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꿈 Aug 16. 2021

27화. 실종자는 누구인가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아이들은 함께 어울리며 나날이 성장하고 성숙해갔다. 전설의 섬의 실체에 다가서는 자신들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달갑지 않은 눈초리와 그로 인한 두려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탐험대 아이들은 어떤 비난과 난관도 감수하며 그들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용기도 있었다.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마을의 관습이나 전통에 대항하는 일탈이며 어쩌면 도전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가오는 모든 생생한 위기를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하는 것을 선택할 용기도 가지고 있었다. 성숙이나 성장이 멈춘 사람들이나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에 익숙한 사람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일들을 탐험대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헤쳐나가고 있었다.


장기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심각한 혼란을 주었던 역병은 점차 물러나고 모든 것들이 정상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모래톱 아이들은 그들의 모험심을 더욱 확장하며 마을을 짓눌러왔던 의문점들을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하나씩 벗기며 전설의 섬의 신비스러운 정체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신비의 섬 탐사활동과 별장지기와 해녀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탐사자료를 만들어 방학과제로 제출할 작정이었다. 따라서 탐험대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이제껏 각자가 수집한 자료들을 가지고 강나루 쉼터에 모이기로 했다.


소녀와 단이는 사진관에 맡겨둔 카메라 필름에서 찍은 사진들을 인화하여 가져왔다. 리솔이는 자신이 본 것을 수시로 스케치하여 정리한 그림들을 준비해서 모임에 나왔다. 석이는 주로 망원경으로 관찰하기도 했던 것들을 정리했고, 윤택이와 창의는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 기억을 떠올려서 모임 장소에 나타났다. 탐험대 대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기록으로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전설의 섬의 실체를 확인하려고 맘먹었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잘 정리해두어 전설의 섬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서로 묻고 답하며 토의를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탐험대가 전설의 섬으로 탐사를 떠나기 전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의문점을 중심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탐험대가 떠날 때 전설의 섬에 대해 우리가 주로 의문을 가졌던 것은 도깨비불, 사람의 흔적, 동굴 속의 괴상한 울림을 비롯해, 소녀의 귀에 이상한 목소리가 자주 들렸었던 것과 망부석이 있는 언덕에서 촬영한 사진 속에 불가사의한 형체가 흐릿하게 찍혀 있었던 것 등이었어."라고 단이가 탐험대 아이들의 주요 관심사들을 정리해서 말했다.    

"도깨비불은 사람을 닮은 짐승이 해산물을 익혀서 먹을 때 새어 나온 불빛이라고 다들 생각하는 거니?"라고 소녀가 묻자 아이들은 모두 그렇다고 얘기했다.

"사람의 흔적이나 동굴 속의 괴상한 소리는 모두 탐사를 통해 확인했잖아. 아마도 사람을 닮은 짐승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해."라고 단이도 물었다.

"어쨌든 전설의 섬에 생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괴상한 소리도 그 생물체가 동굴 속에서 포효하듯이 괴성을 질러 울려서 나온 소리라고 봐도 될까?"라고 하며 소녀가 단이의 생각에 덧붙여 말하자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짐승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사진이나 스케치한 것을 바탕으로 추리하기로 했다. 리솔이가 주로 스케치를 했는데 사진을 참고하면서 설명을 했다.

"우선 우리가 본 짐승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이동했으며, 머리, 가슴, 팔다리 등이 사람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어. 그리고 얼굴 부분이 털로 덮여있었기 때문에 눈, 코, 귀, 입 등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각 기관의 기능은 사람과 비슷한 것 같았어. 우리가 도망칠 때 따라오는 동작이나 고함치고,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아."라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리솔이의 말을 듣고 있던 석이가 궁금한 것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그 짐승을 사람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오랑우탄 같은 짐승으로 봐야 할지 궁금해."

"짐승의 모습이 오랑우탄과 닮기는 했지만 오랑우탄이라는 동물의 분포지는 인도네시아에 국한되어 있으며 자연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전설의 섬에 오랑우탄이 사는 것은 아닐 것 같아."라고 소녀가 말했다.

"그럼 전설의 섬 앞바다에서 50년 전에 마을 사람들의 사고가 났을 때 모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데 한 명은 실종으로 처리되었다고 하니 그것과 연관이 있을까?"라고 하며 단이가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을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별장지기와 해녀들의 회상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마도 그때 실종자가 며칠 전에 우리가 봤던 생존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러면 왜 그가 그곳에 아직도 남아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라고 단이가 말했다. 그러자 소녀는

"만약 그 짐승이 실종자라면 그는 자기 고향인 모래톱 마을을 분명 알고 있었을 테니 어떻게든 찾아왔어야 했어. 그런데 전설의 섬에서 수십 년을 혼자서 지내고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야."라고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가정도 가능할 것 같아. 예를 들면 실종되었을 때 어떤 충격에 의해 기억 상실 상태로 되었거나 큰 부상으로 동굴 속으로 피신하면서 장기간 움직일 수 없어 말도 글도 모두 망각한 상태로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하며 짐승이 수십 년간 전설의 섬에 있게 된 것을 논리적으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나름대로 정리하며 추리하였다. 소녀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들은 섬에서 본 짐승이 실종자이고 그 실종자는 곧 섬 주변 사고 해역의 생존자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데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이들은 단 몇 퍼센트라도 실종자가 생존자일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아이들은 실종자가 생존자인지를 증명하는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뜬소문이나 막연한 상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록상의 증거 같은 것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소녀의 귀에 들린다는 "도와주세요."라는 말이나 망부석 부근에서 밤에 찍은 사진에서 어떤 형체가 보였던 것은 혼령과 관련되는 영적인 부분인 것 같아 확신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생존자가 있다면 어떤 루트를 통해서든 자신의 생존 사실을 알리려고 했을 것이며, 그런 것이 혼령이나 영적인 작용에 의해 전달될 수도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거나 명확히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었지만 공공연히 소문으로 떠돌기도 하는 얘기들이 아이들 사이에 오고 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두운 밤에 그런 영혼들이 돌아다니기도 하며, 사람들이 밤길을 걸을 때 가끔 등골이 오싹해지도 하고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도 흘리는 것은 그런 것들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하였다.   


탐험대 아이들은 우선 실종자가 누구였는지 밝혀내야만 했다. 그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마을 어른들은 대답을 해주지 않고 물어보는 것도 금하고 있으니 스스로 알아내어야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섬 주변 해역에서 실종되었다면 생존할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그러한 자료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른들은 전해 내려오는 미신을 신봉했으나 아이들은 눈으로 확인하고 입증할 수 있는 과학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서로의 생각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탐험대는 그 차이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증명으로 극복하고 싶어 했다.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고 투정을 부리거나 우길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아이들은 그 일을 조용히 진행해야 했으므로 소녀와 단이에게 맡기기로 무인도에서 약속했었다. 소녀와 단은 역병도 사라졌으니 읍내에 있는 도서관을 방문하여 그 당시의 신문을 열람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모두 헤어지고 소녀와 단은 같이 강나루 쪽으로 걸어오다가 갈래 길에서 다음날 읍내 도서관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탐험대 아이들은 반세기 전 전설의 섬 해역에서 있었던 사고의 진실은 무엇이며 실종자는 과연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했고, 또 알고 싶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눈이 내리는 날 결코 눈덩이를 던져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으면 당신은 노화의 손아귀에 꽉 붙잡힌 것이다.'라고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른들이었으면 실행하기 어렵고 할 마음도 생기지도 않았을 일인데 자라나는 아이들이니까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한 것일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소녀와 단은 아이들을 대신하여 다음 날 바로 도서관을 방문하여 그 당시 실종자 수색에 대한 신문기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13살짜리 아이들이었지만 매사에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그 영특함은 중고생들을 뺨칠 정도였다. 같은 또래들이라도 아이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서로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소녀와 단이는 수시로 증명해 주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만큼, 또 알고 싶은 것만큼만 보고 믿으며 자신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기도 하고 가두려고도 하지만 아이들의 본성과 타고난 재능은 천차만별이었다. 도서관에 도착한 소녀와 단은 지난 신문들을 연대별로 열람하기 시작했다. 누렇게 변색되고 먼지가 쌓인 오래된 신문지 철을 몇 개씩 꺼내와서 조심스럽게 넘겨보았다. 전설의 섬 주변 해역에서 사고가 일어난 때가 여름철이라고 했으니 날짜별로 한 장씩 넘겨가며 사고 기사를 찾아내어야만 했다.


마침내 도서관 간행물실에서 사고와 관련된 기사가 있는 신문을 찾았다. 그 당시 신문에는 물살이 센 섬 주변 사고 해역에서 조업하던 멸치잡이 어선에서 7명이 사고를 당하였고, 그중에 2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5명은 실종되었다고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한 주 뒤의 기사를 또 찾아보니 사고 해역에서 5명의 실종자 중 4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도 보였다. 소녀는 주요 기사를 카메라로 찍기도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생사가 불투명하며 실종 상태라고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고 해역의 물살의 세기 등을 비춰 볼 떼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사고의 진실을 소녀와 단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은 일은 실종자의 신상을 파악해야만 했다. 신문기사에는 실종자는 '남성, 28세, 목 모씨'라고만 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55년이 지났으니 만약 실종자가 생존하고 있다면 나이를 계산해보니 약 83세쯤 될 것 같았다. 소녀는 실종자의 나이를 확인하더니 자기 외할아버지와 비슷한 연세라고 하며 과연 목 모씨라는 분이 누굴까 궁금해했다. 소녀의 말을 듣고 있던 단은 옛날에 자기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할머니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시니 기억에 희미하긴 하지만 아마도 전사했다고 들은 것 같다고 했다.  


소녀와 단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다고 시간을 많이 보내어 도서관 간행물실 폐관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둘은 급히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신문을 통해 확인한 것은 사고는 55년 전에 발생했고, 7명이 사고를 당하여 2명이 구조되고, 5명이 실종 상태였는데 사고로부터 8일째 되는 날 4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실종자 1명의 생사는 불투명하였으며 신원파악을 해보니 그 당시 28세 남성이었는데 성이 목 씨로 판명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조사 자료를 챙겨서 읍내 재래시장으로 나왔다. 점심도 굶어 배가 출출하여 둘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룻배 선착장으로 갈 작정이었다.


소녀와 단은 도서관 앞 읍내 시장에서 떡볶이와 라면을 시켜서 먹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난 뒤에 선착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소녀가 옆집 가게에서 달고나 뽑기를 하자고 해 각자 하나씩 뽑기를 하며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달고나 뽑기에 빠져 있던 사이에 마을로 들어가는 마지막 나룻배는 선착장을 출발하여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늦게 까지 자료를 찾고 잠깐 요기도 하며 달고나 뽑기도 하다가 아이들은 그만 마을로 돌아가는 마지막 배를 놓치고 말았다. 둘은 마을의 맞은편 강나루에서 나룻배를 향해 고함을 치며 뱃사공을 불렀지만 배는 가던 방향 그대로 유유히 떠나갔다. 한여름이라 해가 질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산길을 가다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소녀와 단은 정리한 자료들을 책보에 싸서 어깨에 단단히 둘러매고 강 상류 쪽을 거슬러 올라가 모래톱을 돌아서 마을로 들어가야 했다. 아마도 지금 출발하면 초저녁쯤이나 되어서야 마을에 도착할지도 몰랐다. 가는 길에 산 짐승이라도 만나거나 하면 피해가야 하니 더 늦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단은 가는 길을 몇 번 다녀봐길을 잘 알고 있었지만 소녀는 초행길이라 걱정이 태산 같았다.  



글 속으로 들어가기》

탐구활동 경험을 살려 글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주장과 근거가 타당한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26화. 무서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