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Feb 17. 2023

그 고양이와 나의 거리

연민은 중독된다


회사 고양이는 내가 출근을 하면 어디엔가 숨어있다가 내차로 냐앙 하며 다가온다. 눈을 마주치고 캔을 하나 까서 그릇에 담아주면, 어떨 땐 급하게 어떨 땐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자리를 뜨곤 한다. 퇴근길에도 시간이 엇갈릴 때는 못 볼 때도 있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은 마주치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이 녀석이 내 차 밑에 앉아 나를 기다릴 때도 있다. 똑똑한 녀석이다. 주차장에 차가 그렇게 많은데도 귀신같이 내 차를 알아본다. 나 모르게 마킹을 해둔 건가.


평소에는 납작 엎드리고 앉아있거나 사람을 피해 다니면서도 나를 발견하면 도도도 다가와서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녀석에게 이름은 없다. 이름을 붙이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달이 지난 아직도 ‘그’ 고양이다.


동료들이 작년부터 이 고양이를 봤다고 하니 분명 성묘일 텐데 7개월 된 우리 모모보다도 작다. 모모는 우량 아니까 논외로 치고, 같은 스트릿 출신인 라라보다는 좀 더 크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리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마른 데다 털도 거칠고 그루밍이 되지 않아 구내염이 있는 줄 알았다. 진짜 곧 죽을 것 같아서 밥을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한 달. 그새 틈틈이 찍어둔 사진을 모아보니 조금 살도 붙고 털상태도 좋아진 것 같다.


그 녀석을 돌보면서 내가 정한 원칙은

1. 거리를 두고 절대 녀석을 만지지 않는다.

2.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녀석의 한 끼를 챙겨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 두 가지다. 언제까지 밥을 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 녀석이 나한테 완전히 의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디 잘 먹고 건강을 회복해서 올 겨울을 잘 넘기고 나면 내가 챙겨주지 못하는 사정이 생기더라도 자기 앞가림을 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밥을 먹고 가다가 자꾸 멈춰 서서 나를 뒤돌아 보았다. 무슨 뜻이었을까?

회사동기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거리 두는 방법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연민에 중독되지 않도록 해.

네가 모두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괴로운 건 너야"





여기까지 글을 쓰고 일 년 반이 지났다. 그 사이에 회사는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중간중간 출근하는 날마다 사료를 챙겨 다니면서 밥을 챙겨 먹였다. 예전처럼 밥 먹는 걸 내 눈으로 매일 보질 못하니 이 녀석이 밥을 먹고 다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사람들 눈이 안 닿는 곳에 자동 급식기를 두었는데, 그나마도 덩치 큰 고양이들에게 밀려서 잘 못 먹었는지 가끔 볼 때마다 녀석이 나날이 말라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겨울엔 보통 길고양이들이 많이 먹어서 체중을 불리는 편인데도.


회사 운동장 근처 비탈진 곳에 은신처를 마련한 녀석을 발견하고 밥을 건네주던 날.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것 같아 남편에게 어떻게 하지.. 부러진 것 같은데 병원에 데려갈까 하고 물어봤더니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으면 그러자고 했다. 사실 그 시점에서는 내가 프랑스로 파견 가는 날이 나와있었던지라 고민은 했지만 그냥 돌아서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퇴근하고 녀석을 잡아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으니 한번 봐주세요'했는데, 사실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기력이 없어서 다리를 떨었던 것이었고, 횡격막이 파열되어 장기가 앞으로 다 쏠려서 폐를 누르고 있다고...


선천적으로 기형일 수도 있고, 트라우마(사고등으로 큰 충격이 가해진 경우) 일 수도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두면 고통스럽게 살 것이고, 예후는 좋지 않지만 수술을 하면 그나마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해서 고민하다 수술을 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었고, 고등어(병원에 입원시키면서 고등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좀 회복되는 듯했지만 결국 이 녀석은 열흘 정도 버티고 고양이 별로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고등어가 떠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간다.


고등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으면 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내가 뭐라고 그 녀석의 운명을 결정했을까? 이런 생각이 드문드문 들 때도 있지만 그 비틀거리는 몸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버티는 것이 과연 고등어에게 좋은 삶이었을까? 그래도 난 건강하게 살게 해 주려고 노력했어.. 이렇게 자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양이 별에서는 아프지 않을 거야


프랑스 시골에 살게 된 이후로 고등어처럼 마르고 아픈 고양이는 본 적이 없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도 보통은 돌아갈 집이 있는 고양이인 경우가 많고,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고양이들도 여긴 쥐 나 다른 작은 동물들이 많으니 배가 곯아 보이는 애들은 없었다.


프랑스로 오기로 했을 때, 또 가서 고양이들 주워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던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보호소에서 티구는 데려왔지만) 도시에서보다 건강해 보이는 고양이들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도 집에서 고양이도 다들 건강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사는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