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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 시작

여행의 시작 비스바덴


독일에 와서야 마크의 차가 우리나라 H사의 i20이란 걸 알았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거리엔 온통 내가 알고 있던 독일 자동차 브랜드인 벤츠와 BMW, 아우디 등이었다. 결혼과 함께 자차의 필요성을 느낀 마크는 마침 누나 소유의 차를 인수했는데 우연히도 그게 한국차 더라고 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독일까지 와서 국산차를 타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우토반을 40분가량 달려 드디어 딸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우리의 흔한 고층 아파트 단지와는 개념이 다른 5층 건물의 4층 아파트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헤센주의 비스바덴 도심의 중심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 한적한 동네였다. 지대가 약간 높아 멀리로 교회의 첨탑이 보이고 시내가 펼쳐져 보이지만 고층빌딩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빌딩 숲과 고층 아파트 단지에만 익숙하게 살아온 내게 그것은 신선하고 생소한 풍경이었다. 동네의 건물들 역시 중세시대에나 있음 직한 석조건물들 일색이었다.

“여기가 좀 부자 동네예요. 저 건물은 프라이빗 뱅크라 우리 같은 서민은 아예 이용 자체가 불가하죠.”

딸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하얀색의 석조건물이 서 있었다. 지금 와 떠올려보니 독일에 있는 내내 그 건물의 문이 열린 것을 본 적도 그곳을 드나드는 부자 사람들을 본 기억도 없다. 부자들은 일반인들에게 없는 시간을 사는 게 틀림없다.

지성은 Wiesbaden비스바덴에 산다. 비스바덴은 독일 남서부 헤센주의 주도이다. 비스바덴의 어원에는 ‘초원의 욕조’라는 의미가 있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스파가 있는 온천 휴양도시다. 비스바덴 시내 중심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온천과 관련한 건물이나 조형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내 곳곳에 천연 온천수가 콸콸 솟아나고 있어 관광객들이 굳이 스파를 이용하지 않고도 관광 중 쉽게 온천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비스바덴 역시 대부분 도시가 그렇듯 주청사와 시청사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도심지가 형성돼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다시 보수하여 지금의 유럽스럽고 멋스러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특별히 좀 오래됐다, 멋있다, 웅장하다 싶으면 대부분 관청이다. 헤센 주정부 청사는 아주 오래된 궁전의 오른쪽 날개 부분에 속하는 건물인데 보수 중이라 밑 부분에 가림막을 쳐놓았다. 그나마 건물 외형을 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지만 지성의 말로는 18년도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다. 보수가 완성되어 일반에 공개하기까지는 언제가 될지 신도 모르는 게 아닐까? 쾰른 대성당의 보수처럼 이들의 보수 개념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주청 사의 맞은편은 시청 사다. 역시 웅장하고 멋스럽다. 시청사의 대각선으로 지성이 결혼서약을 한 시청 부속건물이 있다. 코로나로 지성의 결혼식을 실시간 영상으로 시청했다. 첫딸의 결혼식을 대륙 너머에서 그런 식으로 참관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지만 그 또한 코로나 시기의 결혼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영상과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 살짝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얼른 하늘을 쳐다봤다.

거리를 걷다 보니 난데없이 나타난 광장과 온천호텔. 광장에는 두 곳에서 온천수가 하얀 김을 뿜으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광장 중앙과 온천장 호텔 앞에 솟아오르는 온천수로 이곳이 정말 온천도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재밌는 사실 하나

한 온천은 아직도 남녀혼탕으로 운영 중이다. 그런데 온천장의 안내판에 매주 화요일은 여성 전용으로 운영된다고 적혀 있었다. 남녀혼탕은 싫지만 온천은 즐기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배려 차원이라고 여겨진다. 두 곳의 온천수는 매우 뜨거웠다.

광장 온천수 옆에는 매우 큰 창? 모양의 조형물 하나가 비스듬히 꽂혀 있다. 아주 먼먼 옛날 신께서 그곳에 창을 던졌고 그 창이 꽂힌 자리에 온천수가 터졌다. 하는 너무도 뻔하고 당연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비스바덴에 오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S반을 타고 달리다 보면 강을 하나 건너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일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라인강이다. 비스바덴은 타우누스 산맥 라인강 우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도심에서 라인강까지 아주 가깝다.

비스바덴 역에 내리면 반가운 표지판을 마주하게 된다. “비스바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한글로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익숙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아랍어까지 각국의 언어가 적혀있는데 낯선 독일에서 한국어를 마주한다면 누군들 반갑지 않을까 싶은 지극히 국뽕 차오르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스바덴은 미국부대가 있는 도시다 보니 미국인이 특히 많은 도시이다. -지성의 집 앞에는 그 미군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국제학교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영어를 할 줄 안다면 다른 도시보다 비교적 수월하게 여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독일어보다 비교적 익숙한 영어공부를 하자고 굳은 다짐과 결심을 하고 또 했지만 한국에 돌아와 까맣게 잊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독일 같은 나라에 왜 미군이 주둔하는지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미군 주둔 기지 수를 알고는 더 놀랐다. 전 세계 미군 주둔에 관한 복잡한 얘기를 내 여행기에서 한다는 것은 정말 오버스럽기 짝이 없지만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오만방자한 미군 주둔비 장사는 정말 화가 난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비스바덴 역에서 시청사가 있는 구도심으로 간다면 나는 버스보다 도보를 권하고 싶다. 버스 노선이 많고 몇 정거장 걸리지 않아 쉽게 갈 수 있지만 충분히 도보 가능한 거리다. 걷는 동안 비스바덴 도시가 갖는 미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거리 풍경이 그 자체로 충분한 관광이 될 것이다. 또한 아름드리 가로수가 보여주는 안정감은 우리의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묘미가 될 것이다.

비스바덴 하면 부자동네라고 알고 있듯 거리의 오래된 건축물들은 꽤나 공들인 표가 역력하다. 걸으면서 보게 되는 일반 주택마저 한층 공들이고 멋 부린 티가 난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 새로 짓는 대신 유지를 택한 덕분이다. 모두가 불편함을 기꺼이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성은 난방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그림의 떡이라 했지만 그런 집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건 국적을 초월한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라인가우 지역이 대부분 그렇듯 비스바덴 역시 와인이 유명하다. 그 명성에 걸맞게 한 여름 비스바덴에선 도심에선 와인 축제가 열린다. 이번 여행에서 그 와인 축제를 경험했고 그 와인축제와 와인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비스바덴은 강 건너 마인츠와는 아옹다옹 톰과 제리 같은 경쟁관계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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