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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15. 2021

26화. 무서운 이야기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역병이 물러가고 있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었다. 하늘도 역병에 짓눌렸던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던 것일까. 장대비는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었다. 온 동네에 하루 종일 장맛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석이네 원두막에 모인 아이들은 장대 같은 비를 맞으며 바로 집으로 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수수께끼 놀이를 마치고 비가 언제 그치느냐며 손으로 처마에 떨어지는 물을 받기도 하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보였다. 웅덩이들에 물이 고이기 시작해서 그런지 맹꽁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맹꽁이 울음소리에 짙은 먹구름까지 몰려오니 아이들이 모여있던 원두막은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가 되었다. 사소한 일들에 관심이 많았던 창의는 맹꽁이는 왜 장마철만 되면 우는지 궁금해했다.

"맹꽁이는 장마철에 웅덩이에서 산란을 하는데 그때 주로 '맹꽁맹꽁'하고 운단다."라고 소녀가 설명을 해주었다.

"맹꽁이들이 울면 '맹꽁맹꽁' 하고 들리는데 그 울음소리가 특이해."라고 하며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소녀는

"맹꽁이라는 이름은 특유한 울음소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래. 체험을 갔을 때 들은 얘긴데 수컷들이 우는 소리라고 했어."

"어떻게 우는 거야?"

"응, 어떤 수컷이 '무엥 무엥'하고 울면 다른 수컷이 옆에서 '꾸엥 꾸엥'하고 운대. 그러니까 한 마리가 우는 소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서로 주고받으며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합쳐져서 '맹꽁맹꽁'으로 들린다는 거야."

"우아~ 너무 신기해. 근데 왜 비가 내릴 때 주로 우는 거야?"

"맹꽁이는 흙을 파고 오랜 시간 동안 땅속에서 살아서 눈에 잘 띄지 않지. 그런데 장마철이 되면 비가 많이 내려 생기게 된 물웅덩이에서 산란을 하게 되는데 그 시기에 주로 맹꽁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아이들은 모두 소녀의 얘기를 들으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오늘 우연히 맹꽁이 공부도 했네. 우리는 시골에서 매년 맹꽁이 울음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어찌 우는지는 잘 모르고 그냥 지냈구나."라며 아이들은 모두 쑥스러운 듯이 소녀를 쳐다보았다.


맹꽁이

사실 맹꽁이는 연중 땅 속에 서식하며, 야간에 땅 위로 나와 포식 활동을 하고, 6월 경의 우기에 물가에 모여 산란한다. 산란은 보통 밤에 하지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에는 낮에도 수컷이 울음소리로 암컷을 유인한다. 이러한 습성으로 인해 산란시기 외에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주로 서울, 경기, 경남 지역을 비롯해 중국 북동부 지방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이 맹꽁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 때 개구쟁이 석이가 맹꽁이 울음소리도 들리고 하니 으스스한 분위기가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리솔이가 무슨 이야깃거리가 떠올랐는지 지난 휴가 때 있었던 일이라며 먼저 얘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리솔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기대를 잔뜩 갖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지난 휴가는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해변에서 야영을 했었는데 텐트에서 사촌 동생과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단다. 텐트의 자크를 잠그고 자서 동생과 나는 더위 때문에 몸을 뒤척이며 잠을 자고 있었어. 그런데 자다가 갈증이 느껴져서 컴컴한 텐트 안에서 물병을 눈을 감고 찾았어.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머리맡에 둔 물병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 그래서 물병을 찾으려고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눈꺼풀을 살짝 떴어. 자다가 깨어 부스스한 눈으로 텐트 안을 누운 채로 두리번거리는데 옆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촌 동생이 내 얼굴 위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잠결에 '너 뭘 보고 있니?' 하고 물었어. 그런데 사촌동생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 짜증이 나서 다시 '너 뭘 보고 있는 거야?'라고 물었는데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어둠 속이라 동생 얼굴이 흐릿하게 보여 자세히 보려고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앉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동생 눈을 보려고 어. 동생은 아무 말도 없이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말도 없이 싱긋이 웃고만 있는 거야. 나는 그 아이 얼굴이 너무 무서워 덮고 있던 모포를 급히 뒤집어쓰고 텐트 구석에서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어.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새벽이 되어 어슴푸레하게 해가 떠오르는 것 같았어. 나는 모포 밖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사촌 동생 쪽을 다시 쳐다봤어. 그런데 그 아이는 꼼짝도 않고 내 얼굴을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또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싱긋이 웃는 거야. 나는 무섭고 소름이 돋아 기절할 뻔했지. 나는 벌떡 일어나 모포를 뒤집어쓴 채 텐트 밖으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쳐나와 부근에 다른 텐트에서 자고 있던 친척들을 황급히 깨웠어. 그리고 친척들에게 아까 나랑 텐트에서 같이 자고 있던 사촌 동생이 이상하다고 얘기를 했어. 친척들이 급히 그 텐트 쪽으로 달려가 텐트 안을 들여다보더니 아무 일도 없다고 돌아 나오며 오히려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노려보는 거야. '너 뭘 헛본 것 아니냐?'라고 한 마디 쏘아붙이며 텐트 안에는 무도 없다는 거야. 그럴 리가 없다면서 내가 다시 가서 자던 텐트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아무도 없는 거야. 그런데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사촌 동생 엄마가 다가오더니 하는 말이 사촌 동생은 어젯밤에 자다가 무섭다며 내가 자는 텐트에서 나와 숙모 같이 잤다는 거 아니겠니.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아이가 숙모 텐트에서 아직도 자고  있다는 거야. 너무 이상하지 않아? 도대체 나는 밤중에 텐트 속에서 누구를 본 걸까. 그때 휴가지에서 너무 무서워서 다음 날은 나도 우리 엄마랑 같이 자고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지금도 그날 밤의 무서운 기억이 여전히 풀지 못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라고 하며 아이들에게 이상야릇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무서운 얘기를 마쳤다. 아이들은 리솔이의 경험담을 듣더니 소름이 돋고 무섭다며 머리를 윗옷 속으로 집어넣기도 하고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다.


리솔이의 무섭고 미스터리한 경험담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석이가 무서운 실화라며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아이들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석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하늘에서 좁쌀이 연달아 떨어지는 것처럼 원두막 천장을 때리며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간간히 오싹한 느낌을 들게 하는 맹꽁이 울음소리와 천둥 번개 치는 소리만 번갈아 들려왔다. 석이는 뜸을 들이다가 분위기를 잡더니 무서운 이야기들려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리를 숙인 채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자세로 석이 쪽으로 모여들었다.


"옛날에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해가 지면 마을에는 불빛이 사라졌대. 특히 그믐날 밤에는 온 천지가 칠흑 같은 밤이 되었는데 그때 어떤 아이가 해 질 녘에 부모님 심부름을 했어. 엄마는 아이에게 학교 뒷산에 있는 옥수수밭에 가서 삶아 먹을 옥수수를 몇 개 따서 자루에 넣어오라고 했대."

"혼자서. 그 무서운 곳으로."라고 하며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여 듣고 있었다.

"응, 혼자서. 그날이 그믐날 해 질 녘이었는데 아직 한여름이고 서산에 해가 걸려 있길래 빨리 다녀오면 될 것 같아서 아이는 뛰어서 옥수수밭으로 갔어. 그런데 학교를 지나 대나무 숲이 있는 뒷산으로 막 올라가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비가 한 두 방울 머리에 떨어지는 거야. 아이는 조금만 더 가면 옥수수밭이고 옥수수 몇 개를 따는데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뛰어서 옥수수밭으로 올라갔어."

이야기를 맛깔나게 하던 석이는 아이들의 반응을 슬쩍 살피며 스릴이 넘치는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갔다.

"그런데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고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더니 밭에 거의 다다랐을 때는 밭의 언덕과 언덕 사이 또랑에서 물이 넘쳐 콸콸콸 흐를 정도였어. 아이는 옥수수를 따다가 이제 몇 개만 더 따서 자루에 넣으면 될 것 같아 한 두 개를 더 따러 옆에 있는 밭으로 갔어. 그때 다시 천둥 번개가 우르르 쾅쾅 치며 불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번쩍번쩍하는 거야.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꼭 밤처럼 캄캄했어.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어찌하다 보니 진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버린 거야."


"온 사방이 컴컴하고 장대비는 쏟아지고 어쩌지. 그 아이 큰일 났네."라고 하며 아이들은 이야기에 푹 빠져 흥미가 있었던지 맞장구를 치며 석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지금과 같은 장대비가 캄캄한 밤에 내렸으니 얼마나 아이가 무서웠겠어. 그리고 학교 뒷산을 쭉 따라 올라가면 망부석이 있는 무서운 산 중턱이잖아. 그런데 아이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여서 옥수수를 몇 개만 더 따면 될 것 같아서 욕심이 생기기도 해 한 두 개를 더 따려고 언덕 옆 또랑 쪽으로 다시 이동했어. 그리고 옥수숫대를 잡고 큰 옥수수 하나를 따려는 순간 그 옥수수를 아이 뒤에서 검은 망토를 걸친 시커먼 손이 덥석 잡는 거야. 아이는 놀라서 시커먼 손을 뿌리치고 옥수수자루를 매고 달리기 시작했어. 밭 근처는 우뢰 소리와 장대비 소리로 눈앞이 잘 보이지도 않고, 근처에서 어떤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 않았어. 컴컴한 그믐날 밤에 장대비 사이로 아이가 언덕 밑으로 달리는데 안개인지 구름인지 운무가 흘러가기도 하니 앞이 보일 리가 없잖아. 달리는 사이 '우르르 쾅쾅쾅' 벼락 치는 소리에 놀란 아이는 바지에 오줌까지 싸버린 거야. 그런데 온몸이 비를 맞았으니 오줌을 싼 표시도 나지 않았어."


"우와, 그 아이 진짜 무서웠겠다. 아이고 추워. 애들아. 내 팔 좀 봐. 소름이 돋았어."라고 하며 아이들은 이야기에 푹 빠져 얼굴을 찡그리며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고소하고 통쾌하다는 듯이 석이는 무서운 이야기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능청스럽게 이어갔다.

"그때, 아이가 빗속으로 달려 내려가는데 자꾸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아이가 고개를 갑자기 돌려 뒤돌아보니 시커먼 갑빠(천막) 같은 것을 입은 검은 망토를 걸친 괴물이 뒤쫓아오는 거야. 아이를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거기 서라는 말인 것 같기도 했어. 아이는 놀라서 더 세게 달리다가 미끄러져 그만 또랑에 빠져버린 거야. 그리고는 급히 일어나 학교 대나무 숲을 지나쳐 내려오는데 그 언덕길이 한강수가 된 것처럼 길바닥에도 흙탕물이 쏟아져내려오고 있었어."라고 하며 석이는 이야기를 잠깐 멈췄다.



그때 원두막 옆을 바라보니 한여름 장대비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하천물도 흙탕물로 변하고 과수원의 수박이나 참외는 물속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과수원과 원두막 주변은 거의 깊은 밤이 된 것처럼 어둠이 깔리는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아우성이었다. 석이에게 빨리 이야기를 해달고 조르기도 하고 난리가 났다. 석이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시 무서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가 새까맣게 보이는 학교 교문을 돌아 내달려 뒤쫓아오는 물체와 거리를 상당히 벌렸는데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고무신이 벗겨져버린 거야. 그런데 그 고무신이 또랑에 빠져 떠내려 가버렸으니 큰일이 난거지. 겁에 질린 아이는 고무신 한 짝을 줍으려고 했지만 뒤쫓아오는 갑빠 입은 검은 망토 때문에 못 줍고 다시 뛰기 시작했어. 그런데 잠깐 고무신을 줍으려고 했던 사이에 검은 망토를 걸친 괴물은 장대비 속으로 아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깝게 쫓아왔어.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검은 망토를 걸친 유령 같았어. 겁에 질린 아이가 뒤돌아보는 순간 검은 망토를 입은 유령이 손을 쭉 뻗어 아이를 낚아채려고 했어."

"우와 너무 무섭다. 그 아이 또 오줌 싼 건 아니지? 그 아이 기절한 거 아냐. 빨리 얘기해 줘."라고 하며 석이의 얘기를 빨리 듣고 싶다며 아이들은 너도나도 아우성이었다. 원두막과 연못가에 내리고 있는 장대비와 컴컴한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욱 무서운 이야기에 스릴과 공포감을 느끼며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소녀와 리솔이는 서로 두 손을 꼭 붙잡고 부둥켜안고 벌벌 떨며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석이는 아이들에게 지금 들려줄 부분이 중요한 이야기니 잘 들어보라고 하며 무서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아이가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것도 깜박 잊고 달리고 달려 조금만 더 가면 자기 집이 나오는 데를 내달리고 있었어. 장대비도 내리고 컴컴한 밤이어서 이제는 누가 누군지 옆에 있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어. 가로등도 없고 칠흑 같은 밤이었으니까. 아이가 담쟁이넝쿨이 무성한 담벼락을 돌아 조금만 더 가면 자기 집 대문이 나오는 곳까지 다다랐어. 아이는 있는 힘, 없는 힘 다 내어 달리고 달려 이제 집에 다 왔구나 하고 '엄마'라고 부르며 자기 집 대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았어. 그때 아까 옥수숫대에서 옥수수를 따려고 잡았을 때 봤던 그 시커먼 손이 아이 손을 떡 잡아 낚아채는 거야. 아이가 얼마나 놀랐겠어? 아이는 다시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싸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라고 얘기하며 또 뜸을 들였다. 아이들은 깔깔깔 웃기도 하고 겁에 질린 아이가 불쌍하다는 시늉을 하며

"그 아이 어쩌나 잡혀가는 거 아냐."라고 하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궁금한 듯이 석이를 빤히 쳐다봤다. 소녀와 리솔이는 아직도 부둥켜안고 귀만 쫑긋하게 해서 얘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석이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해달라는 눈빛을 즐기기라도 하듯

"이제 이야기 그만할래."라고 하며 하던 이야기를 갑자기 멈춰버렸다. 그리고 주섬주섬 자기 물건을 챙기더니

"비를 맞고라도 집에 갈래."라고 농담으로 말하며 짓궂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던 얘기가 갑자기 중단되어 김이 식은 표정으로 석이를 쳐다봤다. 그때 귀가 얇은 윤택이가 가면 안 된다고 하며 석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석이는 바지가 벗겨져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되니 그제야 알았다며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너희들도 무서운 이야기 해줘야 해."라고 하며 약속을 받아내고는 한 숨 돌리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참, 문고리를 잡는 순간까지 얘기했지?"

"응, 맞아. 아이가 문고리를 잡는 순간 옥수숫대를 잡았던 그 시커먼 손이 아이 손을 덥석 잡았다고 했어."라고 하며 아이들이 이야기 줄거리를 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석이는 다시 무서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급하게 달려서 내려오다가 고무신 한 짝도 잃어버리고 자기 집 대문에서 문고리를 잡고 '엄마'하고 부르는데 시커먼 물체가 달려와 문고리 잡은 아이 손을 덥석 잡았어. 아이는 반사적으로 뒤돌아봤어. 시커먼 망토를 걸친 유령이 자기 손을 잡고 서 있는 거야.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어. 아이는 대문 안에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고함을 치며 '엄마' 하고 외쳤어. 그랬더니 아이 손을 잡은 이상한 검은 망토가 말했어."

"뭐라고 했는데?"라고 하며 귀를 쫑긋 세워 아이들은 다들 석이의 입만 쳐다봤다. 애들을 보더니 석이는 시커먼 손이 했던 말을 했다.

"검은 망토는 '왜? 엄마 여기 있다!' 하며 아이 귀에 대고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쳤어. 아이는 그 소리에 놀라 이제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싼 것도 모자라 그만 기절을 해버린 거야. 그러자 시커먼 손을 가진 검은 망토는 아이를 둘러업고 집안으로 들어갔어. 그리고는 아이를 마루에 눕히고 기절한 아이를 흔들어 깨우는 거야. 그러자 잠시 뒤에 아이가 눈을 떴어. 아이가 눈을 떠보니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기절했다가 눈을 떴는데 그 순간 검은 망토를 본 아이는 다시 기절을 해버린 거야."라고 하며 이야기를 끝맺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어찌 됐어? 어찌 됐냐고?"라고 하며 계속 이야기를 해달라고 아이들은 졸랐다.


그러자 석이는

"그 시커먼 검은 망토를 걸친 유령은 누구였겠어?"라고 하며 아이들에게 답을 맞혀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놀란 토끼눈을 하여 어리둥절해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장대비는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다시 쏟아져 내렸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대답을 했다. 망부석의 혼령이라거나 그믐날 밤에 나오는 도깨비라는 대답도 나왔다. 석이는 그게 누구냐면 이라고 하더니 힌트를 주었다.

"아이를 쫓아온 그 시커먼 망토를 걸친 유령의 손에는 아이의 고무신 한 짝이 들려 있었어. 아이가 신고 있었던 고무신을 벗겨 자신이 들고 있던 고무신과 나란히 하여 마루 밑 주춧돌에 세워놓았어."

그리고는 답변을 해보라고 했다.

"······."

아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으며 침묵만 흐르고 말이 없었다. 그러자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석이가 답을 알려줬다.

"그 시커먼 망토를 걸친 사람은 바로 아이의 엄마였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에이 뭐야. 아이 엄마가 옥수수밭에까지 따라갔던 거야?"라고 하며

"꽐꽐꽐 호호호"하며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다. 소녀와 리솔이도 부둥켜안고 있던 팔을 풀고 재미있기도 하고 무서웠다며 이야기의 갑작스러운 반전에 배꼽이 빠지게 한참을 웃었다. 무더운  한여름날에 이보다 더 좋은 피서가 또 있을까. 평소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에 열광하며 매달리는 까닭은 많았다. 태양이 작렬하는 한낮을 눈 깜짝할 사이에 건너뛰 피서도 즐기고, 긴 장마로 지루해진 일상을 무서움과 공포에 몰입하여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재미가 솔솔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 시간 이상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더니 주변의 논이나 과수원이 모두 물에 잠길 것처럼 보였다. 또, 갑자기 내린 강물이 불어나면서 원두막으로 건너오는 다리도 강물에 잠겨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무서운 얘기를 하다 말고 짐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장마가 지면 하루아침에 강물이 불어나서 들녘에 곡식이 흙탕물에 다 잠기고 아침에 눈을 떠보면 그 강물이 어느새 마을 입구까지 불어나 있었던 적도 있었다. 아이들은 원두막에서 내려와 마을로 내달렸다. 이 사실을 마을 어른들께 알려야 했다. 부모님들이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피땀 흘려 다 지어놓은 농사가 물에 잠겨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래톱 마을이 다시 큰 시름에 빠지지 않도록 강물이 불어나 다 지어놓은 농사일을 덮친다고 급히 알려야 했다. 아이들은 모두 서둘러 굵은 장대비를 맞으며 마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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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모여 앉아 자신이 알고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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