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들어는 봤나 와인자판기

우리 집에 와인자판기 하나 들여놔야겠어요.

미술관 관람 후 베트남 음식점에 들렀다. 식전주를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미술관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 바로 옆에서 들려온 어색한 한국어에 화들짝 놀아 기절하는 줄 알았다. 만나고 싶었지만 휴가 계획이 있어 볼 수 없다던 탄야가 거기 있었다. 나의 독일 딸 탄야, 탄야에게 우리 세 딸과 같은 돌림자로 지아라는 한국 이름도 지어주었다.

세상에 그렇게 놀랍고 반가운 만남이 또 있을까. 마침 휴가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내가 독일까지 왔는데 못 보면 서운할 것 같아서 왔단다. 당연히 지성과 마크랑은 이미 작전을 세워둔 깜짝 이벤트였다. 알뜰한 탄야가 9유로 티켓을 이용해 장장 7시간을 달려왔다니 더 놀라웠다. 어쩐지 지성이 나를 오픈된 창가 자리에 앉히면서 출입구를 등지게 했다. 탄야가 오는 방향을 계산한 은밀한 계획이었다.

탄야를 볼 때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4년 전 지성의 교환학생 시기 학교에서 정해준 버디로 만나 도움을 받으며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좋아하는 탄야는 우리 집에서 명절을 지낸 적도 두 번이나 되고 지난해에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연구원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는 대학원생이다. 마음속에 품은 많은 말들이 언어의 장벽에 묻혀버리곤 했지만 그저 얼굴만 봐도 좋은 사람, 탄야는 정말 내 딸이 돼 가고 있다. 그렇게 정담을 나누며 식사를 마칠 때가 되니 이번엔 마크가 짠하고 나타났다. 정말 이 아이들이 무슨 작당을 했구나 싶었다.

마크가 차를 외곽으로 몰았다. 비스바덴 중심에서 30분 정도 나갔을 뿐인데 사방은 온통 드넓은 포도밭. 비스바덴 중심가 출신인 마크가 중, 고등학교 시절을 조부모와 함께 지냈던 고향 같은 마을이다. 마크가 한국 결혼식 하러 오면서 가져왔던 맛있는 와인이 바로 그 동네 와이너리 산이었다.

독일에 와서 와인을 그렇게 마셔댔는데 정작 와이너리에 가보지 않았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마크가 안내하는 와이너리에 갔더니 정말 낯익은 와인 병이 진열돼 있었다.

드넓은 포도밭 한 곳에서 열심히 포도나무 사이를 누비며 무언가를 찾는 마크와 지성, 마크 누나의 포도나무를 찾는 것이었다. 그 와이너리는 개인에게 포도나무를 분양하고 그해 생산한 와인을 보내주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었다. 멀리 함부르크에 사는 마크 누나와 조부모는 옛 동네가 그리워 그렇게 포도나무를 분양받아 와인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마을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다. 거기 치과 의사는 나이 지긋한 한국인이다. 마크 가족도 한국인 의사에게 치료를 받곤 했다. 마을에서 차량의 운행 속도는 7킬로다. 사람의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정해놓은 것이다.

“학교 앞 30킬로도 답답해 미칠 지경인데 7킬로라고? 사람들이 그걸 지켜?”

그 대답은 정말 마크가 시속 7킬로 유지해 거북이 운행을 하면서 증명해 보여주었다.

“이제 정말 신기한 걸 보여드릴게요.”

아이들이 안내한 곳은 또 다른 와이너리였다. 와이너리 앞에 자판기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앞으로 안내했다. 그것은 자판기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자판기였다. 그 와이너리의 다양한 와인을 판매 중이었다.

보면서도 신기했다. 지성은 직접 와인 한 병을 구입하며 동영상으로 촬영도 하게 했다. 와이너리의 와인 자판기라니 그야말로 와이너리 체험의 끝판왕이 아니었을까.

드넓은 포도밭 사이로 잠시 산책하듯 걸었다. 아직 다 여물지 않은 포도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어보았다. 아직 단맛은 덜했지만 새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내가 상상했던 가장 이상적인 와이너리 체험이었다.

와이너리에서 돌아와 우린 한국식으로 불판에 삼겹살을 구웠다. 마크도 탄야도 한국음식이라면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마니아들이니 매우 만족스러운 저녁 만찬이었다.

식후엔 발코니에서 낮에 사 온 와인을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루가 꿈만 같았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 좋은 술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keyword
이전 10화그림형제와 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