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바덴을 출발해 라인강을 왼쪽으로 끼고 달리다 보면 입에서 계속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 이어진다. 리슬링 와인의 주산지답게 라인가우 지역의 광활한 와이너리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심정적으로는 전 세계 사람이 다 마셔도 충분할 것처럼 드넓은 포도밭이 영원히 끝나자 않을 것처럼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진다. 임야가 대부분이라 지평선을 보기 힘들고 탁 트인 전망은 바닷가가 아닌 이상 쉽게 볼 수도 없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광활한 땅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했다. 언제 또 그런 드넓은 포도밭을 볼 것인가.
한 시간쯤 달린 것 같은데도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왼쪽으로 푸른 라인강과 오른쪽으로 초록의 포도밭이라니 군데군데 나타나는 목가적 풍경과 지극히 유럽스러운 시골 풍경은 덤이다.
도착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아기자기하고 고만고만한 골목을 지나 적당한 식당을 골라 자리를 잡고 먼저 식전주로 그 지역 와인으로 만든 와인에이드를 주문한다. 독일에 왔으니 슈니첼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주문해 봤다. 역시 감자튀김이 좀 짜서 거의 남겼지만 슈니첼은 먹을 만했다.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내겐 너무 짜고 너무 많은 양의 독일 음식.
포도밭 위로 수없이 운행되는 케이블카를 타고 로렐라이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니더발트 NiederWald 언덕에 도착했다.
웅장한 통일 기념비 게르마니아 여신상 아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때까지 내가 본 풍경 중 단연 최고였다. -지성은 동의하지 않았다. 분명 다음 여행지가 더 좋을 것이라 장담했고 그 장담은 사실이었다 -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좀 더 감상하기 위해 깔고 앉을 것도 없으면서 적당한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극심한 가뭄으로 수량이 줄었다곤 하지만 라인강 위로는 여전히 유람선과 화물선이 물을 가르며 떠가도 사방이 전부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 그래 이곳이 와인 산지가 맞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안내받은 곳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천하고 싶은 와인 시음장 Wein Welt이다.
"지금부터 와인 시음을 할 거야. “
반응이 미지근했던 것은 내 성향 탓이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그런 곳에 대해 뭘 몰라서였다. 와인 시음은 당연히 와이너리에서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곳은 그냥 와인 매장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며 그곳의 운영이나 이용에 대해 전혀 몰랐던 한마디로 무지한 탓이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벤트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느낀 지성이 적잖이 실망한 것 같았지만 나올 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여덟 개의 방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구입한 코인의 숫자만큼 시음을 하고 마음에 드는 와인을 구입하는 방식의 시음장이었다.
우린 코인 스무 개를 샀다. 코인을 사면서 받은 와인 잔을 들고 여덟 개의 방을 돌면서 최고의 와인을 찾기로 했다. 코인을 사면서 와인 품목이 적혀 있는 종이와 연필, 와인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함께 받았다. 우리의 선택은 한 모금 분량의 와인을 적은 양으로 나눠 세 명 모두 스무 가지를 맛보는 것이었다. 스무 가지의 와인을 다 맛보면서 각자 점수를 매기는 방법으로 좋은 와인을 찾기로 했다.
각 방마다 라인강을 기준으로 각 와이너리의 위치와 와이너리 주인의 얼굴, 와이너리 소개와 시음 가능한 와인의 이름, 종류(드라이, 스위트 등의 정보)가 적혀 있고 그 아래 와인 박스가 놓여있다.
시음할 수 있는 와인은 최적의 온도로 한 병씩 와인 셀레 같은 곳에 담겨 있다가 선택 버튼을 누르면 적당량이 나오는 방식이다.
우린 우선 방마다 많은 와인 중 두세 가지 맛을 본 다음 각자 점수를 매긴 후 나중에 그 표를 보고 높은 점수의 와인을 구입하기로 했다.
사람의 입맛은 천차만별이면서도 좋은 와인을 알아보는 입은 다 같은 것인지 우리 셋이 다 만족한 와이너리의 박스는 이미 비어 있었다.
그 외 점수가 가장 높았던 순으로 와인 세 병을 구입해 나왔다. 지성의 정보가 없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하고 재미난 체험이었다. 또한 왜 괴테가 뤼데스하임을 라인강의 진주라고 불렀는지 알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