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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14. 2021

25화. 역병, 물러나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아이들은 대청마루에서 어른들의 엄한 훈계를 듣고 강나루를 지나 석이네 원두막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조금 전에 있었던 훈육과 훈계의 시작과 끝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생각하기도 하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도 가졌다.


석이네 원두막 으로 가는 길에는 넓은 연못이 있었는데 수국이 피어 한창이었다. 보라색, 하얀색, 붉은색 가지각색의 수국들이 무리 지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연못 안에는 물속 식물들도 자라고 있었고 특히 연꽃이 꽂대를 수면 위로 올려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개구리밥과 물속에 잠겨 있는 검정말이며 나사말도 보였다. 그 위로 잠자리와 배추흰나비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연못의 수면 위에 앉으려다 날아가기도 하고 개구리밥이나 꽃잎에 살짝 앉기도 하였다. 연못에서 언덕 쪽으로는 석이네 원두막이 있었는데 넝쿨 속의 초록 줄무늬가 선명한 수박과 병아리처럼 연노랑색의 참외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연못 주변의 동식물들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제 위치에서 제각각 평화롭게 자라고 있었다. 언제나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며 존재하는 자연의 모습이 부러웠다. 밭머리에 우뚝 선 원두막은 과수원을 지키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곳이기도 했다. 기다란 널빤지와 갈대로 엮은 지붕을 씌어 만들어 바람이 불면 시원하였고 잠깐 비바람도 피할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널빤지 마루 아래쪽은 헛간처럼 농기구를 쌓아두거나 물조리나 비료나 퇴비 같은 것을 두기도 했다. 아이들은 일꾼들이 오르내리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층층대를 따라 원두막 웟층으로 올라가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어린 시절의 원두막을 떠올리거나 그런 말만 들어도 정겨운 추억들이 새록새록 묻어 나왔다. 떼를 지어 남의 과일이나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인 서리를 했었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원두막에 둘러앉아 아까 대청마루에서 있었던 얘기를 누가 꺼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며 둘러앉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큰 짐 하나를 들어낸 것처럼 날듯이 가볍고 개운하였다. 단이가 자신들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줬다며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까 많이 무서웠는데 단이는 무섭지 않았어?"하고 석이랑 친구들이 아침나절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사실은 많이 무서웠어. 하지만 탐험대 대장으로 뽑아줬는데···."라고 하며 말끝을 얼버무리며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단은 자신이 한 일을 떠벌리지 않고 겸손했다.

"그럼 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모두 종아리를 맞는다는 게 많이 걱정됐어."

"그렇다고 모두 다 그런 용기를 낼 수는 없잖아?"

"섬에서 사나운 짐승과 맞닥뜨린 일이나 폭풍우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룻배의 물을 바가지로 퍼냈던 일이 생각나더라. 그때 너희들 얼굴도 떠오르고···."

"죽을 고비를 넘긴 일?"

"응, 그 일을 떠올리니 종아리 맞는 건 무섭지 않았어."

"맞다. 맞다. 우리가 죽을 고비를 넘겼잖아."라고 하며 아이들은 어젯밤의 무서운 기억들을 상기시키며 수군거렸다.

"그런 것도 있고 또, 너희들이 탐험대 대장으로 뽑아줬는데 탐험대 활동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어."라고 하며 단은 말을 끝맺었다. 소녀는 단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비겁하거나 나약하지 않으며, 의리가 있고 신의가 두터운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대장을 잘 뽑았다며 자화자찬을 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 큰 소리로 떠들고 웃기도 했다. 그리고 아침나절에 대청마루에서 여러 어른들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도 했었고, 이틀간의 누적된 피로가 이제야 몰려오는지 하품을 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원두막 널빤지 바닥에 드러눕기도 하며 다들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도록 천둥 번개가 쳤다. 아이들은 모두 놀라서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다시 번개가 번쩍 지나가더니 곧이어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모두 급히 원두막 처마 밑으로 돌어가 비를 피하느라 서로 몸이 닿을 정도로 가운데 쪽으로 좁게 둘러앉았다. 오던 비는 그치지 않고 큰소리를 내며 천둥소리와 벼락을 동반하며 계속해서 내렸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았다. 한낮인데도 주변이 컴컴해지면서 비가 계속 내려 연못 위에는 거품이 둥둥 떠다녔다. 비가 올 때 수면이나 고인 물에 거품이 생기면 그날은 비가 많이 온다는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정말 많은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천둥 벼락도 가끔 '우르르 꽝꽝'하고 쳐댔다. 번개가 칠 때 쇠붙이를 가지고 있으면 위험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아이들은 지니고 있던 쇠붙이라는 쇠붙이는 모조리 구석으로 모아 쌓아놓았다. 윤택이는 윗옷에 쇠붙이 같은 것이 붙어있었는데 뗄 수가 없어 겉옷을 벗어 구석에 던져놓기도 했다.




한편, 아이들이 원두막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때, 일을 마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듯 손짓 발짓하며 웃음소리를 크게 내기도 하고 웅성거렸다. 마을 어른들이 그러는데 역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이들은 역병이 물러간다는 소문을 들으며 이제 자신들의 세상이 돌아온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더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도 좋은 날은 온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남은 여름방학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고 마을을 벗어나 체험이나 채집활동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모두 들뜬 기분이 되었다.


지난해부터 발병하여 수도권을 중심으로 퍼져 내려오던 역병이 잦아든다는 소문이 며칠 전부터 조금씩 돌고 있었다. 전국 각지를 차례로 혼란 속에 빠뜨렸던 지긋지긋한 역병이 정말 한 풀 꺾이는 것 같았다. 인근 산너머에 역병이 크게 창궐했던 지역에서도 산 위로 피어오르던 연기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역병이 할퀴고 간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어느 지역은 폐허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인구가 밀집된 도시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사람들 간의 상거래는 정지되었고 오가는 사람이 없어 유령의 도시를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근래에 그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발병한 역병을 두고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역병에 대한 공포는 환자가 참혹하게 죽어나가는 모습에서 뿐만 아니라 역병 자체에 대한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 무서워했다. 의사들이 권고한 최선의 처방은 역병이 발병하면 '빨리 떠나라. 최대한 멀리 가라.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늦게 돌아와라.'와 같은 말이었다. 첨단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조차 너무나 비과학적 상상에 맡겨 역병을 관리해야 할 정도로 실체가 없고 흔적이 없이 떠도는 병균에 모든 사람들이 놀아나는 꼴이었다. 사람들이 역병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통금을 실시하고, 발병한 집에 새끼줄을 쳐서 출입을 막고, 사람들이 서로 끼리끼리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적게 사는 시골로 피난 가라고 권장하는 것이 전부였다. 전염병이 퍼지고 있었지만 원인을 모르는 끔찍한 결과로 인해 엉뚱한 피해자도 여기저기 생겨났다. 사람들은 역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했었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역병이 잦아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뚜렷한 치료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각자 주변을 청결히 하고 서로 만나는 것을 줄이고 거리를 두어 생활하여 병균이 살지 못하게 하고 옮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았다.


알다가도 모를 역병은 갑자기 나타나 수수께끼처럼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었고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놓기도 다. 소리 소문 없이 왔다가 흔적도 실체도 없이 져서 온 세상을 뒤집어놓더니 갑자기 또 온데간데없이 바람처럼 물러나고 있었다. 역병은 때때로 무모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 인간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 다니더니 결국 모든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서 생활하여 옮겨 다닐 곳을 찾지 못하자 점점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이긴 것인지 역병이 이긴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누가 이기고 진 것일까. 어쨌든 무서운 역병이 러 나고 있다니 아이들은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었다. 전염병의 원인도 치료방법도 불확실했지만 서서히 역병이 사라지게 되니 사람들의 움직임은 활발해지고 삶의 열기도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 통금을 위해 설치되었던 새끼줄도 치우고 장비들도 모두 철거하였다. 5일장이 서는 날엔 읍내로 나들이 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한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모래톱 마을은 예전처럼 활기차게 움직였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아이들은 모처럼 찾아온 자유를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병이 물러간다는 좋은 소식을 들으며 아이들은 원두막에서 비를 피해 무엇을 할지 의논하였다. 지긋지긋한 역병이 물러간다니 아이들은 모두 까닭 없이 얼굴은 화색이 돌고 행복한 미소가 번지는 것 같았다. 먼저, 원두막에 둘러앉아 수수께끼 놀이를 하자고 하였다. 한 사람이 수수께끼를 내면 답을 맞힌 아이가 다시 수수께끼를 내는 놀이였다. 평소 국어시간에 배우기도 하고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수께끼들을 아이들은 많이 알고 게임도 즐기며 놀았다. 가장 적게 답을 맞힌 사람이 발칙으로 옥수수를 삶아서 다음에 만날 때 나눠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원두막 같은 쉼터에서 수수께끼를 서로 주고받으며 '호호호 하하하 꽐꽐꽐'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전설의 섬에 모험을 다녀온 아이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놀이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늘만 가면 숨는 것은? (그림자)

들어갈 때는 하나인데 나올 때는 문이 2개인 것은?  (바지)

뒤로 가면 이기고 앞으로 가면 지는 것은?  (줄다리기)

더울 때만 일하는 것은?  (부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수도꼭지)

닦으면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것은?  (걸레)

겨울에는 옷을 벗고 여름에는 옷을 입는 것은?  (나무)

잘못했을 때 가서 머리를 쓱쓱 문지르는 것은?  (지우개)

소는 소인데 미소의 반대말은? (당기소)

도둑이 훔친 돈은? (슬그머니)

물 중에서 가장 좋은 물은? (선물)

자기들만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은? (고집)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돈은? (할머니)

북은 북인데 살아있는 북은? (거북)

벌레 중에서 가장 빠른 벌레는? (바퀴벌레)

얼굴은 6개, 눈은 21개인 것은? (주사위)

걸어 다니는 귀는?(당나귀)

걸어 다니는 나무는?(목발)

겉은 고체이고 속은 액체인 것은? (계란)

 뼈도 없고 가시도 없는 고기는? (붕어빵)

공부해서 남 주는 사람은? (선생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은? (성공)

과수원에서 과일 먹기 가장 좋은 때는? (주인 없을 때)

귀로 먹고 입으로 뱉는 것은? (말)

귀에 실을 걸치고 일하는 것은? (바늘)

때리면 살고 안 때리면 죽는 것은?  (팽이)

내 것인데도 남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이름)

온 세상을 한 번에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은?  (눈꺼풀)

큰 입으로 먹고 작은 입으로 토하는 것은?  (주전자)

먹고 싶어도 더 먹을 수 없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는 것은?  (나이)

가장 빠른 새는?  (눈 깜짝할 새)

거꾸로 자라는 것은?  (고드름)

깎을수록 점점 커지는 것과 점점 작아지는 것은?  (구멍과 연필)


수수께끼 놀이가 끝나자 소녀는 서울에 있을 때 친구들과 자주 했던 놀이라고 하면서 날씨와 관련된 순우리말 퀴즈를 몇 개 내기도 했다.

겨우 먼지가 날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내리는 비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늦더위와 반대되는 말로 첫여름부터 일찍 오는 더위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햇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글 속으로 들어가기》

글 속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수수께끼로 친구들과 함께 놀이를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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