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벌 떨리는 꿀벌 이야기
나는 그동안 낯선 곳의 문화나 환경에 비교적 편견이나 거부감이 덜한 편이고 쉽게 적응하는, 그야말로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믿었다. 독일에 와서 꽤 흥미롭고 놀라운 일은 근사한 건축물이나 멋진 풍경뿐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동하는 것이다. 그중의 하나 꿀벌에 관한 이야기다.
그야말로 벌벌 떨리는 꿀벌 이야기인데 나는 이 당연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독일인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꿀벌에 대해 처음 인지하고 놀란 것은 독일에 도착한 다음날 방문했던 반짝 시장에서였다. 서너 시간 반짝 열렸다 철수하는 도시의 반짝 시장. 몇 안 되는 매장을 다 돌아본 후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빵집이었다. 독일의 빵이라면 크고 딱딱하고 달지 않은 건강한 맛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그런 밋밋하지만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서 빵집에 가면 그런 빵은 드물어 사기 힘들다. 주로 이용하는 동네 빵집이나 한창 유행하고 있는 베이커리 카페 같은 곳에 가도 디저트 류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먹게 되는 달고 멋을 잔뜩 부린 수많은 빵들은 독일에서 말하는 빵이 아니라 디저트 개념이란 것을 독일에 와서 알게 됐다. 그 매장은 그러니까 빵집이라고 나왔지만 빵보다는 디저트를 더 많이 준비해 나와서 눈길을 끌었다.
산딸기를 잔뜩 얹어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를 들여다보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빨간 산딸기만큼 노란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본능이 바로 알아챘다. 그건 토핑으로 올려진 것이 아닌 진짜 살아 움직이는 꿀벌이었다. 꿀벌 수십 마리가 태연하게 꿀이라도 빨고 있는 것처럼 케이크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다른 것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가 바로 옆에 벌통이라도 가져다 놓은 것처럼 온통 꿀벌 천지였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그 누구도 그토록 수많은 벌에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나 혼자만 뒷걸음치며 놀랐을 뿐이다. 심지어 지성까지도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약 한국이라면? 그 장면은 충격받은 만큼 꽤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끝없이 의문을 남기고 생각을 하게 했다.
식당에 가서 앉으면 종업원이 서빙해주는 음식이나 음료에는 서비스처럼 벌이 따라와 앉았다. 물론 내게만 그런 것이 아닌데 나만 신경이 쓰이는 건지 다들 태연하기만 하다. 피하지도 않고 매장에 클레임을 거는 일도 없다. 쫓아 내거나 무언가로 내리쳐 잡으려는 시늉조차 찾아볼 수 없다. 영 신경 쓰이면 가볍게 손으로 건드려 쫓는 시늉을 할 뿐이다. 그래 봤자 벌은 보란 듯이 다시 나타난다.
지성이 말했다.
“여기선 꿀벌을 해치면 정말 벌 받아요. 대중교통 무임승차는 60유로지만 벌을 해치면 최대 5천 유로까지 벌금을 물죠.”
물론 벌 한 마리에 5천 유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벌금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도 놀라웠다.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실종된다는 소식을 알고 있지만 그에 따른 심각성을 인지하고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독일인들이 먼저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됐다. 시민들은 이미 한 마리의 벌도 해치지 않고 상생하는 것을 선택한 듯 내 음식을 탐하는 벌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느 공원에서는 통나무 토막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을 봤다. 벌들의 월동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이라 했다. 일반 가정에서도 자발적으로 그런 월동 용구 Bienenhotel 즉 벌 호텔을 장만해 정원이나 발코니에 놓을 수 있도록 마트에서 구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일반 가정집 발코니에 그 많은 화분이 미관상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사연을 듣고 보니 꿀벌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볼 때마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4층인 지성의 집에도 가끔 꿀벌이 날아왔다. 지성과 마크는 그럴 때마다 모른척하거나 창문을 열어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단 한 마리의 꿀벌이라도 살리겠다는 의지는 겁쟁이였던 지성까지 바꿔놓은 듯했다. 꿀벌은커녕 파리 한 마리도 질색했던 딸이었으니 그런 경우야 말로 격세지감이 아닐까 싶었다.
밖에서 뭘 먹을 때마다 벌이 먼저 와서 탐색하듯 내 음식 위에 앉았다가 날아갔다. 내가 마실 음료에도 언제나 어김없이 꿀벌 한두 마리가 발을 담갔다가 나왔다. 나도 어느새 독일인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걸 입으로 가져가 마신다.
오늘도 그랬다. 리즐링 와인 한잔을 주문하자 꿀벌 한 마리가 나보다 먼저 발을 담그고 갔다. 어쩐지 내가 오늘 꿀벌 한 마리를 살리고 지구에 이로운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궁금증 많은 꿀벌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