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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23. 2021

35화. 전설의 섬 생존자의 정체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마을 사람들과 탐험대 아이들은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다시 전설의 섬으로 가는 일을 의논했다. 아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신비의 섬에서 목격됐던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 마을 어른들은 섬으로의 출발을 서둘렀다.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이 훈계를 받았던 대청마루에서 탐험대가 신비의 섬에 상륙하여 탐사 활동을 통해 얻은 자료들을 검토하였다. 한때는 훈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아이들은 이제 마을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낼지도 모르는 용기 있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증거가 될 만한 사진 자료와 스케치 자료도 보여드리고 섬에서 느꼈던 사람의 흔적으로 조개껍데기, 불을 사용한 그을음, 고개를 넘어가는 오솔길 옛날 막걸리통 등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원시인들이 정착 생활에 이용하기도 했다는 동굴의 존재와 그것을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었던 괴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낱낱이 말씀드렸다.


마을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이며 어린 꼬맹이라고만 여겼던 아이들이 증거를 들이대며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것을 듣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던 어른들은 '우리 마을에 이토록 용기 있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단 말인가.'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여기저기서 쑥덕거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대견하다며 치켜세우기도 하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는 '용기의 핵심은 신중함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간혹 용기를 사납고 거칠며 성급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용기는 무모함이나 허영심과는 거리가 있으며, 진정한 용기는 매우 이성적이며 신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타고난 성격과 관계없이 조심스럽고 치밀한 준비를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면 누구나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용기의 근원이 되는 신중함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도와주며 행동할 때를 알게 하고 기다릴 줄도 알게 해 준다. 무엇을 행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고 참는 것도 때로는 용기가 될 수도 있다. 소녀와 단은 전설의 섬 탐험대 활동을 통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으로서면모를 수시로 보여주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친구로 소녀와 단을 에 두게 된 것을 마음속으로 무척 자랑스러워했으며 멋진 아이들이라고 여겼다.


대청마루는 한동안 시끌벅적하더니 가운데 앉은 어른 한 분이 크게 기침을 하니 좌중은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때 잠시 뜸을 들이다가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른이 입을 열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두려운 일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니 참으로 장하고 특하구나."라고 하시며

"마을에서는 이 아이들을 앞세워 당장 내일이라도 날이 밝으면 전설의 섬으로 가서 생존자의 체를 확인하라."라고 지시하였다.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생존자를 찾기 위해 전설의 섬에 갈 계획을 짰다. 나룻배는 세 척으로 구성하여 선두에는 탐험대 아이들이 타고, 나머지 두 척에는 마을 어른들과 장정들이 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무기가 될만한 농기구도 싣고 생존자를 만나게 되면 건네줄 막걸리통도 한 통 실었다. 마을 사람들은 인원을 점검한 뒤 탐사선 세 척에 나눠 타고 출발하였다. 어른들이 탄 배에는 소녀의 외할아버지도 함께 탔다. 단이의 할머니께생존자를 확인하러 같이 가보자고 설득했으나 가슴이 떨려서 지 못하겠다면서 극구 사양하셨고, 며칠 사이 너무 놀라 몸져누웠다는 얘기도 들렸다.



수십 년간 굳게 닫혔던 신비의 섬은 울창한 수목과 각종 야생 동물과 식물의 서식지로 탈바꿈하여 옛날과는 완전히 다른 섬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아름다운 모래와 자갈 등 자연환경은 태고의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탐사선이 섬에 접근할수록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였다. 탐사선에 탄 사람들은 이국적인 남국의 정취 속으로 빠져들어 순식간에 모두 신비의 섬에 도취되는 듯하였다. 80세가 넘은 할아버지 몇 분을 빼고는 다들 처음 가보는 섬이었다. 아이들이 탄 배가 먼저 도착하여 얼마 전에 상륙했던 지점에 탐사선을 접안시켰다. 나머지 배들도 옆에 나란히 접안시킨 후 사람들은 준비한 장비를 챙겨 모두 하선하였다. 섬에 상륙한 뒤 아이들은 사람의 흔적이라고 여겨졌던 조개 무더기와 불을 피운 자리로 마을 사람들을 안내하였다. 어른들은 그곳으로 이동하여 조개껍데기와 그을음을 살펴보더니 다들 깜짝 놀라며 이건 며칠 전에 누군가가 있었던 흔적이라고 하며 쑥덕거리기도 했다. 이제 어른들은 탐험대 아이들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것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단이와 소녀가 앞장서서 가는 오솔길을 따라 살금살금 이동하여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푸른 바다에 점점이 보석처럼 빛나는 섬들이 태양에 반사되어 은빛 바다 를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만세와 환호를 외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멈칫했다. 순간 아름다운 절경에 도취되어 자신들이 섬에 온 목적을 잊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괴생명체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되었다. 섬에 상륙한 사람들은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고갯마루에서 탐험대 아이들은 동굴이 있는 곳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며 바다에서 조업할 때 동굴을 본 적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소녀의 외할아버지께서 물었다.

"저 동굴에 짐승 같은 것이 있는 걸 봤다고?"

"무서워서 동굴 안은 못 봤어요."

"저 동굴 에서 나와 짐승 같은 게 산마루 쪽으로 올라왔어요."라고 아이들은 직접 본 대로 얘기했다. 그러자

"그럼 이 지점에서부터 조심해야겠구나."라고 하시며 소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긴장된 표정으로 주의를 당부했다. 러시면서

"만일 저 동굴 속의 생명체가 실종된 당사자라면 내가 가서 확인을 하는 게 좋겠구나."라고 하셨다. 실종자인 단이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소녀의 외할아버지와 또 다른 마을 노인 한 분뿐이었다. 괴생명체의 정체를 살펴보기 위해 동굴 입구까지는 할아버지 두 분과 장골 두 사람 도합 네 명만 내려가기로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옛날 막걸리통을 쌓아놓은 곳 쪽에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고갯마루를 넘어 내려가니 언덕 아래쪽에 옛날 막걸리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자신들이 해신제를 지낼 때 바다에 떠내려 보낸 그 막걸리통들이 여기 언덕 아래에 옮겨져 는 엄연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막걸리통이 쌓인 곳을 지나 동굴 가까이에 내려가기로 했던 네 사람만 조심스럽게 동굴 쪽으로 접근했다. 생존자가 흥분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다들 한 마음이 되어 조심하였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젊은 장골들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고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거진 수풀 속에서 몸을 낮추고 동굴 입구를 지켜보던 선발대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누군가 동굴 입구에서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외부인들의 침입을 감지했는지 괴생명체는 고함을 치며 가슴을 두 주먹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꼭 화가 난 오랑우탄이나 침팬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동굴에서는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들은 해안가를 쩌렁쩌렁 울렸으며 어부들이 조업 중에 들었다는 괴성과 유사하였다. 막걸리통 쪽에서 대기하던 사람들도 고개를 빼고 동굴 쪽으로 시선이 한순간에 고정되었다. 아이들이 표현한 대로 그 소리는 섬의 절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메아리와 어우러져 정말 짐승이 포효하는 듯하였다. 잠시 뒤 그는 기어 나오는 듯하다가 두 발로 벌떡 일어섰다. 동굴 근처에서 직접 목격한 선발대는 그가 두 발로 섰을 때 분명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였다.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 털이 덥수룩하게 뒤덮여 있었지만 사람의 형색이 분명했다. 이제 그가 사고 해역에서 실종된 그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소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단짝 친구 이름을 불렀다.

"은로야! 은로야!"하고 단이 할아버지 이름을 고함치듯이 불렀다. 동굴에서 나온 사람은 고함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다시 바다를 향해 괴성을 지르고 두 주먹으로 가슴을 거칠게 두드렸다. 분노의 표시였을까. 말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어쨌든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이 심하게 상했다는 몸짓이 역력했다.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그 사람의 정체를 정확히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혼잣말로 내뱉었다. 그러자 선발대 청년들은 다 함께 이름을 불러보자고 했다.

이제는 선발대 네 명이 목청을 높여 합창으로 이름을 불렀다.

"목은로씨! 목은로씨!"

"목은로씨! 목은로씨!"

"은로야! 은로야!"하고 고함을 쳤다. 동굴까지 흘러간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목은로씨! 목은로씨!"

"은로야! 은로야!"하고 되돌아왔다.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동굴 앞에서 괴생명체는 선발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서서히 돌렸다. 그리고 소리의 정체를 찾기라도 할 양 막걸리통이 쌓여 있는 쪽으로 몇 발자국 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바람이 해안에서 산 위로 갑자기 불었다. 돌풍과 같은 세찬 바람에 탐험대 사람들의 모자가 날려가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동굴에서 나온 사람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더니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눈매와 오뚝 솟은 콧날이 드러났다. 얼굴에는 광대뼈도 선명하게 보이기도 했다. 수염만 덥수룩할 뿐 영락없이 사람의 얼굴이 분명한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소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울부짖듯이

"로야! 은로야!"라고 하며 친구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오솔길을 따라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막걸리통 옆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일어서며 도망을 치려고 했다. 장정들과 아이들이 모두 일어서니 열대여섯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서 있는 것을 보더니 그는 놀란 듯이 오솔길로 올라오던 걸음을 갑자기 멈추었다. 그러더니 다시 괴성을 지르다가 동굴 쪽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탐험대의 어린 조무래기들만 왔을 때는 분노에 차 쫓아왔었는데 많은 사람들과 장정들이 보이니 겁이 났거나 동굴을 지키려고 그러는지 그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동굴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동안 동굴 쪽을 지켜보던 탐사대는 일제히 철수하여 고갯마루로 올라갔다. 탐사대 사람들은 잠깐 구석진 곳에 모여서 노인을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를 의논해야 했다. 가까이서 지켜본 선발대 사람들은 그가 짐승이 아니고 사람임이 분명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친구의 이름을 부른 소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그가 늙었지만 바람에 얼굴이 드러났을 때 친구의 모습이었다고 하며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그가 자기 이름도 망각한 채 험한 세월을 모질게 살아왔다면서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리고 단의 손을 붙잡으며 너희 할아버지는 실종되었지만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바닷속에서 뭍으로 나와 생명을 구한 것 같다고 하며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해 주었다.



생존자, 당장 구조해야 할까?


탐사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를 당장 구조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두고 마을로 돌아가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단이는 눈물을 흘리며 지금 당장 자기 할아버지를 구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모두 당장 구조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이구동성으로 애걸하듯이 매달렸다. 어른들은 잠시 아이들을 두고 풀숲으로 들어가서 숙의를 하더니 돌아왔다. 소녀의 할아버지께서 말했다.

"그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바로 구조를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라고 하시며 지금 당장 구조하는 것은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우성을 치며

"단이 할아버지를 당장 구조해주세요."라고 하며 애걸하듯이 조르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아이들의 태도가 영 마뜩잖았으나 전설의 섬 탐사를 힘들게 해 온 아이들 편에서 보면 그렇게 엉뚱한 주장도 아니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다른 노인 한 분이 아이들을 조곤조곤 타일렀다.

"수십 년간 혼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구조를 하여 삶의 환경이 바뀌게 되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단다."라고 하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또 다른 장정들도

"소용돌이치는 바닷속에서 살아 돌아올 때 상처를 입어 기억이 없을 수도 있단다.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 마을을 찾지 않고 동굴 속에서 이제껏 살고 있었겠니?"라고 하며 마을 어른들의 결정을 따르자고 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어른들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손실을 본다는 뜻의 소탐대실을 염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을 구조하는 것이 당장 필요한 것 같아 보여도 어쩌면 무모한 구조활동이 노인의 생명에 더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이전에도 어른들이 마을을 위해 어떻게 역병을 관리하는지를 잘 지켜보아 왔다. 우리 속담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말도 떠올랐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길게 생각하며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잃을 수도 있고, 짧은 생각으로 서두르다 때로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는 순간순간 판단을 잘해야만 했다. 생존자의 구조에 대해 어른들은 조심스럽고 신중했으며, 아이들은 눈앞에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둘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수십 년 동안 혼자 사는데 길들여진 생존자가 갑자기 구조되어 환경이 바뀌는 것이 노인에게 좋은 일일까. 마을 어른들은 그 점을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당사자에게 직접 묻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구조하자고 조르며 억지를 부리는 까닭을 잘 알았으나 어른들은 생존자인 노인의 입장을 더 깊이 생각하였다. 우선 생존하고 있는 단이 할아버지의 육체적 심리적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오늘 탐사대가 사고 해역에서 실종된 사람이 생존해 있다는 것과 또 섬에 살아있는 그 사람이 단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확인한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러면서 오늘은 여기서 돌아가야 하니 장정들을 시켜 배에 실어둔 막걸리통이나 지고 오라고 했다. 잠시 후에 탐사대는 장정들이 지고 올라온 막걸리통을 동굴 입구에 가져다 두고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배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 모두 돌아왔다.



이제 전설의 섬은 신비의 섬, 무인도가 아니라 생존자가 존재하고 있는 섬이 되었다. 그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들을 반기지도 않았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기억 상실증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속세와 떨어져 지낸 탓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숲 속의 인간 랑우탄과 같은 자연인 그 자체였다. 자세히 보니 다리 한쪽이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바다에서 실종되었다가 뭍으로 나오는 도중에 머리를 부딪혔거나 큰 사고로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던 것 같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동굴 앞에 막걸리통과 먹거리를 두고 마을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사람들과 차단된 고독한 삶 속에서 지내다 보니 속세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색한 것 같았다. 바다를 불법적으로 점령했던 도굴꾼들의 음모와 노략질의 희생양이 된 건 아니었을까. 모든 걸 잃고 몸만 살아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은 가슴이 아팠다. 단은 속으로 피눈물이 나는 아픔을 혼자서 느끼는 것 같았다. 안타깝고 비참한 광경을 목도하며 소녀와 단은 신비의 섬이 친근한 섬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함께 떠올렸다. 그것이 마을로 돌아올 수 없는 단이 할아버지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 같았다.


탐사선은 전설의 섬을 뒤로하고 모래톱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생존자는 어쩔 수 없이 섬에 그대로 두고 가야만 했다. 소녀의 외할아버지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 망연자실한 마을 사람들도 워낙 비현실적이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어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소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떠나는 나룻배 위에서 섬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수십 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리고 있었던 것일까. 8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었다. 어린 시절 물장구를 치며 놀았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일까. 소녀와 단이를 바라보며 그 옛날 어린 시절 자장가에서 들었던 구름 너머 달 저편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라도 했던 것일.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섬에 남은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떤 도움이  수 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룻배는 물살을 헤치며 미끄러지듯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섬은 멀어지며 점점 작아져 가물가물해졌다. 전설의 섬에서 생존자의 정체는 확인했으나 아스라이 멀어져만 가는 신비의 섬은 모래톱 마을 사람들에게 어려운 숙제를 던지며 짙은 안갯속으로 묻히고 있었다.



글 속으로 들어가기》

글 속의 인물들을 떠올려보며 진정한 용기란 무엇이며, 용기는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서로 토의해 봅시다.

전설의 섬에서 발견된 생존자의 구조 시점과 관련하여 주장과 근거의 타당성을 생각하며 서로 토론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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