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라는 어두움

by 도아

'열등감'. 때로는 이 마음이 나를 더 성장하거나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이 감정은 나를 메마르고 척박한 사막 속에 외로이 혼자 거닐게 되었다.


이겨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나의 여정에 동료들이 생기던 참이었다. 수업이 끝나도 작업실에 머무르며 동고동락하면서 서로의 실력에 용기와 격려를 아낌없이 해주었다. 내가 언니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이 있는 것은 나만의 어둠 속에 가둔 채로, 동기들과 함께 작업실에 불을 켜고 적당한 리듬감이 있는 아이돌 유행가를 노동요 삼아 평일이건 주말이건 학교에 나와 같이 물레를 차고 작업을 했다. 어느새 질투와 경쟁심보단, 동기들과 어울려 같이 작업을 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언니를 따라잡아야겠다는 조급함에 말을 듣지 않던 흙이 즐거움과 함께 부드럽게 내손에 흙물이 만들어져 흙이 올라타며 중심잡기에 성공을 했다. 안에서 벅차오르는 뿌듯함과 희열감에 온몸이 빛으로 나를 감싸는 듯했다.


그러고는 바로 컵 만들기에 몰두를 했지만, 컵을 만드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물레로 처음 성형을 잘 해내어도 완전하게 건조되기 전에는 굽을 만들어주는 굽 깎기라는 과제가 남아있었기에. 손끝의 감각으로 만든 안의 곡선대로 단단하고 날카로운 굽칼로 정교하게 굽을 깎아내야만이 손잡이 없는 물컵으로 비로소 탄생할 수 있었다. 컵하나에도 정교한 손길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입에 닿는 순구가 날카로우면 안 되기에 끝부분은 부드러워야 하며 또 너무 두꺼워서는 안 되었다. 그 부분이 두꺼울수록 물을 다 마시고 난 후 입을 뗄 때에 입안에 채 머금지 못한 물방울이 흘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친구들과 나는 하나의 과제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예쁘고 가벼운 물컵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친구들과 컵의 무게에 집착을 하던 때였다.


'너무 가벼워서도 안돼. 어느 정도의 무게감으로 사람은 안정감을 느끼거든. 그리고 너무 얇아서도 안되지. 도아는 너무 고집을 부리는 듯하구나. 마음이 둥글어야 예쁜 도자기가 나오지-.'


땐 저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집이 있었기에 중심잡기에 금세 도달할 수 있었고, 질투에 뾰족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이만큼의 성장을 이루어 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물컵을 처음으로 만든 그 수업날, 기말고사 과제로 우리는 커피잔 10잔 만들기를 과제로 받게 되었다. 중심 잡기를 어렵사리 끝마치고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는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과제였다. 어떻게 10개나 만들지? 심지어 커피잔이라는 것은 컵만 있어서는 안 되고, 컵을 받치는 컵받침 접시를 포함하며 만들어내야 했다. 그뿐인가. 컵의 손잡이까지 만들어 이쁘게 만든 컵에 금이 가지 않게 붙이는 작업 또한 포함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그래도 외롭거나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다. 같이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내 마음속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같이 시작한 도예 첫걸음 풋내기였는데, 쟤는 손에 뭐가 있길래 나보다 더 단숨에 중심을 잡았지? 난 아직 내 컵 디자인조차 끝내지 못했는데 쟤는 언제 다 끝낸 거지? 조급함과 질투에 온몸에 붉어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만 갔다. 이 함께해서 즐거웠던 동기들인데도 불구하고, 과제가 생기니 홀로 내 마음속에선 경쟁의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무조건 더 특이하게, 더 독특하게 만들어내겠다며 발악을 했다. 항아리모양의 3자 손잡이를 가진 디자인은 그렇게 탄생이 되었다. 그렇게 만족하는 디자인은 나왔지만 실력은 따라가지 못하고, 성형하고 굽을 깎는 데에 어찌나 더뎠는지.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 작업량보다 무조건 더 많은 양의 컵을 만들고 시간을 투자했다.


내가 투자한 시간이 야속하게도 컵은 그다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점점 데드라인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친구들의 컵들은 나보다 이쁘고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괜히 특이하게 모양을 잡은 건가 후회가 잔잔한 호수에 물방울이 떨어져 파동이 일듯 점점 커져만 갔다.


'니야 나는 틀리지 않았어. 무조건 더 많이 만들어내서 예쁜 것만 제출하면 될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순간에 내 동기들과 똑같이 시작한 내가 뒤쳐지는 그 감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데드라인이 다가오고, 성적발표 날. 나는 도예를 시작하면서 두 번째 나의 위기와 절망이 찾아온 것이다. 나보다 못한다 생각했던 친구 J가 나를 제치고 A+을 받았기 때문이다.


J는 나와는 다른 든든한 동기였다. 나와 같이 물레를 잘하기를 열망하며 어떻게 하면 더 가볍게 잘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 내가 찾은 해답은 도자기를 얇게 만드는 것이었다. 순구던 도자기의 몸체이던 얇게 만들어야 가볍게 만들 수 있다 생각했고 J의 생각은 달랐다. 도자기를 만든 안쪽면의 곡선을 따라 굽을 깎아주며 곡선의 굵기에 군더더기를 없애주는 것이 균형과 무게를 잡을 수 있다 주장하며 나와 대립했었다. 하지만 J보단 내가 더 중심 잡기를 잘하고 내가 만드는 커피잔의 디자인이 훨씬 어려운 모형이라는 자부심과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결과로는 J가 맞았고 나는 틀렸던 것이다.


왜 나는 J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을까? 내가 도대체 쟤보다 덜한 게 뭐가 있지? 성적을 받고 방학기간 내내 마음 한켠에 넣어 두었던 도예고 언니보다 잘하고 싶단 열등감은 내가 아끼는 동기인 J에게 까지 퍼져 어둠이 나를 감싸 안아 외로운 시련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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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