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Sep 28. 2022
수도원 와이너리
수도원 와이너리 클로스터 에버바흐 Kloster Eberbach로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뜻밖에도 초면의 페이스북내 커뮤니티의 회원이었다.
그녀는 내가 비스바덴의 딸에게 와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나들이를 해보지 않겠느냐 메시지를 보내왔다. 커뮤니티 그룹 멤버들의 면면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현재 프랑크프루트에 거주 중인 그녀는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분이었고 자차가 없으면 방문하기 힘든 수도원으로 안내해주신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색함도 잠시 타국에서 만난 때문인지 금세 친근감이 들만큼 다정한 분이었다. 비스바덴에서 30분 정도 달려 수도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포도밭을 지나자 수도원이 나타났다. 숲에 둘러싸인 수도원은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방식부터 중세 고딕 스타일로 재건한 신축 건물까지 건축사에도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본당 성가대석 왼쪽의 무덤 두 개의 각기 다른 스타일 차이 등)
당시 건물에는 난방이 안 되고 대화가 금지되었으며 짧은 수면과 변변찮은 음식으로 시토회 수사들의 금욕적 삶과 청빈함을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수도원 초기 식당으로 쓰였던 곳은 수사의 수가 적어지고 와인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와인 저장고로 쓰이고 있다. 홀에는 여러 대의 와인 프레스를 전시 중이었는데 프레스들은 제작 시기에 다라 기둥 모양이 모두 달랐다. 그중 가장 오래된 프레스는 1668년 제작된 10번 프레스. 중세시대 말까지 중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와인 무역 회사로 기능하기도 했으며 1988년부터 비영리재단에 의해 정부 지원 없이 보존을 목표로 운영 중이라서 그런지 입장료가 다소 비쌌다.(11유로)
이 수도원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장미의 이름으로> 촬영된 장소로도 유명하다. 마침 정 원에 장미가 다 지지 않아 그 앞에서 포즈도 취해보았다.
수도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Kloster는 수도원, Eber는 돼지(주로 수퇘지), Bach는 시내를 뜻한다. 그래서 문장 역시 수도원과 돼지, 시내를 의미하는 물줄기 세 개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실제로 수도원 내에 상징으로 돼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라인가우 지역 내 최대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는 이 수도원의 와인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수도원 내 전시장에 방문했다. 와인 시음은 물론이고 와인과 수도원 굿즈도 구매할 수 있다. 와인 구입 고객은 무료 시음이 가능하지만 약간의 시음료를 내면 구입 없이 시음이 가능하다. 실제로 쫄쫄이 바지를 입고 헬멧을 착용한 하이킹 족 여럿이 시음을 한 후 떠나고 있었다.
지성은 그곳을 안내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분 취향에 맞는 스위트한 와인 한 병을 선물했다. 이국의 낯선 장소에서 제 어미를 찾아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를 할 줄 아는 속 깊은 어른으로 자란 것이 뿌듯하고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