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풍경·여행
카톡에 <방통대 대학원 중국어학과 동문 워크숍>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 기수를 표시하는 참석 희망자를 보니 다른 기수와 달리 우리 기수는 달랑 한 명만 있었다. 갈 생각이 별로 없으면서도 기수 카톡방에 ‘우리 기수의 힘을 보여주자’라는 글을 올렸다. 마지막까지 우리 기수는 한 명만 외롭게 반짝거렸다. 同期愛를 발휘하기로 했다.
드디어 D-day인 일요일 오전. 몇십 년 전의 감흥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며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탔다. 목적지는 춘천. 열차 안에서 처음에는 데면데면했다. 하지만 낯익은 동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걸 듣다 보니 1시간여는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문학관에 들러 김유정이라는 소설가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새삼 알았다.
이어서 집행부의 야심 찬 계획인 ‘술 시음’ 일정이 있었다. 논길을 따라 걸어간 우리 일행은 술도가에 들어가 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작은 잔으로 시음했다. 도수가 낮은 술로부터 높은 순으로 마시기가 이어졌다. 나는 요즘 들어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얼굴을 빨개지기에 집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지 말라’라는 아내의 권고를 충실히 이행했다. 시음 행사에 당연히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에는 ‘말술’이었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라는 속담처럼 마시지 않고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그 가게에 진열된 술 그리고 설명 글을 보는 데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근사하게 붙여진 술 이름과 함께 도수가 적혀 있었다. ‘배꽃 필 무렵 6%’ ‘만경에 비친 달 10%’ ‘바람의 노래 11%’ ‘동짓달 기나긴 밤 16%’ ‘동몽 17%’ ‘무작 53%’. 그 벽 한쪽 귀퉁이에 포스터가 두 장 붙어 있었다. 그 포스터를 보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억에 젖었고, 새로운 꿈을 꿨다.
중국에 5년을 살았다. 베이징에서 어학연수 1년, 상하이에서 주재원으로 4년. 그때 어학연수나 업무는 그대로 하되 개인적으로 무언가 중국에 살았던 자취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대상이 바로 ‘술’이었다. ‘마오타이’ ‘우랑예’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술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생소하나 중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백주를 소개하는 프로젝트. 중국에서 유명한 술의 생산 지역이나 도가를 직접 방문해 보고 그 백주의 역사와 특징을 소개하는 책자를 출간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하다가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춘천 술도가에서 본 포스터는 2022년에 붙여진 철 지난 행사 홍보물이었다. [가족·친구와 함께 떠나는 우리 술 낭만 여행 – 찾아가는 양조장]. 거기에는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50개의 새로운 명주 도가를 소개했다. 예전에 알고 있던 명문 술도가와는 대부분 달랐다.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흘렀기에 50개 도가 중 지금도 술을 빚는 양조장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에 있는 양조장이고, 개인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더 많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은 훨씬 높다. 결국 同期愛로 시작한 춘천 기차 여행을 통해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마오타이’나 ‘우량예’는 물 건너갔지만, 우리 술을 새롭게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띈다. 새 꿈에 다가가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떠날 기차 여행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