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기 공룡이 있네?
Schauinsland
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Oct 9. 2022
지성은 여전히 그날의 일정을 말해주지 않았다. 내 기대감을 증폭시키기 위함이리라.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얼마쯤 달리다 보니 전날 본 풍경의 일부가 다시 펼쳐진다. 도착해보니 케이블카 승강장이다. 전날 시간상 케이블카를 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정상에서 봤으니 됐다는 내 말보다. 내가 숲에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것을 더 극대화시켜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면 허공 위에서 바라보는데도 내가 마치 숲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거든. 엄마에게도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
정말 그랬다. 족히 50미터는 훌쩍 넘을 만큼 키 크고 우람한 전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내려다보는 동안 내가 진짜 그 숲을 온전히 만끽하는 기분이었다.
“저기서 목이 긴 초식공룡이 나타난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것 같아. 아, 저기 공룡이 있네? 그 정도로 쉽게 인정할 것 같아.”
지성의 말처럼 정말 공룡 몇 마리 정도 긴 목을 뽑고 나뭇잎을 뜯고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숲은 깊고 또한 울창했다.
그런 숲에서 아이들을 잃는다면? 그림 형제 동화의 배경이 된 곳인 만큼 ‘헨젤과 그레텔’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곳은 모두가 올 수 있어야 한다.”
해발 1284m. 이 산에 올라본 시 의회는 그런 판단을 했다. 1930년 첫 승객을 태우고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했다. 2차 대전 기간에는 밤에만 운행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는데 그때 파괴된 병원의 어린이 환자들을 이송하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케이블카는 20분 가까이 천천히 올랐다. 처음의 판단처럼 빠른 속도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있고 모두가 숲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넉넉한 시간을 추구하는 것이리라. 오르내리는 동안 전날과는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헤밍웨이가 사랑한 숲과 독일에서 가장 높은 폭포가 있는 Triberg 트리베르그 숲에도 들렀다. 뻐꾸기시계마을이 지근거리라 그곳에 들러 수없이 다양한 뻐꾸기시계를 감상도 했다.
검은 숲이라 일컬어지는 슈바르츠발트 지역은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뎀 베르크 주에 있는 숲과 산악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그 규모가 가로 60km 세로 200km 직사각형 모양의 국립공원이다. 이 지역 여행은 정말 특별한 여행이었다. 관광객스러움을 버릴 수 있는 여유로움과 쉼의 여행, 무언가를 보고, 알아야 할 조바심 내지는 욕구보다 고요한 충만감으로 온몸이 채워짐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마음 같아서는 배낭 하나 꾸려 석 달 열흘 슈바르츠발트 여기저기 마실 다니듯 유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의 그런 욕구를 찰떡같이 파악하고 있는 지성과 마크의 배려가 빛나는 여행이었다. 그런 의미로 여행은 여행 장소와 여행 자제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동행자와 함께 완성하는 것이다. 새로 가족이 된 지 채 1년이 안 된 외국인 장모가 어려울 만도 한데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늘 웃는 모습의 착한 마크와 나의 첫 열매 첫사랑 지성과의 동행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