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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에서 만난 소녀상

카셀에서 만난 소녀상

카셀에서의 2박 3일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얼마 전 카셀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방문이었다.

우리의 카셀 도큐멘타 행을 모르고 있었던 남편은 나에게 카셀대에 다녀올 수 있는지 물었다. 자신도 그곳 소녀상 건립에 후원을 했는데 마침 같은 헤센 주이니 다녀오면 좋겠다고 했다. 베를린 소녀상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온 가족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랄 때가 더러 있다. 이때가 그런 경우다.

아침부터 기온이 매우 높아 등줄기로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막 오픈하는 꽃집에 들러 노란 장미 한 다발을 샀다. 트램을 타고 카셀대로 향했다. 마침 도큐멘타 메인 홀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카셀대가 있었다.

정문에서 휴대폰 앱을 이용해 소녀상이 설치된 총학생회관으로 걷는 동안 알게 되었다. 카셀대 캠퍼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 부지였다. 오래된 건물이다 싶은 몇몇 건물 앞에 그곳이 군수공장이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캠퍼스 곳곳에 기념 전시물이 있었다.

소녀상까지 가는 길의 이름 역시 ‘기억의 길’이다.

왼편으로 화물열차 칸을 세워놓은 듯 한 구조물과 막 내리는 세 명의 사람을 형상화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이라기보다 몸은 없고 사람의 형상에 옷만 걸친 상태였다. 옆에는 먼저 내린 사람들이 벗어놓은 듯 한 옷가지 형상이 놓여 있었다.

작품의 제목은 비탈길(Die Rampe).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을 형상화했을 것이다. 존엄과 영혼을 이미 박탈당한 그들에게 신체의 존재 유무가 가진 의미가 무슨 있었을까. 벗어놓은 의류는 이미 희생된 사람들이고 막 열차에서 내리려 발판을 디디고 내려오는 이들의 미래 역시 그럴 것이다.

드디어 만난 소녀상

총학생회관 앞, 상자텃밭 여러 개로 만들어진 캠퍼스 가든 앞에 소녀상이 있었다. 그곳이 학생회관인 줄 몰랐다면 왜 하필 그렇게 구석지고 외진 곳에 설치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학생회관은 그곳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소녀상을 추진한 학생회장은 그 점을 참고했을 것이다. 특히 그곳까지 가는 동안 ‘기억의 길’을 걸으며 학생들은 전쟁과 식민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맨발에 함부로 잘린 머리칼, 꼭 쥔 두 주먹, 왼쪽 어깨에 앉은 새 한 마리, 그리고 바닥에 할머니의 모습과 흰나비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소녀의 모습보다 할머니의 모습에 더 애잔함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평생을 그림자처럼 존재를 부정당하고 스스로 숨어 살아야 했던, 드러낼 수 없었던 할머니들의 영혼이 마침내 나비의 영혼으로 자유로워지기를 손 모으고 속으로 빌었다.

돌아 나오면서 살펴본 캠퍼스 가든에는 호박, 양배추, 토마토, 배추 등 여러 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이 상추였다. 독일의 마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추는 내가 올해 심은 것과 같은 꽃상추였다. 마치 한국의 텃밭을 옮겨놓은 듯했다. 강제로 글려간 소녀들은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을까. 텃밭의 상추 몇 포기 뽑아와 우물물 길어 훌훌 씻어 된장 올려 크게 상추쌈을 싸 먹던 고향의 부모님 생각이 얼마나 사무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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