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와 박물관
카셀에서 그림형제와 놀다
카셀에서 두 번째 날 헤센 주립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보러 갔다. 아이패드를 이용한 AR(증강현실) 체험이었는데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컴맹이라곤 하지만 IT 첨단기술의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프로그램을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을까 싶을 만큼 아리송한 상황이었다. 지성인 어땠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지만 지성 역시 약간 어리둥절한 분위기였다. 어차피 예술이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니 누가 뭐랄 것인가. 그러니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도큐멘타 전시 작품보다 박물관 전시물들이 더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마침 전시장이 헤센 주립박물관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뜻하지 않았던 관람에 주객전도, 거기다 그림형제 기념관도 관람하게 된 뜻깊은 날이었다.
박물관 앞에 그림형제의 동상이 있어 의아했는데 그림형제가 바로 카셀 태생이었다.
그림형제와 관련해 독일 곳곳에 기념관과 기념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18년도 여행 때 마부르크에선 그림형제가 살았던 집과 여기저기 관련 조형물들을 본 기억이 있다. 그만큼 그림 형제가 독일인들에게 영향력이 큰 중요 인물이고 당시 그림형제가 민요와 민담을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다녔으므로 곳곳에 그들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이 있는 것이리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형제의 그림동화의 원제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로 70개 언어로 번역 보급되었다. 그 정도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작가이니 이들에게 그림형제는 자부심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뿐 아니라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독일인에게 있어 문학가로서 뿐 아니라 언어학자로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들이 바로 독일어 사전을 편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념관은 알파벳 이니셜을 따라 관람하게 동선이 짜여 있었고 언어학자로서 그들의 업적을 나타내기 위한 전시물들이 많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독일어 사전 속 어휘 카드를 벽면을 장식한 것이나, 최초로 출간하여 세계문화유산이 된 그림책,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 책도 찾을 수 있어 반가웠다,
유난히 사이가 돈독했던 그림형제, 평생을 독신으로 산 야콥이지만 그들은 빌헬름이 결혼을 해서도 한집에 살만큼 평생을 함께한 든든한 동료였다. 같은 듯을 가지고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곁에 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들이 이뤄낸 업적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동료의식 덕이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그들은 형제가 아닌가.
지성과 나는 독특하고 재밌는 전시물에 어린이들처럼 마냥 신나서 전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과자 모형으로 장식한 과자집에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과자를 뜯어먹는 포즈를 취하고, 기둥에 귀를 기울이면 속닥거리는 조형물에 재밌어했다.
그림형제가 최초로 발간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작품 앞에 서니 왠지 모를 신비와 경건함마저 올라왔다. 그 기를 받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했다.
지성은 2유로를 주고 0유로 기념지폐를 뽑아 내게 주었다. 지폐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지만 그림벨트 카셀이라고 적혀있어 기념하기엔 특별한 기념품이었다.
박물관 뒤쪽으로 가면 야외에서 간단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우린 거기서 잠깐 쉬기로 했다. 2박 3일 동안 하루만 보 이상씩 걸으며 미술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으니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좀 쉬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생각처럼 그 시간은 정말 여유롭고 충만했다. 햇살이 뜨거웠지만 우리도 일반의 독일인들처럼 해를 만끽했다.
아기 때부터 유난히 이야기와 책을 좋아했던 지성에게 그림 형제는 특별한 인물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흔적을 확인하는 일은 그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만큼이나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나 역시 그림형제의 흔적을 직접 보게 된 것이 어쩌면 도큐멘터 관람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