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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Jul 28. 2021

1화. 어떤 꿈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모래톱 마을에 사는 소년은 시냇가에서 물놀이를 한 후 원두막에서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깨고 싶지 않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아득한 옛날 깊은 산기슭에 설(雪)이라는 녀가 홀어머니와 함께 토막집에서 살았다. 어느 여름날 세찬 소나기가 내리다 갑자기 그치자 멀리 서쪽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다. 토막집 옆 계곡물은 금세 불어나 콸콸 쏟아져 나오며 좁은 도랑을 넘쳐흘렀다. 무지개는 유난히 선명했으며 한동안 사라지지 않고 산등성이 위에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나비들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너른 들판 위  하늘에서 하얀 비단옷을 입은 선인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왔다. 처음에는 소녀의 눈에 선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선인은 신기루에 감싸이듯이 점차 그 모습에서 은빛 머리카락을 드러내며 형체를 갖추어 갔다. 그는 소녀의 토막집 앞에 서서 목이 마르니 물 한 모금만 달라고 했다. 녀는 수줍어하며 얼굴을 돌려 선인을 외면한 버들잎 하나를 띄어 두 손으바가지에 물을 떠주었다. 그런데 물을 건네주던 바가지에 녀의 아리따운 자태가 살짝 비쳐 선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상의 선녀들도 범접할 수 없는 소녀의 자태가 바가지 속 물의 파문에 흐릿하게 일렁거렸다.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영롱한 눈망울과 가녀린 목선이 환영처럼 선인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선인은 물바가지에 비친 녀의 자태에 빠져 한동안 넋을 잃고 멍하니 바가지만 바라보았다. 


꿈이었다. 소년은 맑은 바가지 속에 비친 소녀의 얼굴이 궁금해 목을 빼고 보려다가 그만 잠에서 깨어났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선인이 본 아름다운 자태의 소녀도 꿈에서 본 환영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단()이라고 불리며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소꿉친구들은 단을 중심으로 모래톱 마을에서 뭉쳐 어울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단은 학교를 파하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함께 마을과 조금 떨어진 시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원두막에서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동무들과 틈만 나면 숲이나 강가를 쏘다니기도 하고 물놀이를 며칠째 하여 피로가 쌓였던 것 같았다. 한낮 땡볕에 거무튀튀하게 탄 얼굴로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뉘엿뉘엿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친구들과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전 잠결에서 보았던 꿈속 소녀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함께 모래톱 마을로 돌아가고 있던 석이라는 친구가 물었다.

"단, 너 무슨 고민 있어? 왜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해?"

옆에 있던 택이도 거들었다.

"좀 이상한 것 같아,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아이처럼···."

"······."

친구들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려다가도 꾹 참았다. 꿈 이야기를 하면 좋은 꿈도 헛꿈이 된다고 평소 어른들이 늘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은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보았던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무슨 생각에라도 잠긴 듯 황혼으로 물들고 있던 서쪽 하늘멍하니 쳐다보며 마을로 돌아왔다.


해가 서산에 걸려 있는 시간이었지만 근처 냇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며 물장구치는 소리가 장승이 서 있는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가까이서 들려왔다. 여름날의 하루 해는 참 길기도 다. 오전 학교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과 어울렸는데 실컷 놀고도 여전히 해가 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며칠만 지나면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모두 여름방학을 맞게 되었다. 아직 일주일도 더 남은 방학이었지만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들뜬 맘은 이미 방학이 온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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