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 있는 분교에 다니게 되면서 소녀는 오랫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긴 기다림 끝에 소녀는 모래톱 마을로 다시 내려온 부모님과 반가운 재회를 했다. 그리고 평소 관심이 많았던 역사 기행으로 남도 지방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소녀는 부모님께서 해외연수를 무사히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많이 보고 싶었지만 대견하게 꾹 참아왔던 소녀였다. 수시로 그리운 마음을 편지에 담아 서로 주고받기도 했으나 막상 귀국하였다 하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부모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시골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을 오롯이 다해왔던 소녀였지만 부모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들은 다 그런 것 같았다. 혼자서 자기 일을 잘해나가다가도 부모님 앞에서는 언제나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어린아이로 변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소녀도 영락없는 평범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방학이 되면 소녀는 자신이 평소 관심을 가졌던 역사기행을 아빠랑 하고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으로 기회를 놓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번에 부모님께서 휴가차 시골에서 며칠 머물 수 있게 되었다니 남도 지방의 역사 기행을 아빠와 함께 다녀오고 싶었다. 저녁때쯤에는 소녀가 지내는 기와집에 부모님께서 내려오시기로 되어 있었다. 해외연수를 마치고 직장에서 며칠간의 말미를 얻어 휴가차 시골 마을에 들른다고 하셨다. 오늘따라 왜 이리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5일 장에 읍내 시장에 다녀오는 엄마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듯이 소녀도 다시 만나게 될 부모님을 하루 종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아이들과 탐험대를 꾸려 전설의 섬을 탐사하는 활동도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 가까스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토록 무서웠던 도깨비불이며 전설의 섬에 있는 동굴에서 들려온다는 소름을 돋게 했던 괴성의 비밀들도 모두 밝혀진 것 같았다. 신비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마을 사람들을 긴장시키며 겁을 주었던 전설의 섬은 이제는 무인도가 아니었다. 이제는 단이 할아버지께서 살고 있는 섬이 되었다. 보물선과 해저 유물을 둘러싼 음모와 노략질로 고대구리 배들이 장기간 설쳐 섬 주변 어종들의 씨를 말렸고, 그로 인해 조업에 애로를 겪었던 마을은 심각한 타격을 받아 황폐화의 길로 걷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사고로 단이 할아버지께서는 실종되었고, 가까스로 생존자로 발견되었으나 기억을 잃은 채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수십 년을 고통 속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단이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를 닫고 마음마저 걸어 잠그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 모래톱 마을과 전설의 섬 주변의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들은 서서히 걷히고 있는 것 같았다. 온 천지를 초토화시키며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던 역병이 어느 순간 소리 없이 물러났듯이 마을에 드리워진 암울한 그림자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시골에 내려온 소녀는 모래톱 마을이 안고 있었던 풀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와 대면했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소녀에게 남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만 들렸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가느다란 목소리의 정체가 소녀에게는 아직도 두려운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시골 마을에 내려와 왜 단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으며, 또 그의 할아버지의 생존을 확인하는 일에 엮이게 되었는지 그런 풀지 못한 의문들이 소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 천지간의 만물을 지배하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인간의 자각이나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요, 무의식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설도 있다고 하니 세상일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소녀를 둘러싼 풀리지 못한 미스터리에 대한 의문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제 소녀는 시골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야만 했다. 여름방학의 마지막 휴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에 때마침 부모님께서 시골 마을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고 하셨다. 소녀는 부모님이 모래톱 마을에 오시면 예전에 꿈꿨던 남도 지방의 역사 기행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성사될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는 것은 또 다른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 주어 좋았다. 부모님께서는 읍내에서 나룻배를 타고 시골 마을로 오신다고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강나루를 서성이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강나루로 나왔다. 부모님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소녀는 한나절 내내 강나루를 서성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갈래 길 쪽에서 단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단이는 전설의 섬에서 실종자의 생사를 확인하고, 엉겁결에 자기 할아버지를 대면하긴 했지만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요 며칠 단이는 가끔 강나루를 혼자서 거닐기도 하며 뭔가에 홀린 아이처럼 지내고 있었다. 단의 입장에서는 마을의 문제들은 서서히 해결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기 할아버지의 일이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었다. 마을로 모시는 것도 문제요, 그대로 섬에서 홀로 지내시게 하는 것도 문제였다. 단은 강나루 쪽으로 걸어오다가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어 보이며 달려왔다.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아침부터 서성이는 것 같더니."라고 하며 단이는 소녀의 행동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응, 뭐 좀 생각할 것도 있고···, 우리 부모님께서 오신다고 해서 마중 나왔어."
"부모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신다고?"
"응, 오늘 저녁에 오시기로 되어 있어."
"그럼 곧 서울로 가게 되는 거니?"
"응, 아마 그럴 것 같아."
소녀와 단은 서로의 이별을 예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헤어져야 할지도 몰랐다. 아직 며칠 남았지만 둘은 벌써 허전하고 쓸쓸해지고, 그래서 외롭고 슬퍼질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아이들의 눈가는 미소로 가려져 있었으나 마음속에는 눈물 자국이 희미하게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단은 소녀에게 궁금한 것이 여전히 많았다.
"부모님께서 며칠간 시골에 머무시게 되면 뭘 할 거니?"
"아마, 예전에 관심이 있었던 남도 기행, 역사 이야기를 따라 걷는 것을 해보고 싶어."
"어디서?"
"조선 시대 부산포가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다는데 그쪽으로 가보고 싶어. 서울에서는 멀어서 좀처럼 가기 어려운 곳이니 이곳에 내려와 있을 때."
"그래, 좋은 공부가 되겠구나. 이번에 보물선이나 해저 유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면서 나도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어."라고 단이도 맞장구를 치며 역사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한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다소 무겁고,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긴 침묵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자 단은 머뭇거리며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또 이것저것 물었다.
"역사기행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가는 거니?"
"으응, 그럴 수도 있고···."라고 하며 소녀는 말끝을 흐렸다. 단은 소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을 이었다.
"마을 아이들이 너랑 헤어지는 게 많이 서운할 것 같은데···. 그냥 헤어지게 되면···."이라고 이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살짝 드러내었다. 그러자 소녀는 단의 표정을 살피더니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럼, 역사기행은 우리 아빠랑 다녀올 건데. 당일치기로. 그리고 며칠 여유가 있긴 하지만."이라고 하며 소녀는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건 아닌데 우리 가족들이 외할아버지랑 함께 휴가를 떠날지도 몰라. 그때 마을 아이들도 같이 가서 우리끼리 야영 같은 걸 하는 건 어때? 그러면 아이들이 좀 덜 섭섭해할까?"라고 하며 단을 쳐다봤다. 단은 어쨌든 소녀와 그냥 헤어지기는 너무 아쉬웠다. 단은 자기 할아버지를 찾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다했던 소녀를 그렇게 쓸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무슨 좋은 계획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단은 소녀에게 언질을 주었다.
"이번 주말에 아이들 스케줄을 알아보고 의견을 말해 줄게."라고 하며 기분이 다소 풀린 듯이 말했다.
아이들이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 사이 나룻배가 건너편에서 강나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단은 그전에도 한두 번 뵌 적이 있었던 소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야 해서 나룻배가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소녀의 부모님께서 강나루에 내렸을 때 소녀는 급히 달려가 부모님 품에 안겼다. 단은 어른들께 예의를 갖추어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소녀의 어머니께서는 단의 손을 붙잡고 할머니 안부며 가족들의 근황을 물으시고, 단에게도 소녀와 친하게 지내주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소녀와 부모님은 기와집 쪽으로 가고 단은 갈래 길에서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기와집에 도착한 소녀의 가족들은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해외 출장 때 있었던 일이며, 시골 마을에서 소녀가 지낸 일들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가족들의 대화 중에 소녀는 기회를 틈타 아빠께 남도 지방의 역사 기행으로 조선 시대 옛 부산포 쪽으로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오랜 기간 떨어져 혼자서 의젓하게 생활해 온 딸을 위해 기꺼이 하루를 투자하겠다며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부녀지간에 오고 가는 얘기를 듣고 있던 외할아버지께서는 가족들이 다 모였으니 주말쯤에 여름휴가라도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부녀는 배낭을 메고 강나루로 나가 나룻배를 탔다. 소녀와 아빠는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간이역으로 이동해 기차를 타고 역사 기행을 떠났다.
기와집에서는 기차에서 먹거리로 삶은 계란과 김밥을 준비해서 배낭에 넣어주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먼 길이었지만 이곳 시골 마을에서는 2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소녀는 오랜만에 아빠와의 단둘이 여행이라 한껏 들뜬 기분이 되었다. 아빠는 배낭여행을 즐기고 걷는 것을 좋아해 전국의 지리를 한눈에 꿰뚫고 있었으며, 가까운 일본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 주변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기차가 읍내를 빠져나가 강변으로 접어들자 소녀는 차창으로 펼쳐지는 시원스러운 경치를 감상하며 이것저것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여쭤보기도 하였다.
"지금 타고 가는 철로는 호남선이에요? 저는 처음 타보는 것 같아요?"
"아니, 우리는 지금 경전선을 타고 가고 있어. 경전선(慶全線)은 경부선과 호남선을 잇는 철도를 말하지."
"경전선이라고요? 저는 처음 듣는 철로예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로인 경부선이 있고 호남선이 있는데 그것을 연결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네."
"경전선은 정확히 어디와 어디를 연결하는 거죠?"
"응, 경부선의 밀양 삼랑진역과 호남선의 광주(송정역)를 연결해. 그런데 지금은 삼랑진이나 광주에서 철로가 여러 갈래로 지선이 이어져 있어서 교통이 더 편리해졌단다."
"그럼, 우린 부산까지 가야 하는데 경전선이 삼랑진까지만 가면 어떻게 해요?"
"응, 그러니까 삼랑진에서 경부선과 만나는데, 이 기차는 삼랑진에서 부산으로 철로가 연결되어 있어 부산까지 갈 수가 있단다."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철로가 매우 복잡하군요. 경부선은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건 알겠는데, 호남선은 정확히 어디서 어디까지인가요?"
"호남선을 타면 서울에서 광주나 목포까지 갈 수 있는데, 실제로 호남선의 시작과 끝은 대전에서 목포까지라고 해야겠지."
"아, 그렇게 되는군요. 그러니까 경부선이 있고, 그걸 타고 내려오다 대전에서 호남선으로 갈라진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렇지. 우리 은설이 이해력이 좋은데. 하하하."
부녀지간에 철로에 대한 정보와 여름방학 중에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기차는 벌써 삼랑진을 지나고 있었다. 소녀는 창가에서 드넓게 펼쳐진 강을 바라보며 강의 이름과 건너편에 있는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에 관하여 묻기도 하였다. 아빠는 소녀에게 경험에서 얻은 여러 가지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낙동강은 1,300리 물길이며, 한반도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다음으로 긴 강이란다. 남한에서는 가장 긴 강이라고 할 수 있지. 남한의 대표적인 강에는 한강(수도권), 금강(충청권), 영산강(호남권)과 더불어 낙동강이 있는데, 지금 보이는 낙동강은 남한의 4대 강 중의 하나이며 영남의 젖줄이라 불리기도 한다."라고 하셨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뒤로하고 기차는 달리고 달려 구포를 지나 종착역인 부전역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나오다 보니 두 사람은 배도 출출하고 허기졌다. 부산포에 도착하면 소녀는 점심으로 그곳의 향토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소녀의 말을 듣고 있던 아빠는 부산에는 유명한 음식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여름철에 인기가 있는 가야밀면을 점심으로 추천하였다. 소녀는 뭐든지 맛이 있을 것 같기도 하여 서민 음식인 가야밀면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역사 기행이라는 방문 목적에 맞게 조선 시대 부산포라는 항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옛 지명과 옛사람들의 활약상을 따라 역사와 함께 부산포에서 길을 걷고 싶었다. 여행할 곳을 사전에 조사해봤는데 부산포는 서로 이웃한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서 전쟁과 화해를 동시에 간직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임진왜란의 아픔을 간직한 곳임과 동시에 조선통신사를 통해 오랜 기간 문물을 교류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먼저, 두 사람은 역사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부산진성이라는 곳을 정했다. 버스에서 내려 부산진성에 오르기 전에 근처에 있는 예부터 포목전으로 유명했던 부산진시장을 둘러보고 자성대로 불리기도 하는 부산진성으로 갔다. 도심이 발달하면서 성의 위치가 변경되기도 한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는 특이한 우주석이 눈에 들어왔다. 서문의 양쪽 기둥에 세워둔 것인데 '남요 인후'와 '서문 쇄약'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옆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며,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부산포와 임진왜란을 떠올리니 돌기둥에 새겨진 글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부산포가 남쪽의 국경과 같았으며 부산진성의 서문은 자물쇠 역할을 했다는 뜻인 것 같았다. 부산포가 조선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성에 올라가 남문에 해당했다는 진남대에서 부산항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장수들이 왜적선을 발견하고 군사를 지휘했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라의 운명을 쥔 호국영령들의 고함치는 소리가 부산항을 휘감아 울려 퍼지는 듯하였다. 역사의 현장에 직접 와서 보니 부산포가 나라의 요충지였다는 사실과 그 당시의 긴박했었던 전쟁 상황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한산도대첩의 격전지 견내량 해협
아빠는 부산포 건너편에 있는 절영도 너머를 지그시 바라보시며 임진왜란의 최대 전승지 가운데 하나인 한산도대첩을 떠올리셨다. 1592년 7월 8일 견내량 해협의 좁은 해로에 숨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왜적선을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으로 섬멸했다는 일화였다. 그 당시 전투에서 조선의 수군이 대승을 거둠으로써 역사상 위대한 이름을 남긴 이야기와 견내량이라는 잊지 못할 지명도 언급하셨다.
견내량 해협
견내량과 해간도 해상에서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이후 발발한 부산포 해전은 물론 남해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해전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씀에 아찔한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 당시 위태로웠던 전쟁의 순간들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부산포와 연결 지어 설명을 듣고 나니 조각 지식으로 대충 알고 있었던 임진왜란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조선통신사 이동 경로
'전쟁과 화해(소통)'를 상징하듯 바로 옆에는 조선통신사 역사관이라는 곳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역사관과 나란히 하여 바로 옆에는 조선통신사 행렬의 출발과 귀환이 이루어졌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영가대(永嘉臺)라는 곳도 있었다. 아빠의 설명에 따르면 영가대는 조선 후기 통신사를 비롯한 사신들이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해신 제당의 역할은 물론, 통신사 행렬의 출발과 귀환의 상징적인 지점이 되기도 했던 장소였다.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에서 통신사 행렬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나 무사히 돌아와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관광안내판에는 조선통신사 행렬은 한양-충주-문경새재-영천 등을 거쳐 부산포 자성대 부근 영가대에 집결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선 전후기에 총 12회의 조선통신사 행렬이 일본으로 파견되었다는 기록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부산진성 주변의 부산포를 걷다 보니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가까운 시장으로 가서 부산의 맛집으로 유명한 곳에서 가야밀면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냉면과 달리 메밀을 사용하지 않고, 옛날 미군 부대에서 나온 밀가루를 사용했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하는 음식이었다. 밀가루 면이지만 쫄깃쫄깃하기로 유명하여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은 후 돌아갈 기차 시간을 맞춰야 해서 서둘러 임진왜란의 영웅으로 불리기도 했던 송상현 공을 만나러 갔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부산포 앞바다에서 물건을 지고 고개를 넘었다는 모너머 고개라는 지명이 있는 곳을 지나 충렬사로 향했다.
동래 충렬사에 도착하니 장수들의 위용을 드러낸 충렬탑이 입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충렬사에는 부산지방에서 순절하신 93위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본당에는 89위의 위패를 모셨는데 한가운데에는 좌측부터 동래부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포 첨사 윤흥신 등 세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또한, 의열각에는 의녀 등 여성의 위패 4위가 모셔져 있었다. 호국영령들이 모셔져 있는 엄숙한 경내에 들어서니 절로 숙연해졌다. 제단 위에는 하얀 국화꽃을 정갈하게 두고 향을 피워놓고 있었는데 우리는 묵념을 하며 호국영령의 고귀한 뜻을 기렸다. 그리고 그 유명한 동래부사 송상현 공의 명언비를 찾았다. 비석에는 '戰死易 假道難'이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빠는 비석의 글자를 읽으며 그 의미를 말씀해주셨다. '전사이 가도난' 즉,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는 뜻이며, 왜군들이 부산포와 동래를 거쳐 한양으로 쳐들어가려고 할 때, 송상현 공이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막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극한 시점에 목숨을 내던진 옛 선인들의 호국 충정을 엿보며, 소녀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해보기도 했다.
처음 방문한 부산포에서 더 시간을 보내며 구경을 하고 싶었으나 시간에 맞추어 기차역에서 경전선을 타고 읍내로 돌아가야 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역사와 함께 걷기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하고 궁금한 점도 더 여쭈어보았다. 아빠는 조선의 500년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왕조에 대해 이해하고, 그 순서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역사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던 소녀는 조선의 27대 왕조들의 머리글자 순서를 낭랑한 목소리로 읊으며, 아빠 앞에서 역사 지식을 한껏 자랑하기도 했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이라고 조선의 27대 왕의 계보를 거침없이 말하자 아빠는 엄지를 세우시며 대견하다며 크게 칭찬해 주셨다.(註: <조선왕조 27대 계보> 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인종-명종-선조-광해군-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정조-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
아빠는 어린 시절에 소녀가 외우고 있듯이 조선왕조의 순서를 기억했더니 역사적 사건의 연대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경험담도 들려주셨다. 부산포에서 임진왜란(1592년)이 발발했던 것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 임금 때라고 하시며, 전란을 피해 한양을 비우고 왕이 파천했던 일화도 소개해 주셨다. '파천'을 '몽진'이라고도 하는데 몽진이란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도망친다는 직역으로서의 뜻이 있다고도 하셨다. 또한, 몽진이나 파천은 전쟁이 벌어진 이후 일국의 군주가 자기 나라를 버리고 인접국으로 도망치는 것을 의미했으며, 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도주하는 것 역시 몽진이라 하였다. 아빠는 역사 이야기를 하시며 조선의 왕조 가운데 파천에 얽힌 대표적인 왕들은 선조, 인조, 고종 임금이 있다고 덧붙여 설명해 주셨다. 임금이 파천했던 시기에는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고, 백성들이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어야만 했을 모습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었다. 아빠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역사 속에서 전란의 아픔을 떠올려보게 하고 나라의 소중함도 되새기게 해 주셨다. 그리고 '종'이나 '조'가 붙지 않는 왕은 두 임금이 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이라고 덧붙이면서 조선의 왕들을 잘 이해하면 흥미진진한 역사 공부를 쉽게 할 수 있다고도 하셨다.
우리는 옛 부산포 거리에서 역사와 함께 길을 걸으며 조상들이 보여준 호국 충정의 숨결을 느끼기도 하고, 옛 음식을 통해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환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방학을 맞아 외할아버지 댁에 왔다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부산포에서 역사 기행도 하게 되어 더욱 뜻깊은 여름이 된 것 같았다. 무더운 여름을 시골 마을에서만 지내다가 밖으로 나와 아빠와 함께한 나들이는 무척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다. 남도 지방 부산포에서 그 옛날 조선 시대로 시간을 되돌려 역사이야기를 나누며, 모처럼 아빠와 함께 걸었던 역사 기행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의미 있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글 속으로 들어가기》
소녀는 부모님과 역사 기행으로 어디를 방문했는지 알아보고, 자신이 체험했던 문화유적지와 관련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자신이 소녀가 되어 글 속의 이야기를 따라 역사기행을 다시 해보며, 간접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봅시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의 대승과 견내량 해협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