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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커피하우스와 쿠어하우스

상류층 엿보기

비스바덴 시내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엔나 식 커피하우스가 있다. 역사가 무려 100년이라고 했다. 우린 직접 100여 년 전 살롱문화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있을 때 즐겨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태양이야’라고 주장하듯 카페 말다너 Maldaner 앞 노천 테이블엔 오늘도 태양 숭배론자들이 그득했다. 실내로 들어가자 군데군데 자리한 노인 커플들. 햇빛 사냥꾼들처럼 노천에 자리한 젊은 사람들과 그 대비가 또렷했다.

10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내 인테리어가 우리를 그 시절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커피와 디저트를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고 때로 열띤 토론을 하고 사교를 하던 곳. 매캐한 담배와 향긋한 커피 향이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우리도 아인슈페너와 플랫화이트, 작은 디저트 케이크를 주문했다. 마치 그 시절 귀부인처럼 점잖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잠시의 여유와 여행지의 기분을 만끽했다. 100년 전부터 사용해왔음직한 소품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보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커피 하우스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신 후 지성의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그 공원의 입구에는 전통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지성은 그 앞의 재밌는 동상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직접 보니 역시 독특한 동상이다. 여성이 턱을 괴고 앉아있고 그 뒤로 단을 세워 책을 든 남성이 서 있다. 흔치 않은 이중 동상이다. 책을 들고 있는 남자는 괴테의 친구 쉴러다. 여성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미간의 주름이 선명할 정도로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언니,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그 앞에 서자 지성이 장난스럽게 한마디 했다. 조각한 사람의 의도가 정말 궁금할 만큼 독특한 여인상이다. 대중적이기보다 정통 오페라를 하는 곳답게 석조 건물 자체가 주는 위엄이 평범하지 않다.

오페라 하우스 뒤로 넓은 분수 광장을 지나면 쿠어 하우스 Kur haus 가 있고 그 안에는 카지노가 있다. 카지노에 입장할 일은 없지만 웅장한 로비는 개방돼 있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로비 한쪽 카지노 입구 옆에 나란히 걸린 몇 벌의 슈트와 큰 전신 거울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방금 지나온 전통 오페라 하우스처럼 부유층들을 상대로 하는 카지노답게 복장 불량은 입장이 불가하다.

‘개뿔이나 그래 봐야 도박인데 격식은 무슨?’ 혼잣말을 하다 실없이 웃었다.

로비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면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끼고돌면 규모가 큰 공원이 나온다. 드넓은 잔디밭, 여기저기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 그 나무 밑마다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나무를 오르내리며 노는 아이들,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공원의 모습이다. 잘 가꾼 잔디밭에 철책이나 나무 울타리를 치고 ‘잔디 보호’ 푯말을 세운 공원들이 떠올랐다. 잔디 보호도 좋지만 누리지 못하고 보호만 하라고 하는 것은 어쩐지 좀 부당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공원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지성의 집 앞에는 시크릿 뱅크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용 자체가 불가한 그야말로 부유층들만을 위한 은행이다. 나는 한 번도 출입문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늘도 역시 열리지 않는 은행 앞을 지나 귀가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의 루트는 상류층의 문화 엿보기가 됐다. 상류층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오락을 즐기고 부를 축적하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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