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기

출발

2022년 7월 19일 오전 11시 15분 인천 출발 프랑크푸르트행 대한항공 KE 905편. 나는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 스케줄 13시간 40분,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으로 기존보다 비행시간이 두 시간이나 늘었다. 영화를 세 편이나 보고 나서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좀체 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좌석 모니터 상에 표시된 비행항로는 아직도 유럽 상공을 비행 중이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제야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난리굿을 했던 일이 떠올라 실없이 웃었다.

이번 방문을 위해 캐리어를 풀세트로 구입했다. 독일로 이주하면서 내 전용 캐리어를 이미 딸이 가져갔고 앞으로 방문 기회가 잦아질 테니 이참에 제대로 예비하자 싶었다. -이런 경우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가 맞는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가 맞는지 모르겠다. - 24인치 수화물용 캐리어에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꽉 채웠더니 23kg 규정의 위탁 수화물은 35kg으로 10만 원의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10KG 규정의 기내 수화물은 12KG으로, 백팩 역시 책으로 꽉 채워졌고 딸의 결혼식 앨범과 액자 가방 무게 역시 족히 10KG은 될 터였다. 한국 아줌마 특유의 억척스러움이 작용했다 치더라도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싶게 채우고 또 채웠다. 특히 앨범이 문제였다. 휴대하고 탈 수 있을지도 보장할 수가 없는 데다 무게와 부피가 상당해 고민이었다. 무게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만약 내 것이었다면 고민 없이 포기했을 것이다. 비행 규정을 엄격히 따지자면 추가도 보통 추가가 아닌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온 건지 스스로도 의아할 지경이었다. (가족들에겐 비밀로 했지만 실제로 탑승 전 게이트 앞 대기의자에 앨범 가방을 놓고 왔다가 티켓 확인하고 돌아가서 찾아왔다)

4년 전 딸이 마인츠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도 독일 방문 경험이 있지만 그때와는 짐도 마음도 영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단순히 딸의 체류를 이용한 단순 여행이었다. 딸이 결혼을 함으로써 이번 방문은 친정엄마의 첫 방문이지 않은가. ‘바리바리’, 그야말로 이고 지고 들고.

생각해보면 내가 딸의 입장일 때 내 엄마가 그러고 다니는 것이 정말 싫었다. 짜증 냈었고, 부끄러웠고 촌스럽다고 투덜댔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집 앞 슈퍼에서 살 수 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들어먹지 않는 것을 궁상이라고 치부했다. 반반하고 보기 좋은 것에 비해 직접 농사지은 것들의 못생기고 거친 모양새가 엄마처럼 초라하고 궁색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의 값어치를 알고 나니 엄마는 이미 늙고 병들어 농사는커녕 더 이상 내 집에 올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내 엄마에게 세상없이 지랄 맞고 쌀쌀맞은 불친절한 딸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하다못해 핸드백에도 사위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를 40봉이나 넣어가는 중이다.

가방마다 공기 한 방울, 바늘 하나 꽂을 틈이 없어서 노트북을 넣다 빼기를 수없이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노트북 대신 노트를 챙겼다. 그것도 내가 가진 노트 중 가장 얇고 규격도 가장 작은 것으로 챙겼다. 내 노트북보다 딸이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더 챙기는 것이 딸이 기뻐하는 걸 알기에. 하여간 엄마라는 이름의 짐꾼들, 나도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는 입장이다. 엄마가 돼 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그런데 엄마들은 여전히 자기 딸이 자기 닮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심플하게 살자. 딸들아!

17일간의 독일 여행?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딸에게 가르치고 알려줘야 할 것들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살림, 특히 요리는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 대화방에 제가 한 음식을 올릴 때마다 신기하고 대견하게 보고 있다.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고 했던가. 나 역시 낯선 곳 일본에서 신혼을 보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림을 하고 요리를 배웠다. 아니 스스로 터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내가 먹었던 것에 대한 기억뿐, 그 미각과 후각에 대한 감각을 끝없이 소환하며 하나씩 터득했다.

딸은 인터넷이라는 제법 실력 있는 선생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에 비해 내 선생은 과거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고 감으로 의존했고 실패를 선생으로 두었었다.

우리 집 딸들이 내 요리보다 ‘백 선생’ 요리를 더 쉽게 따라 하는 걸 보면 앞으로 백 선생의 요리가 집집마다 보편화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 곧 프랑크푸르트. 40분 후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을 들으며 17일간의 첫 기록을 마친다. 현지시각 22년 7월 19일 화요일 17시 40분 프랑크푸르트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