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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16. 2021

28화. Over the Rainbow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소녀와 단은 읍내 도서관을 찾았다가 모래톱 마을로 떠나는 마지막 나룻배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아까 시장에서 달고나 뽑기만 하지 않았더라도 나룻배를 탈 수 있었을 텐데 먼길을 돌아서 마을로 갈 일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나룻배나 연안 낙도를 오가는 도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배를 놓치기도 하는데 간발의 차로 가끔 겪는 일이기도 했다. 둘은 하는 수 없이 강나루 상류 쪽을 거쳐 산길로 걸어서 마을로 돌아가야 했다. 아직 해가 기울지는 않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깊은 밤길을 걸어서 마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둘은 읍내 쪽 강상류로 빠르게 걸었다. 단은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 늦어져 밤길을 걷더라도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 다행이라고 겁먹은 표정을 짓는 소녀에게 살짝 귀띔해줬다. 그러자 소녀는 오늘 저녁은 다른 날과 달리 개기월식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름달이 뜨더라도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밤길을 걷는데 곤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서 달이 가려지는 것을 의미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생기면 세상에 재앙이 온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었다. 어쩌면 월식은 마을 어른들의 오랜 관습이나 미신에 대응하는 과학의 존재를 인식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기도 했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보름달이 뜨는 음력 15일경에 일어났다. 그러나 매달 보름달이 뜬다고 월식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면인 황도와 달의 공전 궤도면인 백도가 약 5도 기울어져 있어서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녀의 말로는 오늘 저녁에 보름달이 뜨고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에 놓인다는 예보를 라디오에서 들었다고 했다. 라디오 개기월식 예보는 밤중에 보름달이 떴다가 사라지는 시간이 발생하니 보름달만 믿고 밤길을 함부로 걸으면 위험하다는 안내였다. 그 당시 시골 사람들은 보름달이 뜬 날 강물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산길을 이용해 마을과 마을을 자주 넘나들기도 했었다.

개기월식 (태양-자구-달)의 위치 B지점


소녀와 단은 저녁에 개기월식이 시작되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걷기로 했다. 강가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걷고 있는데 장마철이라 그런지 어제도 비가 많이 내렸고 오늘도 날씨가 개였다 맑았다를 반복하며 오락가락하는 하루였다. 둘은 도서관에서 자료를 열람하여 찾고자 하는 자료를 찾았기 때문에 나룻배는 놓쳤지만 기분은 좋았다. 친구들에게 도서관에 간다고 자랑했었는데 실종자를 확인할 수 있어서 자신들의 면이 설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였다. 드넓은 강물을 응시하며 둘이서 걷는 길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소녀와 단은 나룻배를 타고 처음 바다로 나갔을 때 갈대숲과 새들이 평화롭게 노닐던 그 해 질 녘이 떠올랐다. 강물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양은 금빛 꽃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다웠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은 황금빛 저녁노을과  잘 어울려 내일의 찬란한 꿈을 약속이라도 하는 듯했다. 소녀는 몇 걸음 앞서 걷고 있는 단을 바라보며 행복에 겨워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가 번쩍하더니 천둥소리가 뒤따라 들려오고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앞이 캄캄해졌다. 어제 원두막에서 본 것처럼 큰 빗방울과 함께 소나기가 세차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놀란 아이들의 눈에 저만치 과수원 모퉁이에 움막인지 원두막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비를 피할 곳이 장대비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둘은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잡고 그쪽으로 힘껏 달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아이들은 급한 김에 구석진 빈자리를 찾아 우선 비를 피했다. 그곳은 과수원 일에 필요한 농기구를 보관하는 원두막 같은 곳이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내린 비로 원두막 밑에 쪼그리고 앉아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단은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도 모른다.'며 마을 어른들이 애꿎은 비를 원망할 때 늘 하던 말을 작은 소리로 들릴락 말락 내뱉었다.


소녀와 단은 소낙비에 머리가 젖어 물방울이 을 타고 흘러내렸다. 급히 달려오느라 콧잔등에는 이슬처럼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소녀는 예쁘게 접은 손수건을 가방에서 꺼내어 단에게 보이며 땀을 닦으라고 내밀었다. 손수건을 받아 쥔 단은 소녀의 얼굴에 흐르는 빗방울을 닦아주며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가지런히 올려주었다. 소녀는 단의 눈빛을 마주하기 부끄러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단은 예쁜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소녀의 하얗고 가는 목선을 바라보며 불현듯 언젠가 본듯한 꿈속의 소녀 설이를 떠올렸다. 깨고 싶지 않았던 지난날의 어떤 꿈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에 빠져 있는 사이 소녀는 단이 쥐고 있던 손수건을 빼앗았다.  

"야, 너 얼굴 닦으라고 준 건데."라고 하면서 빼앗은 손수건을 펼치더니 단의 얼굴에 묻은 빗방을 닦아 주었다. 단은 소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황홀한 꿈을 꾸는 듯하였다. 마치 지난 어느 날 꿈속에서 무지개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이 소녀에게 물을 얻어먹는 장면이 떠오르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 상상 속에 빠져 있는 사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억수로 퍼붓던 소나기는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잦아들었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한여름철의 장마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기도 했다. 소나기가 그치자마자 구름 사이로 태양이 선명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다시 햇빛은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내리쬐기 시작하고 뿌연 물안개가 연기처럼 지배하고 있던 강물은 물안개를 헤집고 나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구름 저편에 일곱 색깔 무지개가 하늘에 걸리는 게 아닌가. 소녀와 단은 원두막을 뛰쳐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두 팔을 뻗어 무지개를 맘껏 반겼다. 마치 무지개를 타고 겹겹이 싸인 구름을 지나 저 먼 곳으로 넘나들며 파란 하늘을 나는 종달새를 닮은 아이들처럼 마음은 벌써 무지개 저편을 날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녀는 서울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우쿨렐레도 짬짬이 익힌 적이 있었다. 그때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에 나오는 노래 중에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익힌 기억이 떠올랐다. 가사가 맘에 들어 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했었는데 소녀는 무지개를 바라보더니 자신도 모르게 '오버 더 레인보우'를 흥얼거리며 그 가사의 의미도 생각해보았다.


' 우 우~~ 우~우~우우 오 우우~~  썸웨얼 오벌더뤠인보우 웨이업하이 델져 랜대라헐돕 원씬어럴라바이~~"


무지개 너머 저 하늘 높이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언젠가 들어본 곳이 있어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란 하늘이 펼쳐진

감히 꿈꾸던 그런 꿈들이 정말로 이루어지는 곳이죠

언젠가 난 별에게 소원을 빌어

저 하늘의 겹겹이 쌓인 구름 위에서 잠을 깰 거예요

걱정거리가 마치 레몬즙처럼 녹아내리는 곳

굴뚝 꼭대기 보다도 높은 그곳에서 저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들이 날아다니는 곳

새들이 무지개 너머를 자유롭게 날아다녀요

그러니 왜, 왜 나라고 날 수 없겠어요?

무지개 너머 귀여운 파랑새들이 행복에 겨워 날아다니는데

왜, 왜 나라고 날 수 없겠어요?



소녀는

"Why, oh, why can't I?"를 예쁜 목소리로 목청이 가늘게 떨리며 꼭 자신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흥얼거렸다. 소녀는 정말 무지개 너머 먼 곳에 자장가에서 들었던 그런 나라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구름 너머 달 뒤편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파랑새처럼 마음속에 간직한 예쁜 꿈들싶었던 것일.


소녀의 노래를 들으며 단이도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따라 부르기도 하고 모르는 가사는 흥얼거리기도 했다. 둘은 아무런 갈등도 무서운 병도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녀와 단은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곳이 'Somewhere, over the rainbow'에 나오는 것처럼 아주 멀리 먼 곳에 있다 할지라도, 설령 구름 저 멀리 달 뒤편에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가보고 싶은 눈빛을 서로 마주 보며 주고받기도 했다. 아이들이 꾸는 꿈은 순수했고 예뻤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글 속으로 들어가기》

글 속의 그림을 참고하여 개기월식은 언제 일어나게 되며, 개기월식 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을 설명해 봅시다.

글 속에 나오는 노래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익히고 , 가사를 음미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에 대해 상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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