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나의 우주

by 도아

열등감은 나에게 좋은 연료가 되었지만, 나를 어둠으로 갉아먹었다. J에게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얄팍한 자존심에 혼자 성적을 인정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항상 나의 어머니는 내가 가져오는 작품들을 나보다 더 좋아하며 줄곧 사용하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나에게 건넨 한마디가 나를 번쩍 뜨게 했다.


"도아야 네 그릇은 가벼워서 좋은데 너무 얇아서 불안해."

"불안하다니 뭐가?"

"유리그릇보다 얇아서 가끔은 깨질까 꺼내기도 무서운 애들이 있어. 그래도 가벼우니까 엄마는 좋아."


이럴 수가, 불안하다니. 처음에는 내 작품이면 그저 좋아해 주던 엄마가 나한테 한 말이라 야속하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꼈었다. 언제는 내가 만든 도자기가 최고로 좋다더니, 불안해? 가볍게 만들려면 얇아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란거지? 그렇게 인정하지 못하며 내 그릇을 사용한 날에는 엄마가 아닌 내가 설거지를 하며 실생활에서 느껴보고 나는 내 도자기가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얇아 내구성도 떨어지고 사용자로 하여금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도자기는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라는 사실. 교차로에서 차들이 지나치듯 우연히 J의 생각이 나면서 도자기는 디자인의 독특함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도자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든 도자기를 실제로 사용해 보고 체감하는 것이 때로는 작업실에 앉아 작업만 하며 연구하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후 나는 순구의 굵기와 조화를 이루는 곡선, 그리고 적당한 두께가 도자기가 주는 매력이며 너무 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볍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며 작업에 전념하게 되었다.


"과대님, 우리 동아리 활동 같이 해보지 않을래요?"


작업을 하던 중, 어느 한 선배의 권유에 내 시선을 끌었다. 학교 내 아동도예 창업 동아리로 아이들에게 도예를 가르치는 활동이었다. 평소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던 나에게는 꽤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그렇게 나는 망설임 없이 동아리에 들어갔다. 다른 동아리에 들어간 친구들이 핑계를 대며 술만 마시던 것과는 달리, 이곳의 선배들은 정말 '도예'와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덕분에 방학 동안에도 활동이 끊긴 적이 없었다.


은 솔직하다. 흙을 만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감정과 성격이 손끝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일까, 아동도예가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쓰인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흙을 빚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도 함께 비치는 듯했다.


"선생님, 제꺼 봐주세요! 제가 제일 크게 만들었어요!"

"아니야! 넌 못생겼잖아. 선생님 제꺼는 제일 예쁘게 만들었어요!"


아이들에게는 내색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부터 얼굴이 달아올라 내 자신이 초라해졌다. 이들의 솔직한 경쟁심이 내 안의 열등감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도자기가 더 잘 만들어졌다며 티격태격하며 씩씩대는 모습까지도 내가 J보다 성적을 더 받지 못해 성이난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질투는 아주 잠시만 머물고 금세 서로 어울려 밝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비교도, 열등감도 없었다.


"OO 이는 선생님한테 자랑할 거 없어요? 왜 다른 친구들처럼 보여주지 않아?"

"자랑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저만 만족하고 제눈에만 예뻐 보이면 그게 최고 아닌가요?"


유달리 조용한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일까 걱정이 되어 깊이 대화를 나누다 그 아이에게 크게 배우게 된 것이다. 아이의 저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왜 그렇게 J와 나를 비교했을까. 왜 교수님의 눈에 예뻐 보이려 안간힘을 썼을까.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작품을 사랑하지 못한 채, 누군가와의 경쟁심으로만 뭉쳐있던 어둠 속의 나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만족했는가? 이건 내 눈에 충분히 예쁜 것인가? 그 질문으로 바꾸고 나니, 더 이상 작업실은 경쟁의 운동장이 아닌 그저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우주가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사이로, 내 안에 오래 머물던 어두운 열등감이 조용히 흙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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