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와 숲속 놀이터
러시아 정교회와 숲 속 놀이터
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Sep 22. 2022
러시아 정교회와 숲 속 놀이터
지성의 집 발코니에서 1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숲 속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첨탑이 보인다. 며칠 계속 그걸 궁금해 하자 지성이 러시아 정교회라고 했다.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기에 급 호감을 보이자 오늘 거길 가보자 했다.
시내에서 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린 후 네로베르크 반(Neroberg Bahn) 수력 열차에 탑승해 Neroberg에 오른다. Neroberg는 산이라기보다 200여 미터의 동산에 불과하지만 수력 열차에 탑승하자 경사가 급격해 꽤 아찔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열차의 맨 뒷부분에 탄 우리는 뒤로 펼쳐지는 경사로의 배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풍경을 만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짧은 탑승시간이 지나 하차해 정상 부근으로 가자 숲에 둘러싸인 레스토랑이 하나 보인다. 과거 호텔이었으나 안전에 문제가 있어 초기에 지어진 부분은 철거하고 후에 증축한 탑과 카페 부분만 남겨서 현재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곳을 지나 시내 쪽으로 돌아서자 눈에 익은 돔이 하나 보인다. 지난가을 지성이 독일식 시청 결혼식을 올리고 사진 촬영을 했던 곳이다. 코로나로 딸의 독일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창 단풍이 곱고 그 보다 더 고왔던 딸과 사위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감상했다. 그날처럼 오늘도 신랑 신부 한 쌍과 들러리들이 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의 기분을 느껴보려 돔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다시 언덕을 오른다.
숲 속 놀이터 내지는 숲 체험장으로 이용되는 숲답게 제일 먼저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놀이터는 입구부터 초라하기 짝이 없다. 통나무 두 개를 세우고 가로지르는 나무 하나를 얹어 놓은 후 Mini-Klettergarten라고 적혀 있었다. 변변한 놀이기구 하나 없다. 나무기둥 몇 개가 서있고 그물 하나 줄 하나 의자를 대신할 바윗돌 몇 개, 두 개의 나무기둥 사이로 나무를 가로질러 마치 사다리처럼 만들어 놓은 게 전부다. 아이들 몇 명이 하나같이 손에는 자기들 얼굴 만한 프레첼을 하나씩 들고 뜯어먹으며 놀고 있다. 보호자로 보이는 여성 두 명도 멀찍이 서서 그들끼리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본 다른 놀이터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과 철로 만든 놀이기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무와 돌, 흙과 모래가 전부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무조건 뭔가 공을 들이고 새로 만들고 번듯한 설치물을 세우는 게 아닌 최소한의 손만 거치는 것, 있는 그대로를 살리려는 이들의 정서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옆의 숲 체험장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엄청나게 큰 나무와 나무 사이 줄을 매달고 구조물을 만들어 건너고 매달리고 떨어지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은데 다수의 사람들이 체험 중이었다. 오르기를 주저하는 아이, 로프를 달고 나무를 오르는 여성, 나무 사이로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기에 용기가 필요한지 숨을 고르는 남자아이, 나무 밑으로 활강하며 활짝 웃는 중년 여인,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부럽고 보기 좋았다. 제대로 앉아 쉴 벤치 하나 없고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매점 하나 없는 그런 곳이었지만 정말 온전한 숲 체험장이 아닐까 싶었다.
목적한 러시아 정교회를 향해 오솔길을 걷는다. 포장이 되긴 했지만 역시나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섭리대로 방치된 듯한 자연 그대로의 오솔길, 노부부가 손을 잡고 앞서 걷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여 자꾸 쳐다봤다. 조금 더 내려가자 보행보조기를 밀고 살살 걷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할아버지가 함께 걷고 있다.
그 오솔길 끝에 교회가 있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오래된 건물이 주는 인상이 뚜렷했다. 아이를 낳다 죽은 러시아인 부인 엘리자베스 미하일로브나를 위해 아돌프 폰 나사우(Adlof von nassau)가 지은 교회라고 했다. 얼마나 애틋했을까. 그 마음이 느껴져 가슴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돔 앞에서 본 신랑 신부와 오랜 시간 함께 나이 들어간 노부부까지 여러 쌍의 부부들. 왜 그들이 이곳을 찾는지 교회에 오 보고야 깨달았다. 부부가 사랑을 다짐하고 확인하고 함께한 세월을 돌아보기 이 보다 더 적합한 곳이 있을까.
유독 미래를 약속한 커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