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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이야기

재활용의 최고봉

재활용의 최고봉

거리를 걷다 보면 그릇이나 생필품들이 집 앞 도로가에 놓여있는 것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독일이란 나라가 쓰레기나 재활용 처리하는 수준이 좀 미숙하고 선진국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나눔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에게 소용이 다한 물건을 쓰레기로 처리하기 전에 먼저 집 앞에 하루 이틀 내놓는다. 그것이 필요한 누군가 자유롭게 가져가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Zu Verschenken(무료 나눔) 같은 문구를 써놔야 한 다는 것, 그래야 쓰레기 수거하는 사람들도 편하고 필요한 사람도 의심 없이 가져갈 수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면 그때 다시 처리하는 방식이다. 또한 대형 쓰레기의 경우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는 대신 쓰레기 수거 업체에 직접 연락해 수거 일을 정한 뒤 집 앞에 내놓으면 수거해가는 방식이다. 그야말로 재활용의 최고 경지가 아닐까 싶다.

주로 이사할 때 많이 내놓는다. 실제로 지성도 이사하면서 내놓은 컵, 식탁 의자. 컴퓨터 의자, 매트리스 받침대 등을 내놓고 다음날 보니 그 자리에 없더란다. 그냥 버리면 쓰레기지만 누군가 다시 사용하면 그 순간 자원이 되는 것이다.

주택가 작은 공원에 나무로 된 박스가 서 있었다. 이들이 교환 장롱이라고 부르는 Umtausch Schrank이다. 지성의 말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 없었던 문짝이 새로 생겼다고 했다. 안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책이 대부분이었고 아이들 신발과 핸드프린팅 된 컵 등이 놓여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컵의 그림으로 보아 누군가의 추억이 듬뿍 깃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컵의 소용이 다한 것처럼 추억만큼은 소용을 다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나친 오지랖이었을까?

카셀 대학의 교정에서도 Umtausch Schrank을 보았다. 학교라는 특성상 그 안은 대부분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성도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가져오려고 살펴보았지만 결국 건져오지는 못했다.

솔직히 남이 쓰던 물건이나 남이 입던 옷에 대해 적잖이 거부감이 있는 나였던지라 이런 문화를 선뜻 받아들일 마음은 들지 않지만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재활용보다도 적게 가지는 것으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다.

한국에서 지금 당근 마켓이 한창 붐이듯 독일에도 Ebay Kleinazeige 같은 어플이 있다. 이 어플에는 Zu Verschenken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있는데 지성은 이사할 때 여기서 책상을 구입해 쓰고 있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이곳의 벼룩시장을 경험해보겠냐는 제안에 흔쾌히 그러마 했다. 마침 대형 마트의 주차장에 정기적으로 열린다는 벼룩시장이 서는 날이라 했다. 각자의 차에 싣고 온 물건을 부려놓고 파는데 물건의 상태에 따라 자릿세가 다르다고 했다. 할애받은 자리에 각자 좌판을 벌여놓았다. 파장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사려는 사람의 수보다 팔려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았다. 식기류, 액세서리, 의류 등에서 장식품까지 각자 내놓은 품목은 다양했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역시 흥정이나 호객행위는커녕 눈도 마주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몇몇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직접 사용하는 것 말고 장식품 정도라면 기념으로 하나쯤 구입 의사도 있었다. 결국 구입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것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왔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걸 누가 구입할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만큼 낡고 오래돼 보이는 것부터 개봉하지 않은 새 상품까지 천차만별이니 운이 좋으면 누군가는 득템이고 나처럼 헛걸음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구경하는 재미만큼은 분명했다. 특히 여행자라면 한 번쯤 벼룩시장에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뜻하지 않게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날것으로 경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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