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은 경기

Ⅱ. 여가·취미

by 이들멘

‘세계 1위’ 안세영이 한국 배드민턴계에 한 획을 그었다. 이미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을 제패한 그녀는 파리올림픽까지 접수했다.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선수인 허빙자오를 2대 0으로 꺾었다. 여자 단식에서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의 방수현 이후 28년 만에 다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녀의 숙적 천위페이(중국)를 8강에서 꺾는 저력을 보여줬던 허빙자오가 끝까지 맞섰으나 그녀의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다.


안세영은 1세트 경기 초반엔 다소 고전했으나 금세 제 흐름을 찾았다. 1세트부터 경기 운영 능력부터 압도적이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기술을 적절히 섞어 쓰며 점수 차를 벌렸다. 2세트 후반이 고비였다. 하지만 그녀는 위기에 강했다. 긴 랠리 끝에 5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다시 기세를 잡았다. 반면 상대방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경기 종료와 함께 그녀가 크게 포효하자 여왕의 대관을 알리듯 장내엔 그녀의 모습만 보였다. 짜릿했다. 현장에서 그녀의 투혼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녀의 승리는 무릎 부상을 딛고 따냈기에 더욱 값지다. 지난해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결승 도중 무릎을 다친 그녀는 이번에도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경기를 소화했다. 이전 오픈 대회에선 부상으로 메달을 놓치기도 했으나 올림픽 결승전에서는 아픈 기색 없이 펄펄 날았다.


경기 후 안세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라며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응어리진 게 많은 듯했다. 올림픽 정상에 오른 뒤 그녀는 작심한 듯 대표팀을 향해 폭탄을 터뜨렸다.

"제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대표팀한테 크게 실망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하고는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어 "이야기를 잘해봐야겠으나 많은 실망을 했다.’라고 덧붙였다.

대표팀과 함께하기 힘들다고 한 그녀는 은퇴를 시사한 것이냐는 질문에 "저는 배드민턴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다 견딜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배드민턴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텐데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한 개밖에 못 건진 이유가 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지 않나"라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앞선 경기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막지 못해 점수를 내줄 때 코트에 드러누운 그녀를 보며 ‘저 친구 왜 저러지?’라고 했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었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제일 우선순위에 있었겠지만, 배드민턴협회를 비롯한 어른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쌓여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모든 게 끝난 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해냈다는 안도감, 무릎 부상을 딛고 우뚝 선 자신에 대한 대견함 등등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으리라.


‘수고했어, 셔틀콕의 여제! 남은 기간 파리에서의 낭만을 원 없이 즐겨. 그리고 앞으로도 죽 톡톡 튀며 변치 않는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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