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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1. 2021

6화. 기와집에 남은 소녀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마을에 통금이 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움막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손님들이 기와집으로 찾아왔다. 동네 아이들이 크게 관심을 보였던 소녀는 기와집에서 당분간 머물게 되었다.


어제 움막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기와집 댁의 가족들이었다. 기와집 할아버지는 군수를 하다가 퇴임하였는데 마을에서는 군수 어른댁이라고도 불렀다. 그 집에 딸이 둘이었는데 이번에 온 사람들은 큰딸 부부와 외손녀였다. 부부는 직장에서 해외 연수를 게 되어 혼자 남게 되는 손녀를 방학을 맞아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게 하려고 데리고 내려온 것 같았다. 서울은 역병이 크게 퍼져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시골로 내려온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모래톱 마을처럼 수려한 자연경관을 두루 갖춘 곳에서 자녀를 교육해 보고자 하는 부모의 오랜 바람도 조금은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도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모래톱 마을로 온 것은 무엇보다 소녀 자신의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이 크게 작용한 같았다. 전학이라기보다는 당분간 시골 분교에 적을 두고 위탁교육을 하는 조건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소녀의 부모들은 출국 준비도 해야 해서 이틀 뒤에 서울로 올라가고 소녀만 기와집에 머물게 되었다. 소녀는 서울에서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역병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아직 배울 공부를 다 끝내지 못하고 내려오게 되었다. 그래서 모래톱 마을 분교에서 방학 전에 당분간 위탁 교육을 받으며 못다 한 공부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이할 작정이었던 것 같았다. 소녀의 부모는 아이들이 하교한 후 소녀를 데리고 분교 교무실에 들러 정식 위탁 교육 절차를 밟은 후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부모님이 마을을 떠나고 혼자 남은 소녀는 오후에 외할아버지와 함께 마을 구경을 하였다. 외할아버지 댁에는 일을 도와주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강나루에 있는 논밭을 관리하기도 하고 바닷가 양식장 일도 하는데 많은 일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일과는 며칠 후 방학이라 여름방학 종업식을 할 때까지 오전 수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마을 안에서 어울려서 놀았다. 단이도  같이 어울려 다니던 몇몇 아이들과 함께 강나루에서 수영을 하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단은 다음 날 제출해야 할 과제를 마무리하고 해 질 녘쯤이 되어 저녁을 먹기 전에 강나루의 포구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다. 기와집에 남은 소녀는 부모님이 서울로 돌아가시고 낯선 곳에서 혼자 남게 되니 갑자기 허전함과 쓸쓸함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소녀는 아까 할아버지와 둘러봤던 강나루 쪽을 다 보지 못하고 기와집으로 돌아왔었다. 집에 혼자 있으니 심심하기도 하여 못다 본 강나루 쪽에 나가보려고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기와집 어른들이 일러준 당부의 말을 기억하며 소녀는 마을에서 첫날 생활을 시작하였다. 기와집에 사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마을의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마을 남서쪽 먼바다에 떠 있는 섬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늘 안갯속에 묻혀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전설의 섬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예전에 어머니로부터 잠깐 모래톱 마을 앞 섬의 전설을 들은 기억이 나서 섬과 관련된 궁금증을 물어보았으나 기와집 사람들은 섬 이야기만 나오면 모두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과제물 정리를 마무리하고 혼자서 강나루 포구 쪽으로 산책을 하던 단은 기와집 쪽에서 아까 그 소녀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단은 처음 보는 소녀를 만나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서 반대쪽 강나루로 돌아가려고 몸을 재빨리 휙 돌렸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손짓을 하였다. 소녀는 단이가 서 있는 강나루 쪽으로 걸어오더니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 이 마을에 사는 아이니?"하고 소녀는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고 단은 엉겁결에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였다.

"나, 서울에서 내려온 지은설이야. 설이라고 불러도 돼. 6학년인데 넌 누구니?"라고 하며 소녀는 외모와 달리 당차게 물었다. 단은 소녀와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나, 나는, 저···. 마을 분교에 다니는 목로단이야. 나도 6학년이야. 만나서 반가워."라고 조금 당황한 듯 급하게 짧은 자기소개를 하였다.

"나도 너희 학교에 당분간 다닐 거야."

"우리 학교에 다닌다고?"

"아마 6학년에 한 학급뿐이라고 했으니 같은 반에서 공부하게 될지도 몰라."

"응, 6학년이면 한 반뿐이니 우리 반에 등교하겠구나."


단은 언젠가 어디에서 본 듯한 낯이 익은 소녀가 오늘 처음 만난 아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좁은 시골에서만 살아온 단은 자신이 저렇게 쁜 소녀를 다른 곳에서 만났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낯이 익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였다. 소녀와 단은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답게 금방 낯을 터고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서로의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하며 강나루를 함께 산책하였다. 모래톱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소녀는 불현듯 기와집 사람들이 해주지 않은 신비스러운 섬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단도 서울의 역병에 대한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여 둘은 더 많은 대화를 이어가려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때 기와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강나루 쪽으로 걸어오며 소녀를 불렀다. 할아버지께서 찾아보라고 해서 나왔다면서 저녁을 먹으러 빨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소녀는 섬에 관한 의문점들을 묻고 싶었으나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단에게 그 질문은 하지 못했다. 단과 소녀는 내일 학교에서 만나기로 하고 인사를 간단히 나눈 후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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