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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숲과 티티제 호수

Schwarzwald슈바르츠 발트의 Titisee호수

Schwarzwald슈바르츠발트의 Titisee 티티제 호수

룩셈부르크에서 아침을 먹고 프랑스 알자스 지방 스트라스 부르크를 거쳐 지난밤 다시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 여행 책자에서 보고 단번에 빠져버렸던 프라이부르크는 Schwarzwald슈바르츠발트(검은 숲) 서쪽의 아름다운 도시이다. 원전 계획에 시민들이 저항 운동을 하면서 시민 환경운동의 발상지가 된 곳이고 환경 보호 운동과 지속 가능한 도시모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태도시, 환경수도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서 환경과 생태에 관심 많은 나로선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도시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길은 강원도의 한계령이나 대관령 굽잇길을 오르는 기분이 들게 했다. 도로 양쪽으로 빽빽한 숲을 보는 것만으로 벌써 기분이 좋아지고 기대감이 마구 상승기류를 타고 있었다. 여행지에 대해선 미리 언급 없이 깜짝쇼처럼 하는 여행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귀가 멍해질 만큼 고도를 오른 후 도착한 곳에 거짓말처럼 드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Titisee였다.

윤슬로 빛나는 그림 같은 호수. 아주 오래전 빙하로 만들어진 호수는 급수가 가능할 정도로 관리가 잘된다고 했다. 작은 유람선 두 척과 작은 보트가 여러 대 있었지만 모두 전기나 무동력으로만 운행이 가능하다. 호수 주변 세 곳의 캠핑장에는 캠핑카들이 즐비했다. 주차장에서 본 것처럼 이곳은 독일 뿐 아니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주변국 사람들에게도 휴양지 기능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호수 이외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곳을 관광지가 아니 휴양지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 아닐까. 지키고 보호하는 것에 진심인 독일인들.

호수 가장자리 투명하고 맑은 물속에 송어 떼가 한가롭게 유영하고 있다.

선착장에서 호수 반대편 언저리를 돌아오는 유람선에 탑승해 호수를 돌아본다. 호수 위에 작은 보트를 띄워놓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 가족 단위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얕은 물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치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사람들. 우리도 그림 속의 소재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든 느낌이었다.

지성이 특별히 송어요리를 주문해줬다. 물론 호수에서 건져 올린 것은 아니겠지만 티티제 호수와 송어요리는 아주 특별했다.

여행을 하다 보며 마냥 좋은 상태와 유쾌한 경험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예기치 않은 일과 마주치고 불쾌하거나 혹은 의도하지 않은 일에 말려들기도 한다. 그 지역 특산품인 체리를 이용한 케이크를 맛 보여주고 싶다는 지성이 이끄는 대로 카페에 도착했다. 이들의 1인 1 메뉴는 여기서도 여지없었다. 커피 세 잔과 케이크 두 조각을 시키자 거듭 확인 후 서빙을 해온다. 역시 포크가 달랑 두 개. 이미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직후라 케이크 두 조각도 사실 무리였다.

지성의 눈길이 한 곳을 향하더니 미세하게 찡그린다. 독일어를 모르지만 그림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개 출입 금지, 마스크 착용한 사람 입장 불가. 이번 여행에서나 예전 여행에서 익히 알고 있듯 독일 어디를 가나 자연스럽게 동행하는 반려견, 그건 이미 이들의 문화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모두가 그걸 좋아하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니 좀 놀랍지만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이 팬데믹 시대에 마스크 착용에 반대의견을 그렇게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 좀 놀랍고 의아했다. 코로나 백신 반대론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당황스럽고 그걸 모르고 들어온 게 살짝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런 경우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수용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셋이 아무도 그 안내 문구를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안내문구를 붙여놓는 것으로 끝날 게 아니라 안내를 했어야 옳았다. 그랬다면 그곳을 이용할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지성과 마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굳이 동물을 혐오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영업장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한국에서 No Kids Zone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의미다.

티티제 호수에 오를 때와 반대로 차를 몰았다. 점점 높아진다고 느끼며 굽잇길을 올라 도착한 Schauinsland 샤우인스란트, 그곳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자연에 둔다.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바로 인간의 편의에 맞춰 득달같이 관여해 부수고, 세우고, 정비를 해대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유지된 상태. 인간이 조금 불편을 감수하는 것.

아쉽게 케이블카 시간을 놓쳤다. 하산만 가능, 다시 올라오면 이미 운행시간이 종료되기에 왕복은 불가하단다.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케이블카에서의 풍경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지성을 달래줘야 했다.

산길을 조금 걸어 오르자 산 정상에 전망대가 있었다. 입장이 금지돼 아쉬웠지만 그것만 빼면 최고의 장소였다. 나무벤치 몇 개가 편의 시절의 전부. 철책도, 그 흔한 나무 데크조차 없이 나무와 돌과 흙이 전부 인, 그래서 더 편안하고 정겨웠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땅을 바라보는 기분, 그중 알프스 산맥도 보인다는데 어느 산맥이 알프스인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 정상의 벤치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만끽하기 최고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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