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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27. 2021

39화. 중학생이 되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그해 여름'을 건너 반년이 지나고 아이들은 모두 중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었고, 그냥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랄 뿐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성장하고 모두가 함께 키우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아이를 키우는 일로 힘에 부치고 귀찮아 지치게 된다면 결국 지는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도 제대로 뻗어나갈 수도 다. 아직 영글지 않고 보드라운 솜털 같은 아이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나 어른들에게 여유가 느껴지고 행복감이 우러나올 때 비로소 고 뻗고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하나의 마디를 만들고 또다시 단단한 마디 하나를 만들면서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해 다. 시골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매일매일 행복했고, 아이들이 뻗어나가도록 이끄는 일은 언제나 즐거움이 되었다.


그해 여름을 보내며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그렇게 단단한 마디 하나를 만들었다. 이제 그들은 또 다른 마디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코흘리개라 놀림을 받고 꼬맹이라고 얕잡아보젖내 나는 초등생을 지나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서울로 간 소녀도 중학생이 되었다. 그해 여름을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한 채 시간은 반년이나 흘러갔다. 모래톱 마을에서 단은 가끔 아이들의 근황을 알렸고 소녀도 간간이 서울 소식을 전하며 그리운 마음을 이어오고 있었다. 전설의 섬에서 뭍으로 나오지 못했던 단이 할아버지의 근황도 때때로 전해주었다. 소녀가 마을에서 서울로 돌아간 그해 여름의 끝자락에 전설의 섬에는 모래톱 마을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없던 움막 하나가 새로이 생겼다.



꿈속에서도 그리워할 모래톱 마을을 노인은 언제쯤 알아볼 수 있을까.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마을 사람들 모두는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생존한 노인은 그곳 전설의 섬에서 모래톱 마을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단이 할아버지와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솔길을 넘어 해산물을 고갯마루를 넘어오지 않아도 되도록 마을에서는 노인을 배려했다. 하지만 움막은 한동안 빈 채로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전 지난겨울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거센 한파가 십 수일이나 온 천지에 맹위를 떨쳤고 섬과 마을 사이 바다도 그 일부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위는 극심했다. 그런 혹한의 나날이 지나고 난 뒤 어느 날 소녀의 외할아버지께서 어장을 관리하러 바다에 나갔었다. 그때였다. 섬을 바라보다 양지바른 움막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단의 할아버지를 발견했다고 하였다. 그 광경은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드디어 단이 할아버지께로 전해지고 있다는 좋은 징조였을까. 단이 할아버지가 마을에서 마련해놓은 움막을 이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단이 할아버지는 동굴 생활에서 벗어나 매일매일 모래톱 마을 맞은편에서 움막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전설의 섬에 여전히 홀로 남아 있었으나 노인은 마을을 바라보며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고 밤이 되면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잠이 드는 것 같았다. 그는 떨어져 있었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혹한에 얼어붙은 빙하가 녹아내리듯이 노인의 닫혔던 마음은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참혹 동굴생활로 굳게 닫혔던 마음과 고독으로부터 해방되어 마침내 모래톱 마을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반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새봄을 맞이하면서는 사람들이 섬에 상륙하는 걸 노인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놀라지도 않았다. 그의 고독과 닫힌 마음은 그렇게 서서히 아주 느리게 속세의 사람들과 동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노인도 어린 시절 자장가에서나 들었던 구름 너머 무지개를 지나 달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고 있었을까.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가끔 노를 저어 섬 앞에 있는 가까운 바다로 나갔다. 노인이 보이는 곳에 나룻배를 띄워놓고 낚시도 하고 그물도 건져 올렸다.  노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둘이서 같이 물질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질 정도였다. 그들은 함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돌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낚싯줄에 고기가 낚이면 몸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두 노인은 같이 웃었다. 그물을 건져 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움막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과 물질을 하는 노인은 눈으로 가슴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모래톱 마을과 신비의 섬은 이제 서로가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관계로 변화를 꾀하는 듯했다. 모든 은 아이들이 차근차근 자라며 커 가듯이 자연스러웠고 순조롭게 흘러갔다. 노인은 그런 자연스럽고 섬세한 자극과 자극 속에서 망각이라는 두꺼운 껍질에 금 하나를 만들고 있었을까. 노인의 굳게 닫힌 마음과 기억 속에서 시작도 끝도 없는 조용한 파문이 일고 있었던 것일까. 노인이 기억을 회복하는 속도에 비례하여 이제 신비의 섬은 마을의 휴식처며 안식처로 거듭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조심스러웠고 지혜로웠으며, 무엇보다 앞일을 내다볼 줄 알았다. 역병이 퍼져 내려올 때도 그랬고, 아이들이 밤새 폭풍우 속에서 마을에 돌아오지 않을 때도 그랬으며,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을 훈계할 때도 그랬다. 동굴 속 노인을 서둘러 구조하지 않은 일이나 마을에 바로 모셔오지 않은 일도 그와 같은 맥락이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빤히 쳐다보며 배우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생각을 맘껏 펼치기도 하였다. 어쩌면 모래톱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자장가에서나 나오는 겹겹이 쌓인 구름을 지나 무지개 너머 달 저편의 아름다운 나라는 아닐까. 아름다운 상상이 현실이 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행복한 나라!


단이는 누구보다 기뻤다. 할아버지가 기억을 되찾아 갈수록 단은 그만큼 더 기뻤다.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그리운 마음을 담아 소녀에게 편지를 썼다. 모래톱 마을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단은 그에게 다가오는 기쁨의 무게만큼이나 소녀를 향한 애틋함도 그만큼 더 사무쳐갔다. 단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지옥 같은 동굴에서 빛을 보게 해 준 사람이 소녀라고 굳게 믿는 것 같았다. 단의 할아버지를 구한 사람이 '어떤 꿈'에서 잠깐 보였던 목선이 아름다운 가녀린 그 소녀라고 여겼다. 그해 여름을 떠올리며 애틋한 마음도 그리운 마음도 근근이 삭이며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고 있었다. 소녀와 단의 꿈과 우정은 여전히 진행형이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또 다른 도약도 준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며 진지한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되새겨보기도 했다.


중학생이 된 소녀는 서울 생활을 편지로 적었다. 전국의 역사지도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를 따라 직접 체험하며 걷고 또 걸었다. 얼마 전에는 경주에 내려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첨성대와 보문호수 주변을 걸었다고 했다. 소녀는 경주 야경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안압지 연못을 떠올리며 '달빛에 단의 얼굴이 비치는 것 같더라.'라고 예쁜 글씨로 단의 편지에 화답하기도 했다. 소녀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매우 드문 일인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에 대해 늘 안타까워했고 역사 이야기에도 여전히 관심이 많았다. 그런 역사의 현장인 비무장 지대(DMZ)와 독도의 자연환경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아빠와 함께 그곳을 방문한 사실도 전해주었다. 국토 분단의 실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임진각과 도라산 전망대 등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적었다. 비무장 지대는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의 무력 충돌을 막으려고 만든 지역으로 군사 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비무장 지대의 폭은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씩 총 4km이며, 길이는 248km이다.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 여러 야생 동식물의 서식처이고, 선사 시대 유적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 유적이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또한, 독도 근해 방문을 통해 독도는 독특한 지형과 경관을 지닌 화산섬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독도는 경사가 급하고 대부분 암석이지만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여 독도를 천연기념물 제336호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독도를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해왔다. 특히, 조선 숙종 때 부산 동래에 살았던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를 소개하고 있는 위인전을 찾아 읽어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모래톱 마을을 잊지 못하고 있는 소녀는 여름방학이 돌아오면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 내려가고 싶어 했다. 그때 내려가면 다시 은모래 빛 해변을 방문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즐거웠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거나 단이가 전해준 조개껍데기 목걸이는 잘 간직하고 있다는 둥 아련한 추억들을 소환하며 소녀와 단은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그해 여름으로의 시간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단이도 소녀에게 애틋한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내었다. 울적하고 힘든 날은 소녀와 나룻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던 갈대숲을 혼자서 나가보기도 한다고 했다. 쓸쓸한 밤에는 언제나 지난날 늘 함께 했 소녀를 떠올린다거나 소녀를 꿈속에서라도 만나기 위해 자주 긴 잠을 청한다는 둥 그리움에 사무친 절절한 사연을 적기도 했다.



소녀는 시골 마을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던 날을 회상해보았다. 서울로 떠나던 날 아침 단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단은 소녀가 없는 내일을 맞을 자신이 없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모습 떠올랐다. 소녀는 시골을 떠나던 날 아침 뱃머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단,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하며 단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단은 이를 악물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눈치챈 소녀는 단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도 했다.

"지내다가 힘들거나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지면 날 생각해. 그리고 편지를 해."라고 하며 살짝이 아이들 눈치 못 채게 애틋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내일 자고 일어나면 네가 없는 시골 마을이 두려워."

"혼자 떠나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 거야."

"나를 쓸쓸하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했던 널 언제나 기억할게."

"나도 우리가 함께 불렀던 노래 무지개 너머를 떠올리며 널 추억할게."

"그래, 무지개 너머 달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

"잘 있어."

"잘 가."라고 하며 나룻배가 떠나기 전에 소녀와 단은 진정한 우정을 서로 확인하였다.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었어도 어린 시절 몸소 체득한 도전 정신과 모험심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가 커지고 생각이 깊어진 아이들은 모래톱 마을과 신비의 섬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도 하며 섬에 자주 들락거렸다. 단이 할아버지는 가끔 소녀의 외할아버지와 함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처럼 낚시를 즐기기도 하였다. 한층 의젓해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안심이 되었다.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의 커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안심이 된다면 그 아이들은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다.'란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기적처럼'이란 말이 있으나 반드시 기적을 요란스럽게 꿈꿀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마을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충실한 생활로 또 다른 내일의 기적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글 속으로 들어가기》

성장소설 "그해 여름'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추구하는 삶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도 비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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