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연주하다

Ⅱ. 여가·취미

by 이들멘


아침마다 일어나면 TV에서 종종 연주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 애호가인 아내가 유튜브를 찾아서 틀어놓았기에. 주로 피아노곡이 많았는데 어느 날은 바이올린곡이 들렸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게 그것처럼 들렸지만, 그날은 달랐다. 열대야가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옛날의 동남아 지역보다 더 후덥지근한 날씨로 바뀐 짜증을 날려버릴 정도로 청량했다. 하나하나의 선율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은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각 악장은 겨울의 다양한 모습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악장(Allegro non molto)은 차가운 겨울의 시작을 묘사했다. 2악장(Largo)은 따뜻한 난롯가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을 표현했다. 3악장(Allegro)은 얼어붙은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날씨를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 풍경으로 시작해서. 에어컨이 아닌 벽난로. 얼어붙은 길 위에서 넘어지는 장면 등등. 눈과 바람이 몰아치는 걸 상상할 때는 군대에서의 겨울 생활이 떠올랐다. 벽난로의 따뜻함은 에어컨을 틀어놓고 억지로 ‘이한치열(以寒治熱) 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요즘처럼 여름의 무더위가 일상이 되는 기후 위기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얼어붙은 길 위에서 넘어지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재수할 때 겨울의 멋쩍음이 떠올랐다. 그때 종로 1가 어느 상점 앞에서 눈길에 넘어져 꽈당하고는 둔탁한 몸이 넘어지면서 나는 소리에 놀라 재빠르게 일어나 그 자리를 떴던 뻘쭘함이 스쳐 지나갔다.


뭐든지 직접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글쓰기도 그렇지만 음악도 그렇다. 다만 엄두가 나지 않아 대들지 못할 뿐이다. 직접 피아노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켜는 건 시도조차 해볼 생각도 안 하고 있다. 하지만 악기도 하나 정도는 다루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자원봉사센터에 나가고 있다. 2년 이상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진행하고 있는 <이야기 독서>를 좀 더 많이 알리려는 요량이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가시화되면서, 다른 목표가 생겼다. 바로 하모니카를 배우는 거다. <이야기 독서>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 여성들도 모두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다. 그중 악기를 가르치는 여성이 있었다. 하모니카에 관심을 보이니 바로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하모니카 음계의 위치’를 핸드폰으로 한 장 찍어놓으라고 했다.


도에서 시작하여 레, 미, 파, 솔, 라, 시를 거쳐 다시 다른 도까지 한 옥타브의 음을 엇갈려서 들이쉬고 내쉬기만 하면 된단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 세상 쉽게 말하나 문외한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용기가 생겼다. 동아줄이 생겼으니 꽉 매달려봐야겠다. 올여름은 무더위 속에서도 글을 쓰며 견뎠다. 오늘로 72일째다. 찬 바람이 불 때쯤이면 목표인 100일을 채울 수 있겠다. 그건 그거고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사계는 비발디가 각 계절을 묘사한 소네트와 함께 작곡한 것으로, 음악과 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계 중 ‘겨울’은 무더위를 날리는 모든 걸 상상할 수 있다. 추운 겨울에는 반대로 사계 중 ‘여름’을 들어야겠다. 내년 여름에는 하모니카를 멋지게 불고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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