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Sep 13. 2022
독일의 음식?
외국에 나가면 더러 입에 맞지 않거나 독특한 향에 거부감이 생기는 음식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도 그 나라 음식 문화이니 그러려니 하고 기꺼이 먹겠는데 도무지 짠 음식은 못 먹겠다. 내겐 독일 음식이 그렇다.
18년도에 이미 경험한 터라 이번 여행에는 나름대로 단단히 각오하고 왔고 주로 딸의 집에 묵을 예정이니 밖에서 사 먹는 것을 자제하면 되려니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거의 매일 외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 간도 문제지만 독일 식당에서 또 한 가지 곤란한 게 있다. 1인 1 메뉴 1 음료 문화가 그것이다.
식당에 가면 우선 식전 음료를 주문해야 한다. 커피, 음료수, 와인, 맥주 등 종류는 무수하다. 물론 식전 음료를 주문하지 않는 것이 법에 저촉되거나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일종의 매너 같은 것이고 만약 식전 음료를 시키지 않았다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 숨이 넘어갈 수도 있다.
자리를 안내받으면 종업원은 당연히 식전 음료부터 주문받는다. 주문한 음료가 서빙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와서 식사 주문을 받는다. 우리의 경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음료와 식사 주문을 같이 했다. 그렇다 해도 두 가지가 같이 나오는 경우는 단언컨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음료는 신속하게 서빙되는 편이지만 식사는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식사가 끝났다고 손님 맘대로 계산대로 갈 수도 없다. 이건 뭐 끝없이 종업원과 아이컨텍을 시도해야 한다.
음료야 그렇다 치고 1인 1 메뉴는 우리처럼 식사량이 많지 않은 사람에겐 참 곤란한 일이다. 그것 역시 법에 어긋나지 않겠지만 그런 경우 정말 괜찮냐는 의심 어린 눈총과 거듭해서 메뉴 확인을 추궁받게 된다. 내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음식 버리는 거에 민감한 나로선 차라리 양을 줄여주거나 짜지 않게 해줬으면 하는 하나마나한 바람이 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남겨진 음식에 죄책감이 든다. 독일은 남은 음식을 포장해주는 게 당연하고 실제로도 음식을 남겼을 때 포장을 원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여행 중에 남은 음식을 싸들고 다니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맥주 양조장에서 둘이서 맥주 두 잔과 학세 하나를 시켰다가 몇 번씩 확인하고 정말 괜찮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주문을 완료했던 경험이 있다. 양도 양이지만 별로 선호하는 메뉴가 아니라서 맥주는 거뜬히 비웠지만 학세는 당연히 남기고 나왔던 경험이 있다.
이번 여행에도 그렇다 무슨 음식을 시키던지 우리에겐 양이 많았고 결국 남기고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합리적이고 검소한 독일인들이 왜 그런 건?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독일인들 기준으로는 양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들 문화이니 이방인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 일이었다.
독일인들도 인정하는바 독일은 음식이 그리 다양하지도 못하고 독일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할 만한 대표음식이 별로 없다. 그건 어쩌면 워낙에 땅덩어리가 넓고 지역별로 문화나 기후, 환경 차이로 이해 단일화하기 힘든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한 국경이 여러 나라와 접해있다 보니 다른 나라의 음식을 흡수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그들이 즐겨먹는 피자와 파스타 역시 대표 메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김치 한 가지를 놓고 봐도 쇳덩어리 빼고 다 김치로 담글 수 있다고 할 만큼 다채로운 나라의 여행자가 받아들이기에 독일 하면 떠오르는 게 소시지와 맥주 감자 외에 슈니첼과 학세 정도라는 것은 좀 아쉽다. 혹자는 독일 전역을 두루 다녀보지 못했으면 단순 비교하는 내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다양성과는 별개로 우리 입맛에는 내내 짜게 조리된 음식을 앞에 두고 나와 지성은 그런 농담을 주고받는다.
“맥주를 많이 마시게 하기 위해 음식을 짜게 하는 게 아닐까?”
어디까지나 음식의 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내게 독일 음식을 하는 조리사들은 전부 맥주 양조장이나 소금장수 자식들이 아닐까 하는 지극히 편파적이고 합리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 태국, 베트남, 터키 음식점. 독일에 있는 동안 그나마 먹을 만했던 외식 메뉴들은 독일 전통음식점이 아닌 전부 외국 식당이었다. 그곳들도 내국인들 입맛에 맞게 전부 짠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먹을 만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독일 여행하는 프로를 보게 됐는데 한국의 방송에 꽤 자주 출연하는 독일인 방송인이 음식 편에서 만큼은 자신 없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독일인들이 아주 사랑하는 간편식 커리부어스트는 2차 대전과 관계 깊은 음식이다. 종전 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데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값싸고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의 필요성에 고안해낸 것이다. 가난한 이주 노동자들이 독일에 정착해 싸구려 소시지에 그들이 좋아하는 커리 소스를 부어먹는 것으로 지금도 독일인들이 간단한 안주로 즐기고 있다.
애나 어른이나 프레첼을 즐겨먹지만 우리 학생들이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사 먹는 컵볶이처럼 이곳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고 즐겨하는 음식으로 되너를 꼽을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터키 이민자들의 음식이다. 이들의 되너 사랑이 어느 정도냐면 베를린에 있는 되너 가게가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수보다 많다고 하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리가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꽤 유명한 되너 가게에 갔었다. 양도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여 잔뜩 기대했다. 한국인들도 좋아한다니까 좀 믿어도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역시 짜서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마크가 왜 자꾸 자기 나라 음식점 대신 외국 음식점으로 날 안내하는지, 자기 나라 음식 대신 왜 그토록 한식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독일에 있는 동안 내내 딸 곁에서 한국음식점을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그런 독일에 정말 다양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빵이다. 종류와 다양성에 있어서 빵만큼은 세계 제일을 자랑하지 않을까 싶다. 3000종류가 넘는 빵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하니 독일은 과연 빵의 나라다.
그걸 알고 나니 우리의 골목마다 있었던 독일빵집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내게 독일은 빵의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