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사랑하는 이유

by 도아


'오른손은 계속 밀고 왼손은 받치기만 해라.'


물레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잡기의 핵심 포인트이다. 흙덩이를 물레 위에 올려두고 페달을 밟고 돌아갈 때에 흙이 날아가지 않게 원뿔모양으로 잘 때려가며 고정을 시킨다. 그다음 손에 물을 묻히고 위의 말처럼 오른손은 밀고 왼손은 받쳐가며 흙 물레 돌아가는 원심력에 고르게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분명 교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은 흙도 말랑해 보이고 손쉬워 보였던 것이, 제 손에 오니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오전 내내 수업시간에 제말을 듣지 않는 망할 흙덩이와 한창 싸우고 있는 와중이었다.


"오오-! 언니 정말 잘한다!"


환호성과 부러움의 눈빛 사이에 도예고에서 왔다는 언니가 중심잡기에 그치지 않고 컵까지 만들어가며 제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교수님이건 학생들이건 너나 할 것 없이 그 언니의 자리에 모여들어 감탄하고 칭찬일색이었다. 도예고 그게 뭐라고. 그러면 뭐 하나 1년이나 무르고 대학도 늦게 들어왔으면서 저리 자랑질인지. 잘하는 모습이 부러우면 부럽다 말하면 그만이거니와 그저 인정하면 될 것을. 어린 나에겐 너무나도 힘든 일이기에 그 언니 자리 근처에라도 가면 내가 다 지는 것 같아 그 실력이 궁금해 가까이 배우고 싶은 마음마저 꾹 참으며 혼자 울렁이며 와리가리 춤추는 내 모진 흙과 사투를 벌이며 입이 툭- 튀어나와 있던 때였다.


"어이구- 그렇게 욕심이 많아 어떡해. 고집도 센 것이 물레 잘하긴 시간 좀 걸리겠구나."


교수님이 나를 보시며 저 말을 남기고는 허허 웃으며 수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던 나는 손에 묻은 흙도 다 닦아내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눈시울이 뜨거운 것인지 내 얼굴이 뜨거운 것인지 구분도 하기 전에 시야가 뿌얘지며 이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이게 학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렇게 많은 대학에 합격하고 골라서 온 곳이었는데 가장 열등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도예에 온 것이 후회가 파도처럼 밀고 들어왔다. 통학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동아방송예술대에 갈걸 그랬나. 난 손으로 만드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나름 학교에서 그림 수업 때 항상 칭찬일색을 받으며 교내 액자로 그림도 걸리고, 입선까지 받았었던 나인데. 그만큼 자부심이 있었는데, 대학에 오니 나 같은 사람은 넘쳐났고 난 그저 작은 개미만도 못한 재능이었나 좌절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재수를 해서 다시 다른 대학에 갈까까지 생각하며 집에 돌아와 무거운 마음을 털어냈다. 그러나 따뜻한 위로보단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고였다.


"공부하기 싫어 간 전문대에 다시 네가 공부해서 다른 대학에 간다는 것은 신뢰감이 없는 말 아니니? 그렇게 바로 포기해 버릴 거면 다 그만두고 취업을 해."


머릿속이 띵해질 정도로 차가워졌다. 그래. 고등학교 때도 뭐가 하고 싶은지 찾아보겠다며 보컬도 해보고 4년제 미대에 가겠다며 입시미술도 찍먹으로 끈기 없이 하다 포기했던 나에게 지금 드는 감정은 그저 회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고 봐, 누구보다 잘해서 반드시 과에서 제일 물레를 잘하는 사람이 될 거야.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고 뜨거워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겨내어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그게 가족이든 교수님이든.


그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시간 외에 물레연습을 했다. 삼각김밥에 연명하며 일요일 아르바이트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물레에 미친 사람처럼 연습에 전념했다. 어떤 날은 어깨랑 팔, 다리에 근육통이 번져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하다 흙에 파스가 휘말려 벽으로 날아가 열심히 치우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꼬여지다 끊겨버린 흙덩이에 다 잘라내어 버리는 것은 일쑤였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조교님보다 늦게 가는 날도 있어 문단속을 하고 가던 때도 있고, 아예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는 날도 일주일에 세네 번이 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중간고사기간이 되던 날, 나는 드디어 기본적인 컵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오로지 손끝의 감각으로 만들어지는 기묘한 이 전율이 그 순간 내 마음을 울렸다. 원심력으로 잘 다듬어진 흙덩이 가운데에 구멍을 내고 손끝으로 손톱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바닥을 넓힌다. 넓혀진 바닥과 벽을 지탱해 줄 엉덩이 부분을 집게손으로 흙을 다듬에 올려 자연스럽게 벽까지 올려준다. 이 모든 과정들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푹 빠져 들었다.


도자기로 탄생하기까지 흙은 너무나도 민감한 소재이기에 다룰 때 우는 갓난아기를 다루듯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물레로 만들어진 컵형태로 끝이 아니다. 바람이 없는 서늘한 그늘진 곳에 잘 말려 입을 내는 부분, 순구가 단단해지면 밑부분이 위로가게 뒤집어 천천히 말려준다. 이때 바람이 닿는 곳에 기물을 두고 건조하게 되거나 뒤집어 건조를 해주지 않으면 원심력의 힘에 기대 만들어진 기물이 바람에 의해 모형이 뒤틀리기도 하고 너무 빠르게 건조하게 되면 기물 안에 금이 가기도 했다. 그렇게 잘 말려진 기물은 완전히 마르기 전에 굽을 만들어주는 굽 깎기를 해주며, 도자기처럼 단단해지기 위해 800도에서 한번(초벌), 1250도에서 두 번(재벌)하여 우리가 실사용할 때에 보이는 도자기로 탄생하게 된다. 한시라도 관심을 들 주게 되면 스스로 갈라질 수 있는 것이 흙이기에 그만큼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한 것이 매력적이라, 그만큼 애정을 듬뿍 안 줄 수가 없었다. 나를 증명해 내기 위해 시작했던 도예가 이제는 하지 않게 되는 날을 상상하면 슬프고 괴로워질 만큼 사랑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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