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지막 작품
마인츠의 성 슈테판 성당을 찾아갔다.
또 성당? 이제 지칠 만도 한데? 그렇지만 그곳은 다른다. 바로 샤갈의 마지막 작품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아니라면 내가 어찌 그 유명한 작품을 직관할 수 있겠는가.
중부 라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성당이자 마인츠 돔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 슈테판 성당은 990년 빌기스Willigis 대주교에 의해 세워진 성당이다. 수도원으로 쓰이기도 했던 원래의 성당은 1267년부터 1340년까지 이어진 개보수 작업에 의해 현재의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1462년부터 1499년 사이에 성당에 바로크 양식의 남쪽 부분이 덧붙여졌으나 1857년 성당 근처의 폭약 탑이 폭파하며 그 부분이 손상되었다. 2차 대전 당시 성당의 서쪽 탑이 무너지며 서쪽 성가대석과 신랑(신도석)까지 큰 피해를 입었으나 현재는 탑만 원래대로 보수 공사를 하고 아치형 천장이었던 서쪽 성가대와 신랑은 평평한 나무 천장으로 보수했다.
Marc Chagall은 1978년부터 1985년까지 동쪽 성가대와 성당의 날개 부분 총 9개의 창을 제작했다. 샤갈 이후 샤갈이 속해 있던 Glass Studio Simon의 대표였던 찰스 마르크(Charles Marq)가 나머지 19개를 추가했다. 2차 대전 때 폭파되었다가 재건되었는데 그 흔적도 더러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성당에서 흔히 접해 본 스테인드글라스와 확연히 다른 느낌, 빠져들 듯한 푸른색의 오묘함, 그뿐 아니라 그동안 느꼈던 교회(성당)의 웅장함에 비해 다소 절제미가 있어 보여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곳이다. 또한 이곳은 스토리가 아주 많았다.
유대인이던 샤갈의 독일 내 유일한 작품이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이듯 샤갈은 작업이 많이 망설여졌을 것이다. 결국 독일의 유대인 박해로 독일인들과 유대인들 사이 화해와 화합의 의미로 이루어진 대업이 아니었을까. 또한 이 작업은 샤갈의 사망(1985)까지 작업했던 최후의 작업이었기에 더 의미 있는 곳이다. 지금껏 보아 온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해 단조롭게 느껴지는 푸른색은 샤갈의 고뇌가 아니었을까.
스테인드글라스뿐 아니라 중정을 돌면서 맞은편으로 바라보이는 회랑이 인상적이다. 회랑 기둥 사이 상단의 문양이 전부 다른 것도 특이하고 볼만했다. 회랑의 천정 아치마다 알록달록한 문장들 또한 인상 깊다. 꼭 눈여겨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단언컨대 그동안 독일의 몇몇 성당을 돌아보면서 점점 식상해져 가는 중에 만난 뜻밖의 호기심 천국이었다. 규모나 외관에서부터 제압당하는 느낌이 들만큼 위풍당당 찬란함에 처음엔 그저 감동스러웠지만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던 차에 딱 적당히 웅장하고 적당히 신성한 느낌을 주는 곳이라 여겨졌다. 신성시해야 하는 곳에 신성보다 예술의 경지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먼저 느껴졌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대성당을 지으면서 작업자들에게는 과연 신성이란 것이 있었을까?
일부 성직자들과 권력자들의 위세와 탐욕의 결정체가 성당의 아니었을까. 당시의 수준으로 보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기술과 예술의 경지에 오히려 이런 삐딱한 반론을 하고 있는 나야말로 어쩌면 신성모독의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비록 신자가 아닌데도 그 어느 웅장했던 곳보다 이곳에서 조용히 무릎 굻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