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중독된다
회사 고양이는 내가 출근을 하면 어디엔가 숨어있다가 내차로 냐앙 하며 다가온다. 눈을 마주치고 캔을 하나 까서 그릇에 담아주면, 어떨 땐 급하게 어떨 땐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자리를 뜨곤 한다. 퇴근길에도 시간이 엇갈릴 때는 못 볼 때도 있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은 마주치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이 녀석이 내 차 밑에 앉아 나를 기다릴 때도 있다. 똑똑한 녀석이다. 주차장에 차가 그렇게 많은데도 귀신같이 내 차를 알아본다. 나 모르게 마킹을 해둔 건가.
평소에는 납작 엎드리고 앉아있거나 사람을 피해 다니면서도 나를 발견하면 도도도 다가와서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녀석에게 이름은 없다. 이름을 붙이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달이 지난 아직도 ‘그’ 고양이다.
동료들이 작년부터 이 고양이를 봤다고 하니 분명 성묘일 텐데 7개월 된 우리 모모보다도 작다. 모모는 우량 아니까 논외로 치고, 같은 스트릿 출신인 라라보다는 좀 더 크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리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마른 데다 털도 거칠고 그루밍이 되지 않아 구내염이 있는 줄 알았다. 진짜 곧 죽을 것 같아서 밥을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한 달. 그새 틈틈이 찍어둔 사진을 모아보니 조금 살도 붙고 털상태도 좋아진 것 같다.
그 녀석을 돌보면서 내가 정한 원칙은
1. 거리를 두고 절대 녀석을 만지지 않는다.
2.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녀석의 한 끼를 챙겨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 두 가지다. 언제까지 밥을 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 녀석이 나한테 완전히 의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디 잘 먹고 건강을 회복해서 올 겨울을 잘 넘기고 나면 내가 챙겨주지 못하는 사정이 생기더라도 자기 앞가림을 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밥을 먹고 가다가 자꾸 멈춰 서서 나를 뒤돌아 보았다. 무슨 뜻이었을까?
회사동기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거리 두는 방법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연민에 중독되지 않도록 해.
네가 모두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괴로운 건 너야"
여기까지 글을 쓰고 일 년 반이 지났다. 그 사이에 회사는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중간중간 출근하는 날마다 사료를 챙겨 다니면서 밥을 챙겨 먹였다. 예전처럼 밥 먹는 걸 내 눈으로 매일 보질 못하니 이 녀석이 밥을 먹고 다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사람들 눈이 안 닿는 곳에 자동 급식기를 두었는데, 그나마도 덩치 큰 고양이들에게 밀려서 잘 못 먹었는지 가끔 볼 때마다 녀석이 나날이 말라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겨울엔 보통 길고양이들이 많이 먹어서 체중을 불리는 편인데도.
회사 운동장 근처 비탈진 곳에 은신처를 마련한 녀석을 발견하고 밥을 건네주던 날.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것 같아 남편에게 어떻게 하지.. 부러진 것 같은데 병원에 데려갈까 하고 물어봤더니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으면 그러자고 했다. 사실 그 시점에서는 내가 프랑스로 파견 가는 날이 나와있었던지라 고민은 했지만 그냥 돌아서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퇴근하고 녀석을 잡아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으니 한번 봐주세요'했는데, 사실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기력이 없어서 다리를 떨었던 것이었고, 횡격막이 파열되어 장기가 앞으로 다 쏠려서 폐를 누르고 있다고...
선천적으로 기형일 수도 있고, 트라우마(사고등으로 큰 충격이 가해진 경우) 일 수도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두면 고통스럽게 살 것이고, 예후는 좋지 않지만 수술을 하면 그나마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해서 고민하다 수술을 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었고, 고등어(병원에 입원시키면서 고등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좀 회복되는 듯했지만 결국 이 녀석은 열흘 정도 버티고 고양이 별로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고등어가 떠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간다.
고등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으면 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내가 뭐라고 그 녀석의 운명을 결정했을까? 이런 생각이 드문드문 들 때도 있지만 그 비틀거리는 몸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버티는 것이 과연 고등어에게 좋은 삶이었을까? 그래도 난 건강하게 살게 해 주려고 노력했어.. 이렇게 자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랑스 시골에 살게 된 이후로 고등어처럼 마르고 아픈 고양이는 본 적이 없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도 보통은 돌아갈 집이 있는 고양이인 경우가 많고,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고양이들도 여긴 쥐 나 다른 작은 동물들이 많으니 배가 곯아 보이는 애들은 없었다.
프랑스로 오기로 했을 때, 또 가서 고양이들 주워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던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보호소에서 티구는 데려왔지만) 도시에서보다 건강해 보이는 고양이들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도 집에서 고양이도 다들 건강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