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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25. 2021

37화. 서울로 간 소녀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지만, 곧 그것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사소한 자극들도 새로운 도전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고 모험을 위한 동력이 되기도 했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더욱 새로운 자극에 곧 무감각해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무감각이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의 무감각은 성장이고 성숙이었다. 어른들의 무감각과 아이들의 무감각은 그런 면에서 크게 달랐다. 자극에 대한 어른들의 무감각은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그것은 성장이나 도약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고 지렛대가 되기도 했다. 그해 여름 숱한 자극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자신도 모르게 승화시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성숙해 갔다. 이제 아이들은 각자 또 다른 자극이나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이들이고, 그래서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 같았다.


역사 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부산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애교를 떨며 외할아버지께 이것저것 자랑을 늘어놓았다. 외할아버지께서도 부산포에 가면 그런 유명한 유적지에 들리곤 다면서 맞장구를 치며 소녀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특히 가야밀면 얘기를 들으시더니 입맛을 다시며 여름철 별미이고 최고의 서민 음식이라고 하시며 그곳에 가면 늘 찾곤 했던 단골 식당도 있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울 직장의 휴가가 며칠까지인지 물으시더니 우리 가족끼리 가까운 해변으로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오면 어떨지 의견을 내셨다. 소녀의 부모님께서는 휴가 기간 중 우리끼리 조용한 곳에 가서 다가 오면 좋겠다고 하였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녀에게 시골 생활을 하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며,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보라고 하셨다. 소녀는 시골 지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단이 가족이 여름휴가를 갔었던 은모래 빛 해변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곳을 추천하였다.


간단한 가족회의를 통해 기와집 댁 가족들은 소녀가 말한 해변으로 주말에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휴가 얘기를 마친 외할아버지께서 일어서려고 할 때 소녀는 갑자기 새로운 의견을 내었다.

"이번에 전설의 섬 탐험대에서 활동한 아이들이 애를 많이 썼어요."

"그 아이들도 꼽사리 끼어 우리 가족과 같이 가서 아이들끼리 텐트에서 지내도 될까요?"라고 하며 몇몇 아이들도 동행하는 것에 대해 여쭈어봤다. 그랬더니 외할아버지께서는

"단이도 같이 가는 거야?"라고 하시며 관심을 보이셨다.

"네, 물론 단이도 함께 가게 될 거예요."라고 하니 외할아버지께서는 아이들 부모들이 허락하면 같이 가자고 했다. 섬으로 가는 편은 별장에 있는 목선을 잠시 이용할 예정이라는 말씀도 남기시고, 외할아버지께서는 마실 가신다며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셨다.


아빠와 남도 지방의 역사 기행을 다녀온 소녀는 다음날 강나루 쉼터에서 아이들과 만났다. 소녀가 경험하는 그해 여름의 끝자락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째깍째깍 초침이 쉴 새 없이 움직여 가듯이 소녀의 남은 시골 생활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의 문턱인 입추는 지난 지 오래고 곧 다가오는 처서가 지나면 소녀는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처서는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늦여름 더위도 물러가게 되는 24절기 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은 소녀가 조만간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섭섭하다며 기념이 될만한 일을 하자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단이와도 미리 얘기했었던 캠핑 이야기를 꺼냈다. 단이가 며칠 전에 소녀와 얘기한 내용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준 것 같았다. 아이들은 부모님들께 허락을 이미 받고 캠핑을 떠날 생각에 들뜬 기분이 되어 있었다.


소녀는 이번 주말에 가게 되는 휴가는 소녀의 외할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목선을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주말 캠핑에 대한 계획을 미리 짜서 추억에 남는 휴가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강나루 쉼터는 사람들이 오가서 시끄러우니 연못가에 있는 조용한 석이네 원두막으로 가서 의논하자고 하였다. 원두막에 도착한 아이들이 2층으로 올라가고 석이와 윤택이는 과수원으로 수박 한 덩이를 따러 갔다. 석이 부모님께서 지난번 원두막에 있었던 아이들이 과수원에 물이 차오른다고 알려주어 과일들을 많이 건졌다면서 아이들이 다시 모이면 수박을 따서 먹으라고 한 것 같았다. 과수원에서 수박이나 참외를 서리해서 먹으면 더 맛있다고 농담도 하면서 아이들은 수박을 주먹으로 깨어 나누어 먹었다.


소녀는 이번에 휴가를 떠나면 어른들과 식구들은 민박집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지 의논을 하자고 했다. 인근 마을에서 어른들이 민박을 하니 아이들끼리 해변에서 야영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일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 단이도 해변이 조용하고 좋았다면서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며 지내자고 했다. 아이들 중에는 바닷가에서 야영을 하며 파도 소리를 듣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들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다. 소녀는 별을 보며 파도 소리도 들으려면 비박을 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도 마을 캠프에서 비박을 한 적이 있다며 텐트 안에서 자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면서 맞장구를 치기도 하였다. 단이는 지난번 휴가 때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선창에서 돗자리만 깔고 자기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비박(Biwak)은 일반적으로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동굴이나 바위, 큰 나무 따위를 이용하여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 단이가 구체적인 야영 계획을 짜자고 하며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비박을 하되 하룻밤을 온통 비박으로 할 건지 텐트를 준비하여 자정이 되면 텐트 안에서 지낼 것인지 의견을 말해줘."

"텐트 없이 밤을 새우는 것은 무서워."라고 하며 리솔이가 말하자

"텐트를 준비하되 팀별로 알아서 하는 게 어때?"라는 석이의 말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좋은 의견을 내었다.

"그럼 팀을 나눠야겠네."

"응, 2인 1조로 팀을 나누자."
'그래, 좋아, 좋아."

"여자애들은 2명이 한 팀이 되고 남자애들은 두 사람씩 나누면 되겠네."

"응, 내가 창의랑 한 팀을 하고 단이란 석이가 한 팀이 되면 어떨까?"라고 윤택이가 말했다.

아이들은 팀도 나누고 이제는 야영 준비물을 의논할 차례가 되었다. 야영을 많이 해본 석이가 야영에 필요한 준비물을 이것저것 알려줬다.

취침 도구 : 텐트, 침낭(모포), 돗자리 등
취사도구 : 코펠, 버너, 수저, 식수통 등
식재료 : 쌀, 라면, 김치, 간식 등
세면도구 : 치약, 칫솔, 수건, 비누, 샴푸 등
기타 : 소형 랜턴(손전등), 벌레 퇴치용품, 마늘, 담뱃가루(봉초), 카메라, 놀이도구 등


아이들은 마늘이나 담뱃가루는 뭐냐고 물었다.

"응, 그건 텐트 없이 비박할 때 돗자리 주위에 뿌려놓고 잔 적이 있어. 그전에 야영할 때."

"돗자리 주위에 뿌려놓는다고?"

"그래, 만약에 잠자고 있는데 벌레나 뱀 등이 돗자리에 올라오면 위험하니 못 올라오게 독한 냄새가 나는 걸 뿌려놓으면 안전하다고 해서."

"마늘은 무엇에 쓰려고 가져와야 하지?"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마늘은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하여 일해 백리(一害百利)라고도 부른대. 마늘의 강한 냄새를 뱀이 싫어한다고 들었어."라고 소녀가 말했다.

"봉초가 뭐냐?"라고 아이들이 얘기하자

"옛날 담뱃대에 넣어서 피울 수 있도록 잘게 썰어 봉지에 넣은 담뱃가루야. 집에 있으면 들고 오면 돼."라고 하며 석이가 친절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럼, 벌레나 곤충, 뱀 등이 싫어하는 걸 준비하면 좋겠네."
"그래, 그런 걸 잠자기 전에 주변에 두는 거지. 요새는 모기향 같은 걸 피워놓기도 해."


"비박은 어떻게 하는 거야?"

"비박할 때는 미션을 주기도 했어. 예를 들면 옥수수 같은 먹거리 재료와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를 주면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밥을 해결한 뒤 정해진 시간까지 지시서에 적혀 있는 장소에 도착해야 하는 미션도 있어."라고 하며 석이가 형들과 같이 캠핑한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러니까 비박 캠핑은 위기에 대비하는 야영 훈련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응, 그래 야영을 하다 보면 위기 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같이 캠핑을 진행하기도 했었어."

"야, 그거 재밌겠다. 우리도 그렇게 해볼까? 미션을 정해서 팀별로 그걸 수행하는 거지."

"좋아, 좋아. 그날 해변에 가서 야영할 때 구체적으로 정하기로 하자."


석이가 야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자 윤택이는 취사도구는 자기가 준비할 것이니 다른 준비물들은 팀별로 챙겨 오도록 얘기를 해줬다. 아이들은 휴가지에서 야영할 일을 생각하니 당장 오늘 밤에 야영이라도 할 것처럼 들뜬 기분이 되어 마구 떠들었다.


주말 아침 일찍 기와집 식구들과 아이들은 모두 목선을 타고 은모래 빛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다. 아이들은 1박 2일간 텐트를 가지고 가서 야영 겸 비박을 하기로 하고, 외할아버지는 섬마을에 아시는 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민박을 하기로 했다. 한여름철이라 날씨는 무더웠으나 아침저녁으로는 간간이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모처럼의 추억 여행에 한껏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아이들을 실은 목선은 은모래 빛 해변 마을에 정박하여 사람들을 내려주고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떠났다. 은모래 빛 해변은 이제 아이들의 몫이 된 것 같았다. 주변 지역의 마을들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외진 곳에 있고 작은 해변이라 다른 휴가객들은 그날따라 거의 없었다. 조용해서 아이들이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어른들은 민박집으로 가고 아이들은 청정 은모래 빛 해변에서 캠핑 도구들을 풀었다. 우선 텐트를 먼저 설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윤택이 팀에서 창의가 준비하기로 했던 텐트를 깜박하고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윤택이는 창의를 놀리며 창의더러 여자팀에 가서 지내라고 했다. 그러자 머리를 끄적이며 미안해하는 창의에게 다른 아이들이 괜찮다고 하며 석이가 준비해 온 3~4인용 텐트를 함께 이용하자고 했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알아보고 안전한 곳에 텐트를 설치했다.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아이들은 텐트 안에 가지고 온 준비물을 대충 던져 놓고 바다 수영을 하자고 했다. 모두는 수영복으로 급히 갈아입고 해변으로 나왔다. 먼저 나온 남자아이들은 바닷물에 들어가서 씨름을 하기도 하고 물장구를 치며 뛰어다니기도 하였다.

 


소녀와 리솔이도 오랜만에 경과 수모를 착용하고 수영복 차림에 긴 비치 타월을 걸치고 나타났다. 아이들은 모두 놀라며 멋지다는 말을 연발하기도 했다. 해변에 나온 아이들은 모두 모여 준비운동을 한 후 일제히 물속에 몸을 담갔다. 바다 수영을 즐기던 남자애들이 먼저 바다에 떠 있는 안전 튜브까지 갔다 온다며 헤엄을 쳐서 나아갔다. 소녀와 솔이도 뒤따라 수영을 하여 튜브까지 헤엄쳐서 갔다가 돌아왔다. 바다 수영에 자신이 없었던 소녀는 별장 섬에서 며칠간 해녀들과 바다에 적응한 보람이 있었던지 전혀 무섭지 않다면서 바다 수영을 자유자재로 즐겼다.


'그해 여름' 아이들의 물놀이 영상자료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 뭍에 올라온 아이들은 배가 출출하다면서 서둘러 버너와 코펠을 설치하며 밥을 짓자고 했다. 텐트와 텐트 사이에 취사도구를 두고 아이들은 민박집에서 페트병에 식수를 몇 병 떠와서 쌀을 씻었다. 그리고 씻은 쌀을 코펠에 넣어 버너에 불을 붙이고 밥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 김치나 장아찌 등 각자 가져온 음식 재료를 꺼내어 놓았다. 점심때 국물은 라면으로 정했다. 버너로 밥을 짓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야영 미션을 정하기로 했다. 은모래 해변에 온 기념으로 오후에는 장신구 만들기를 하고, 밤에는 돗자리를 펴고 비박을 하며 별자리 찾기 놀이를 하자고 하였다. 미션을 정하고 있는 사이 코펠에서 김이 새어 나왔다. 석이와 윤택이가 달려가서 해변에 있던 몽돌을 몇 개 주워와서 코펠 위에 올렸다. 높은 산에 등산을 갔을 때 산 위에서 밥 지을 때 어른들이 그랬다면서 무거운 돌을 올려놓으면 압력밥솥처럼 밥이 잘된다고도 했다. 밥솥 뚜껑을 공기가 누르고 있는데 몽돌을 뚜껑 위에 올려놓으면 누르는 압력이 세져 밥이 잘 될 것 같았다. 모처럼 휴가 나온 아이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자질구레한 야영이나 캠핑 경험담을 늘어놓는 걸 듣고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밥 짓기가 다 되어 밥을 먹고 난 뒤 라면 국물에 흰밥을 말아먹기도 하였다. 아이들끼리 함께 먹는 밥은 눈 깜빡할 새 동이 났다.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장신구 만들기를 하였다. 단이는 여기 왔을 때 은모래 빛 해변에서 소녀를 생각하며 조개껍데기로 팔찌를 만든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해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조개껍데기나 고동 같은 것을 주워 장신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녀는 고동과 조개껍데기로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는데, 여름방학이 끝나면 서울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신이 난 표정이었다. 아이들 몇몇은 잔잔한 해변에서 물수제비 뜨기를 하면서, 누가 던진 돌이 더 많이 튕겨 오르는지 서로 내기를 하기도 했다. 물수제비 뜨기는 물 밖에서 납작한 작은 돌멩이를 수면에 던지며 노는 놀이였다.


저녁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백사장에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놀이도 했다. 서로 넘어뜨리며 공격과 수비를 하는 게임이어서 모래밭에서 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인 오징어 달구지를 하자고 했다. 백사장에 오징어 모양의 도형을 그린 뒤 세 명씩 편을 갈라 놀이를 했다. 그리고 넓은 백사장과 얕은 바닷가를 이용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도 하였다. 먼저, 술래를 바닷물이 허리춤 정도 는 곳에 세워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섯 번이나 열 번 셀 때까지 들키지 않고 술래보다 더 먼 바닷물 쪽으로 가는 놀이였다. 또한, 오랜만에 서로 어울리는 아이들은 소풍으로 갔을 때 가끔 즐겼 놀이 가운데 '보물찾기'도 새로운 방법으로 변형시켜서 해보기로 했다. 옛날 속담이나 수수께끼를 적은 쪽지를 백사장 모래 속에 각자 서로 모르게 몇 개씩 숨겨두고 찾는 놀이였다. 흔히 보물 찾기는 숨겨진 쪽지를 찾으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이 하게 된 놀이 규칙은 보물을 찾은 뒤에 쪽지에 적힌 속담의 뜻이나 수수께끼의 답도 맞혀야 하는 놀이였다. 이렇게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창의적으로 하며 한여름 오후의 즐거운 한때를 보내었다.

오징어 게임(오징어 달구지)
백사장 오징어 게임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비박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박혀 있는 여름철 별자리를 찾으며 별자리 이름 만들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각자 찾은 별자리 모양에 이름을 붙이고 별자리의 전설을 꾸며서 이야기해주는 놀이였다. 그런데 그때 민박집에서 머물던 가족들이 횃불을 들고 바닷가로 내려왔다. 물때를 봐서 횃불로 유인해서 밤 낙지잡이를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우르르 몰려가 낙지잡이에 기웃거리며 어떻게 낙지를 잡는지 체험도 하였다. 낙지는 야행성이라 밤에 먹이활동을 하러 갯벌 구멍에서 나와 밀물과 썰물에 따라 헤엄쳐 다녔다. 어두운 밤에 횃불을 비춰서 물 위에 떠다니는 낙지를 손이나 뜰채로 잡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낙지잡이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무릎이 찰 정도의 물 위치에서 들물을 따라 들어오거나 썰물을 따라 물이 내려가면 낙지들이 머리를 쫑긋하게 들고 서 있다가 쏜살같이 달아나곤 했다. 그러면 ‘가래'로 덮어 씌우거나 손으로 낚아채서 잡는 사람도 보였다. 탐험대 아이들은 계획에 없었던 낙지잡이 체험을 끝낸 뒤에 미리 준비한 비박 프로그램에 따라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 찾기도 하고 무서운 이야기도 하며 한여름 밤을 보내었다. 아이들은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미서 이야기하며 지내다가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모두 각자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의 추억 만들기는 끝이 안 보였지만 잠도 자야 했다.


다음 날 점심을 먹고 나니 아이들과 소녀의 가족들데리러 목선이 선창에 도착하였다. 소녀와 아이들은 은모래 빛 해변에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마을로 돌아갔다. 소녀는 다음 날 하루를 쉬고 모레 아침 부모님과 같이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


드디어 소녀의 가족들이 마을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기와집 사람들이 나와 배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모두 나와 포옹을 하기도 하고 귓속말을 나누기도 했다. 잠시 후 나룻배는 소녀를 싣고 물살을 가르며 떠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손을 흔들었고 소녀도 나룻배에서 일어나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배는 떠나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소녀와 나루터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던 단은 가던 길을 되돌아와 강나루에 서서 소녀가 탄 나룻배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소녀는 서울로 돌아갔다. 이제 모래톱 마을에는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소녀는 없었다. 혼자 남은 단은 그 빈자리를 다시 느끼고 있었다. 소녀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 컸다. 며칠 전 해변에서 함께 놀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해맑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소녀의 환한 미소 위에 단의 마음은 머물고 있었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너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머물 거야."

"우리의 아름답고 순수한 우정은 계속될 거라 믿어. 안녕!"

소녀가 나룻배를 타기 전에 남겼따스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한동안 단은 꼼짝도 하지 않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룻배가 지나간 자리엔 청둥오리 한 마리가 물살만들어내며 어디론가 헤엄쳐가고 있었다. 외로워 보였다.



글 속으로 들어가기》

야외 체험이나 캠핑 활동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야외활동의 안전생활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보물찾기' 및 '오징어 게임'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아이들의 옛날 놀이에 대해 알아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놀이를 함께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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