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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Oct 12. 2021

중국인 노부부의 결혼식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상하이 엑스포는 11년 전인 2010년에 개최된 (정식)엑스포다. 6개월간 그곳을 찾은 관람 인원은 세계 엑스포 역사상 가장 많은 8천만 명 가까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정부 관료, 대기업 사장 등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단체관광 형태로 그곳을 찾았다.

보통 5년마다 열리는 엑스포에는 세계 각국이 국가관 형태로 참가한다. 상하이 엑스포에는 UN 회원국 숫자와 비슷한 198개 국가가 국가관 형태로 참가했다. 그런데 상하이 엑스포에는 국가관 형태와는 별도로 한·중·일 3개국의 기업들이 참가하였다. 내가 상하이 엑스포와 직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계기는 기업들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개별 기업별로 전시관을 만들어 참가했으며, 한국과 일본은 개별 기업이 아닌 기업연합관 형태로 참가했다. 참가기업은 달랐다 - 한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일본은 중견기업 중심으로.


상하이 엑스포는 5월 1일에 개막되었다. 그날은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구름 같은 인파와 매일 같이 전쟁을 치르는 6개월의 장정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한국기업연합관은 우리나라의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볼거리와 다양한 이벤트로 무장하였다. 결과적으로 6개월 내내 참관을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 그때 나는 한국기업연합관 관장직을 맡고 있었다.     


상하이 엑스포가 진행되는 기간에 있었던 일 가운데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느 중국인 노부부의 결혼식이다. 그 결혼식은 한국기업연합관이 주관한 이벤트 중에 하나였다. 상하이의 찜통더위가 절정에 이를 때인 8월 16일에 한국기업연합관 1층 로비에서 개최되었다. 

그날은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음력 7월 7일이다. 중국에서는 바로 밸런타인데이(칭런지에, 情人節)다. 이날 행사에 맞춰 수많은 한-중 커플의 신청을 받아 미리 특별한 사연을 지닌 커플을 선정했다. 그리고 12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신랑과 신부 중 한쪽은 한국인이고 한쪽은 중국인인 4쌍의 커플이 한국 전통 방식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이름하여 <한•중 커플 웨딩마치>.     

그러나 결혼식 이벤트의 하이라이트는 4쌍의 한-중 커플이 아니라 중국인 노부부였다. 상하이 토박이인 짱하이량-뤼야펑 커플. 남편 장씨는 중증 사지마비의 장애가 있어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다. 당시 나이는 63세. 그러한 남편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내 뤼씨(당시 55세)는 20대의 꽃다운 나이 때 ‘평생 당신의 손발이 되어 주겠다’라며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함께 살아온 지 30년이 지났으나 아직 정식으로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 커플이었다.

사연을 보낸 남편 장씨는 ’이제껏 함께 살아온 아내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 ‘라며 간절한 의사를 밝혔다. 이에 이들 커플은 남녀 모두 중국인이라 원래 기준으로 보면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한국기업연합관은 검토 끝에 예외를 인정하여 한국 전통 방식으로 결혼하는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오후 2시 30분 노부부의 특별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웨딩마치를 울린 4쌍의 한-중 커플 주례는 한국 사람이 맡았다. 반면, 중국인 노부부의 결혼식 주례는 중국 사람이 진행하였다. 내가 특별히 부탁하여 주례를 모신 것이다. 역시 상하이 토박이이며 당시 상해수출입협회장이시던 탕(湯) 회장님께 부탁을 드리니 흔쾌히 수락하여 시간을 내주셨다. 그분과는 가끔 업무적으로 만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국인 노부부는 두 사람의 결혼 화보와 일상생활 등을 담은 사진을 영상으로 준비해 참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그분들을 위하여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포터스들의 축가 공연도 잊지 못할 축복이었다. 탕 회장님은 주례사에서 한국기업연합관이 중국인 노부부가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특별히 기회를 준 것은 상하이 엑스포에서 가장 멋진 이벤트 중에 하나라고 감격해했다. 

노부부의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인 사연은 중국의 TV 뉴스에 방영되는 등 관심이 집중됐으며, 결혼식 현장에서는 수많은 현지 언론들의 열띤 취재가 있었다. 당초 중국인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한-중 커플 결혼 이벤트를 계획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장애가 있는 남편 그리고 평생 그의 손발이 되어 헌신한 아내를 위해 마련한 노부부의 결혼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인 노부부는 상하이 엑스포가 성황리에 끝나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12월 어느 날 융단으로 만든 대형 패넌트를 들고 우리 사무실로 찾아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결혼식이라는 멋진 선물을 주신 한국기업연합관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장하이량·뤼야펑 드림’이라고. 

휠체어를 탔지만 언제나 활기차고 다정다감했던 남편, 그리고 남자처럼 호탕한 성격이지만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아내. 이들 상하이 토박이 노부부의 씩씩한 모습과 행복한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주례를 보셨던 탕 회장님은 3년 전 그렇게 많지 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전해 들었다. 노부부는 지금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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