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유로운 글쓰기 여행자 Oct 13. 2022
독일의 계절은 참 극단적이다. 중간이 없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밤 9시에도 해가지지 않아 저녁을 먹고 발코니 테이블에서 가볍게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일몰을 감상했다.
여름이 짧고 그만큼 해가 귀한 독일의 기후는 사람들을 태양 숭배자, 햇살 흠모자로 만든 모양이다.
일조량이 짧아 오후 네 시면 벌써 어둑해지는 계절이 오기 전 여름 동안 부지런히 햇살을 쪼이기 위해 기꺼이 햇살 사냥에 나선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 분명 가수 비의 노래가 생각나는 계절이 맞는데 이들은 대놓고 태양을 쫓아다닌다. 옷차림은 가볍기 짝이 없고 카페든 음식점이든 야외 테이블은 언제나 만원이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선글라스에 모자, 양산도 모자란 우리가 영 받아들이기 생소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나는 한 달 동안 있으며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야구모자는 더러 봤지만 햇빛가리개용 챙 넓은 모자 역시 보지 못했다. 나는 약간의 챙이 있는 모자를 챙겨갔지만 그 조차 쓰는 게 어색해 쓸 용기가 없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해가 아주 짧아져요. 일조량이 짧아지고 춥고, 비도 많이 내리고, 음산하고, 하여간 못 말리는 이상한 날씨가 계속되죠. 이들이 이 짧은 여름을 만끽하려고 하는 게 이해되죠?”
머리가 벗어질 듯 태양이 뜨거웠지만 피부만 뜨거울 뿐 나는 독일의 여름이 한국의 여름보다 더 나았다. 습하지 않고 건조하니까 덜 덥게 느껴진 탓이리라.
여름에 이들이 축제를 많이 하는 것도 날씨 탓이리라.
여름 내내 독일 곳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지성의 동네에도 와인 축제가 열리고 여름내 서머 마켓이 열린다. 서머 마켓은 기껏 해봐야 맥주, 와인과 몇 가지 여름 음료, 안주로는 소시지와 바비큐를 파는 정도지만 어쨌든 걸렸으니 경험해봐야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상의 테이블에서 맥주와 와인을 마시고 있다.
서머 마켓 등 수많은 축제가 여름에 집중적으로 열리는 반면 겨울엔 오로지 크리스마스 마켓뿐이다. 독일에 철학자가 많은 것은 그 지루하고 재미없고 우울한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 탓이 아닐까 라는 지성의 말이 왠지 설득력 있게 들렸다. 우울과 고독에 빠져 헤매다 보면 누구라도 철학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을까?
사계절 뚜렷한 내 나라. 더 덥고, 더 추운 그 며칠을 지나고 나면 충분히 참을만한 더위와 추위(여름과 겨울) 그리고 봄과 가을의 이상적인 기후.
전 세계 기후위기가 오면서 올여름 유럽은 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 역시 우연찮게 내가 오고 나서부터 기온이 평상시보다 10도 가까이 올랐다. 극심한 가뭄으로 라인강 등의 수위가 낮아져 화물선 운행에 차질이 생길 정도라고 했다. 한국에선 연일 물 폭탄이 쏟아져 난리라고 하는데 독일에 있는 동안 새벽에 딱 한 번 십여 분간 짧게 소나기가 내린 외에 비를 구경하지 못했다. 난 결코 더위를 몰고 다니는 심술 마녀가 아닌데 내가 떠나온 한국과 내가 머물고 있는 독일의 날씨는 왜 이리 극단적이란 말인지.
공원에 벌러덩 누워 훌훌 벗어부치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때론 빨갛게 익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이 모습이 애처롭게 보여 곁에 있는 엄마가 무책임해 보인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몰라도 한참 몰랐던 때문이었다.
햇살에 피부가 녹아내릴 듯해도 태양을 찾아 그걸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사정은 햇살 부자인 우리로선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독일 역시 사계절이 있지만 우리의 사계절과 사뭇 다른 기후조건을 알았다면 그런 오지랖스러운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의 가정은 창문마다 롤라덴(Rolladen. 롤러 셔터)을 설치한다. 지성은 외출하기 전에 모든 창의 롤라덴을 꼼꼼히 내려 빛을 차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밤까지 내리쬐는 바깥의 열기가 집안까지 뜨겁게 달굴 것이기에 집 밖에선 태양을 쫓아다니고 집 안에는 태양을 들이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카셀의 호텔도 프라이부르크의 에어비엔비 숙소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에어컨이 없는 숙소라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기후위기가 오기 전 이들의 냉, 난방은 지금과 분명 의미가 달랐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