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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을 생각함

걸림돌 Stolpersteine

걸리지 않는 걸림돌 우리가 몰랐던 Stolpersteine 슈톨퍼슈타인

시내 관광을 위해 나간 길이었다. 딸과 손을 잡고 걷다가 어느 건물 앞에 걸음을 멈췄다. 입구에 그들이 나비 나무라고 부르는 부들레아가 양쪽으로 서있어 눈에 띄는 집이었다. 꽃만 보면 좋아라 하는 나를 위해 그런 줄 알았다. 딸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글씨가 새겨진 보도블록 모양의 동판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색다른 보도블록?’ 영문을 몰라하는 내게 딸이 설명해 줬다.

그것은 걸림돌이라고 부르는 슈톨퍼슈타인 Stolpersteine이다. 1992년 한 독일인 예술가가 시작한 프로젝트로 그 건물에 살았던 유대인,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이름과 생몰연대를 새겨 넣은 것이다. 2019년 기준 75,000개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깔려있고 120유로 정도의 제작비용은 개인들의 기부금으로 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제작자 귄터 데밍은 그것을 Stolpersteine, 걸림돌이라고 명명했다. 그 걸림돌은 발보다 마음에 걸릴 것이다. 애초의 제작 의도 또한 그것이 아니었을까?

인도에 10*10 크기의 작은 보도블록처럼 깔려있기에 발에 걸려 넘어질 일이야 없겠지만 눈에 띈다면 분명 마음에 걸릴 것이다. 그 프로젝트를 대하는 가해자의 나라 국민들은 그것이 분명 불편한 일일 것임에도 많은 사람이 지지했다. 반대 의견도 또한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 의견의 상당수는 희생자 이름을 기리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희생자의 이름을 무심결에라도 밟고 지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자꾸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멈춰서 살펴보게 되었다. 한 희생자의 걸림돌에 홀로코스트로 ‘살해당했다’고 적혀 있었다. ‘사망’ 혹은 ‘희생’당했다는 표현보다 가해자에게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표현이다.

독일인들은 과거의 일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죄하고 있다. 후손들은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도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화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전범국 독일의 사죄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 걸림돌 역시 2006년부터 독일의 특허청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역사에 사죄는커녕 끝없이 부정하고 조롱하는 가해국 일본으로 인해 현재도 계속 고통받고 있다. 일본이 독일처럼 인정하고 사죄하길 바란다. 그것은 일본의 후손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다.

수많은 걸림돌을 마주쳤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라이부르크에서 마주쳤던 것이다. 그 건물은 유대인뿐 아니라 나치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집단수용소에 보내기 위해 조직된 초법적 무소불위의 조직 게슈타포 본부였다.

그 건물에서 체포당하고 고문당한 희생자 다섯 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하면서 악마적 속성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업무 수행에 있어 사고력의 결여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했다. 재판 과정 중의 아이히만의 그 아무런 죄책감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표정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한 건물의 벽에는 설명판이 붙어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8년 10월 23일에 폭탄이 떨어져 폭격당한 건물이었다. 그로 인해 13명이 사망했고 부상자가 36명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건물을 재건해 지금도 주거용으로 사용 중이다. 마침 지성이 집을 얻기 위해 방문했던 건물이기도 했다.

거리의 걸림돌과 마찬가지로 독일인들은 왜 자신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행위를 계속하는 것일까. 그 설명판에는 ‘기억의 지속을 위해 헌정합니다’라고 적여 있었다. 그 진심이 느껴져서인지 건물 앞에서 뜨거운 무엇이 심장에 잠시 머물다 가는 느낌이었다.

여행이 즐겁기만 할까. 무겁고 우울한 기분이 잠깐씩 들었지만 독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날들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걸림돌이 자꾸 눈에 걸렸다. 그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는 내 휴대폰 갤러리에서 밀려나 사라지게 될 사진들이지만 자꾸 집착하게 되는 이유를 나 자신도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제작자의 프로젝트는 충분히 의미 있고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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