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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1. 2021

7화. 소녀, 생각에 잠기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이른 아침 낯선 시골 마을의 강나루를 거닐고 있던 소녀는 모래톱 마을로 들어오면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단과 소녀가 강나루에서 헤어진 다음 날 소녀는 시골 분교로 등교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소녀는 집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였다. 강 하류의 아침은 도시의 딱딱하고 네모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마을 어귀에 도착해 움막에서 조마조마한 맘으로 불편하게 밤을 지새우고 기와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바쁜 하루의 일과를 보낸 과는 다른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도심의 시끄러운 굉음도 역병의 위험을 알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한 폭의 온전한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수화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숲과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잔물결을 그려내는 강물이 그랬다. 여기저기 듣기 좋은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며 시원하게 쭉쭉 뻗은 버드나무가 거리두기를 하듯 서 있는 모습도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런 아침을 매일 같이 바라보고 가까이서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빨리 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제 만난 듬직하고 순수하며 잘 생기기도 한 단이 생각도 갑자기 떠올랐다. 이런 촌에도 그렇게 멋진 아이가 있다니 미처 서울에서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어린아이 때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강나루의 좋은 기운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고 상상하니 그가 몹시 부러웠다.


갈매기 한 쌍이 바닷가 작은 모래톱에 앉았다가 나란히 보조를 맞추며 걸어갔다. 청둥오리들도 떼를 지어 강물헤엄쳐 다니고 긴 다리를 한 해오라기 같은 새들은 걸음을 내딛기도 하며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전국에 역병이 번져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것을 시골 마을에서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자신의 얼굴을 꼬집어보기도 하였다. 어찌 꿈엔들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며칠 전의 혼란스러운 도시의 풍경과 너무나 동떨어진 시골 마을이 연출하는 아침의 강나루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소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며칠 사이에 일어난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모든 현상은 같기도 하고 크게 다를 수도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꼭 같은 처지라도 서로 크게 다를 있다.'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글귀의미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소녀는 오늘 분교에 첫 등교를 하면 낯선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새 선생님과 새 교실 등 모든 게 새롭고 낯선 환경을 만나게 되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을 달리 하자 소녀 자신을 짓눌러왔던 낯선 곳대한 두려움이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히려 맘이 편해지고 시골에서의 학 생활에 대한 기대도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새 학교에 적응할 일에 대해 걱정만 했었는데 아침에 강나루에서 자연을 감상하며 생각에 잠기면서 이렇게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이 너무 신기한 것 같기도 했다.


사실은 움막에서 불편한 밤을 보낼 때 짜증도 내고 군수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빨리 마을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었다. 작은 촌구석에 무슨 통금이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작은 마을이라고 업수이 여기면 안 된단다. 마을 공동체에서 정한 원칙과 절차가 있는데···. " 라며 소녀의 맘을 달래주었다.

"군수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면 금방 해결될 거잖아요."라고 응석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설아, 네가 외할아버지께 엄마가 야단맞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러냐."라고 하시며 답답하다는 듯이 타이르고 또 타일렀다.


그런데 이른 아침 강나루를 거닐다가 생각에 잠기면서 지난날의 의문들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에 했던 말들이나 투정들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촌구석이란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할아버지의 권세에 의존하려 했던 자신의 비뚤어진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맘속에 통금으로 출입을 까다롭게 했던 마을 어귀 청년들과 노인들을 비웃거나 우습게 본 일도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래톱 마을 사람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았다. 사소한 원칙과 절차지만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지키고 안 지키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고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막연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늘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체험을 해보고 책을 해서도 간접적인 경험을 많이 하라고 하셨다. 모래톱 마을에 내려오게 되면서 며칠간의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또 시골에 혼자 남아 생각에 잠긴 시간이 소녀를 크게 성장시키는 것 같았다. 소녀는 친숙한 서울 생활에서 시골로 내려오면서 마음먹은 대로 안 되어 괴로울 때가 더 많았으나 그 괴로움조차도 기꺼웠다. 그전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어른 고리타분한 것 같았던 말씀들이 하나씩 떠오르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소에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며 강나루를 지나 버드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황톳길을 따라 기와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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