뉴미디어아트도 학술적 연구와 정책적 기준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작품과 콘텐츠를 구분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잣대를 정립해야 한다.


이 잣대가 마련되지 않는 한, 미디어아트는 예술이 아니라 계속해서 콘텐츠 장사로 소비될 것이다. 더 이상 ‘기회를 준다’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공모전이라는 이름으로 예술가의 노동과 철학을 헐값에 파는 구조는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



필자가 최근 검색한 몇몇 공모전의 내용들

A공모전 (지자체 주최): 작품 1점당 2만 원 참가비, 대상 상금 30만 원, 심사 불투명

B공모전 (기업 주최): 1등 상금 300만 원, 수상작은 홍보·전시에 자유롭게 활용 가능, 별도 보상 없음

C공모전 (지자체 주최): 약관에 ‘수상작은 홍보-전시-재가공 활용 가능’ 명시, 보상-기간 제한 없음

D공모전 (익명): 수상작에 대해 저작권 활용권 요구 및 2차적 저작물 생성 권리 포함 정당한 대가 없음

등등..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추상표현주의로서의 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